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기야 13만 경찰 표심을 공략하다가 이제는 '잡은 물고기' 취급하느냐는 격앙된 반응도 나온다.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경찰청장 장관급 격상, 경찰 공안직 전환 등은 답보 상태지만 이른바 '검찰식' 통제는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이후 101경비단 등의 열악한 처우도 도마 위에 오르는 등 일선의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인사, 처우 개선 공약은 '답보'…13만 경찰 표심 '잡은 물고기'?
11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경찰청장 장관급 격상, 경찰의 공안직(공공안전직무) 전환 등은 별다른 논의가 진행되지 못한 채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 2월 26일 서울 마포구 대한민국재향경우회(전직 경찰관 단체)를 방문한 자리에서 "대통령이 되면 반드시 경찰청장의 직급을 상향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현재 차관급인 경찰청장의 장관급 격상은 경찰의 숙원이다. 수천 명에 불과한 검사 수장인 검찰총장은 장관급이지만 약 13만명 경찰의 수장인 경찰청장이 차관급인 점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장관급으로 격상되면 국무회의에 출석할 수 있고, 치안총감(경찰청장 계급) 이하 계급(치안정감~순경)에 대한 직급 구조가 바뀌면서 일선 경찰관들의 급여가 올라가는 효과도 있다.
경찰의 공안직 전환 역시 처우 개선 면에서 경찰 내부에서 기대감이 높은 공약이었다. 경찰은 교정·보호, 출입국 관리 등과 같은 공안직이었으나, 1969년 경찰공무원법이 제정되면서 별도 봉급 기준을 적용 받았다. 이후 시간이 흘러 공안직과 경찰의 기본급 역전이 시작됐다. 위험성이 높은 업무 특성상 공안직화를 해야 한다는 경찰 내부 목소리는 수년 전부터 나왔으나 예산 문제가 늘 발목을 잡았다.
경찰 관계자는 "청장 장관급 격상도, 공안직 전환도 사실상 진행된 것이 없다"며 "정부 초부터 경찰 통제 등 조직이 뒤숭숭하다 보니 공약 이행은 일단 뒤로 밀린 분위기"라고 밝혔다.
현 정부의 국정과제나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는 경찰청장 장관급 격상 내용이 빠진 상태다. 경찰 공안직 전환은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는 명시돼 있지만, 국정과제에는 담겨 있지 않다.
이미 지난 4월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경찰청장의 장관급 격상과 관련 "경찰청장을 장관급으로 하면 소방청장 등의 (격상) 요구도 있을 수 있고 산림청장 등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며 유보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열악한 처우, 통제는 강화…반발 목소리
상황이 이렇다 보니 13만 경찰 표심을 공략하다가 이제는 '나 몰라라' 하느냐는 성토가 나온다. 경찰 내부 익명 게시판에는 "경찰한테 약속한 장관급 격상, 공안직은 어디로 쏙 빠지고 그 뒤론 나 몰라라"라며 "처우는 더 열악해지고 경찰 통제 할 궁리만 한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열악한 처우 문제는 일선에서 더욱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이후, 근접 경비를 맡는 경찰 부대인 101경비단에선 근무 여건 악화가 논란으로 떠올랐다. 샤워 시설이 없는 국방부 내 폐건물을 배정 받고 공간 부족으로 '컨테이너'에서 대기하기도 했다. 101단 소속의 한 경찰은 "생활하는 곳이 무슨 7~80년대 같다"며 "청와대와 달리 사람도 많이 다녀서 힘들다"고 전했다.
외곽 경비를 담당하는 202경비단은 기존 청와대보다 근무 접근성이 떨어지고 주차난이 심각하다는 내부 지적이 나온다. 202경비단 소속 한 경찰은 "출퇴근 시간에는 차가 막히는데 교대를 생각하면 길바닥에 시간을 버리고 있단 느낌이 든다"고 호소했다.
처우는 열악한 반면, 경찰 통제 논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취임 직후 '경찰 제도개선 자문위원회'(자문위)를 꾸려 경찰 통제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위원회에서는 장관 직무 권한에 '치안' 부활, '경찰국' 신설 등이 검토된 것으로 전해졌다. 최종 자문안은 이달 말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비직제인 행안부 치안정책관실을 공식 조직화해 '경찰국' 역할을 하도록 하고 경찰 감찰권을 경찰청에서 행안부로 옮기는 장기적인 과제 등도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통제는 인사에서도 두드러진 모양새다. 이 장관은 최근 차기 경찰청장 후보군인 치안정감 승진자를 대상으로 개인 면담을 실시해 논란을 일으켰지만, 또 다시 후보군에 대한 면접을 재차 진행한다고 밝혀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행안부 장관이 제청권을 가졌지만 면접은 이례적일 뿐더러, 정권 입맛에 맞는 '줄세우기' 내지는 '길들이기' 포석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기존 치안정감 후보군 중에 경찰청장 인사를 하고 이후 경찰 고위직 인사를 단행하는 관례도 깼다. 기존 치안정감은 경찰대 4~5기가 주축을 이뤘지만, 이번 승진 인사에서 7기를 두 명 올리면서 기수도 파괴했다. 이를 두고 기수를 파괴하면서 상위 기수에 대한 '용퇴 압박'이 이어지는 '검찰식' 인사라는 해석이 나온다.
경찰 내부에서는 1991년 경찰법 제정 정신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경찰법에 따라 경찰청은 행안부의 외청(外廳)으로 독립관청화 됐으며, 대신 경찰위원회 제도를 도입하면서 경찰의 민주적 통제 시스템을 구축한 바 있다. 최근 경찰 내부망 게시판에는 "행안부 '경찰국' 신설은 시대 역행을 하는 것", "경찰청장은 행안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등의 반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의 최초 정계 진출과 대선 출마로 이어진 명분이 문재인 정부 당시 검찰에 대한 행정부의 통제였던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경찰에 대한 통제 강화가 '내로남불'식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직 사퇴 당시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지난달 30일 기자간담회에서 "경찰권에 대한 통제 뿐만 아니라 경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고자 했던 1991년 경찰법 제정 정신도 반드시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행안부의 경찰 통제를 에둘러 비판하기도 했다.
국가경찰위원회 역시 행안부의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사회 각계 전문가가 참여하는 가칭 '경찰 민주성 강화 자문단' 구성을 추진하고 있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