"(저는) 13년차…마지막 연차 진행을 하고 있고요…."
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은 21일 오후 누리호의 성공 소식이 공식 발표된 후 그간의 난관을 묻는 질문에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고 본부장은 2010년 누리호 개발 초기부터 참여해 2015년부터는 책임자로서 사업을 이끌어왔다.
고 본부장은 "2015년과 2016년에 엔진 연소 불안정으로 1년 넘게 각고의 노력을 했었다. 추진제 탱크도 제작공정 확립이 안돼서 발사체 그림이 안보였었다"며 "그런 기술적 문제들이 언제 해결돼서 우리가 언제 발사체를 만들 수 있을지 안보이던 깜깜한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성공 발표 후 기자간담회에 나선 다른 관계자들 역시 취재진의 질문에 답을 하다가도 자주 멈칫하며 먹먹함을 숨기지 못했다.
권현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거대공공연구정책관은 "참으로 기쁜 날이다. 우리 선배(들이 해 온) 노력의 대가를 이제 저희가 성과로 받게 됐다"며 "과학로켓 1호를 발사한 지 30주년이고 첫 액체로켓인 과학로켓 3호를 발사한 지 20년만"이라며 누리호 성공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번 누리호 성공은 1990년 과학로켓 개발부터 시작해 약 30여년 만에 거둔 쾌거다. 1993년부터 KSR-Ⅰ, 1998년 6월 KSR-Ⅱ, 2003년 2월 KSR-Ⅲ 개발을 완료하며 기본적인 기술을 갖추고,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Ⅰ)로 독자기술의 터를 닦았다.
나로호는 러시아와의 기술협력을 통해 공동개발한 발사체로 2009년과 2010년 두 차례 발사 실패 후 2013년 3번째 도전에서 성공했다. 이같은 우여곡절 끝에 2010년 3월 착수한 사업이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 개발이다.
누리호의 전 과정에는 국내 기업 300여곳과 500여명의 엔지니어가 참여했다. 이들이 앞으로 우주산업 시장에서 제각각 자력발사 성공 경험을 가진 자원이 된다. 특히 천문학적 비용과 기약 없는 시간을 필요로 해 정부가 주도할 수밖에 없었던 우주산업이 민간 주도로 전환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주산업 시장에 새로운 경쟁자로 등장한 한국에 대한 국제적 관심도 뜨거웠다. AP통신은 "(누리호는) 한국의 우주 야심에 힘을 북돋는 대성공"이라며 "북한과의 적대감 속에 한국이 우주 기반 감시 체계와 더 큰 규모의 미사일을 구축할 핵심 기술을 보유했음을 입증했다"고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누리호는 6G 통신, 정찰 위성, 달 탐사 분야에서 야심찬 목표를 달성하려는 한국 계획의 초석"이라고 표현했다.
자력으로 위성을 띄울 수 있는 능력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 드론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배경이 될 전망이다. 6세대 이동통신(6G) 시대 개막과도 직결된다.
우선 이번 누리호 발사에 실린 성능검증위성은 2년간 임무를 수행한다. 국내에서 개발한 우주용 기기들이 실제 환경에서 작동하는지를 검증하게 된다.
성능검증위성에는 작은 '큐브위성' 4기도 실렸다. 카이스트와 조선대, 연세대, 서울대에서 우주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각각 개발한 초소형 위성이다. 큐브위성은 백두산 천지나 서해 상공의 미세먼지 촬영, 지구 대기 관측 등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움직일 예정이다.
대전 항우연 지상국은 22일 새벽 3시부터 위성과 여러차례 교신을 주고받으며 상태를 확인할 예정이다. 큐브위성은 위성이 궤도에 안착한 후 7일째 되는 오는 29일부터 이틀에 하나씩 분리될 예정이다. 사출된 큐브위성은 각 학교의 지상국과 교신하며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한편 윤석열 정부는 이번 누리호 발사 성공을 발판으로 국정과제를 통해 발표한 '세계 7대 우주강국 도약' 정책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한국형 항공우주국(나사·NASA)을 목표로 경남 사천에 항공우주청을 설립해 현재 국방부와 과기부, 항우연 등에 흩어져 있는 우주 정책 업무를 모은다는 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