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성폭력 사건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지난해 국회의원 3명 중 1명만 법정 의무 교육인 '성인지 교육'을 수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보좌직원 또한 수강률이 절반 미만이라 법을 만드는 국회 구성원들의 성인지 감수성이 후진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7일 국회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성인지 교육 현황' 자료에 따르면, 국회 사무처는 2020년부터 1시간짜리 '성인지 통계의 이해와 활용' 온라인 교육을 실시 중이다. 2019년 6월 시행된 양성평등기본법 개정안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전체 소속 공무원들에게 성인지 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했다.
법상 성인지 교육은 '사회 모든 영역에서 법령, 정책, 관습 및 각종 제도 등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는 능력을 증진시키는 교육'을 뜻한다. 국회 사무처 교육 내용은 성인지 역량 향상에 필요한 '정책의 성별 관련성 등 성인지 관점의 이해', '양성평등 관련 법, 정책 및 제도의 이해', '양성평등 사회 및 문화의 이해' 등으로 구성됐다.
국회의원의 성인지 교육 미이수율은 지난해 약 70%에 달했다. 이들의 2020년과 2021년 참석률은 각각 20.7%(62명), 32.9%(97명)였다. 올해는 5월까지 1명만이 수강했다.
국회의원 보좌진의 경우 지난해 참석률은 48.5%로, 전년도 18.7%에 비해 30%포인트가량 올랐지만 여전히 절반이 안 되는 수치였다. 국회 사무처 직원은 2020년 72.9%, 2021년 92.3%로 상대적으로 참석률이 높았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코로나19 유행 탓에 집체 교육이 불가능해 그동안 온라인으로 실시했다"며 "'기관 실시'는 의무지만 개인의 의무 사항은 법적으로 제시된 바가 없어 정당별, 성별 이수 통계 자료는 없다"고 설명했다.
관련해 박인숙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위원)는 "(성인지 교육 의무화) 법이 제정된 이유는 실시만 하라는 게 아니라 다 듣도록 하라는 의미까지 포함돼있는 걸로 보인다"며 "실시했으니 이수 여부는 각자의 책임이라고 하면 법이 무용지물이 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성인지 교육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의 수위와 행동이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며 "세대별로 관념과 허용선이 달라 2차 피해가 많이 발생하는데 어느 선까지 언행이 가능한지 알려주는 게 교육"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회에서는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보좌관 성폭력 의혹, 김원이 민주당 의원 전 지역 보좌관의 동료 성폭행 및 2차 가해 논란, 정의당 당직자의 성폭행 의혹 등이 쏟아져 나왔다. 최강욱 민주당 의원은 화상회의에서 동료 의원에게 성희롱성 발언을 했다는 논란이 불거졌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과거 성 상납 의혹으로 당 윤리위원회의 심사를 받고 있다. 정당과 지위를 막론하고 성 비위 문제가 터져 나오는 셈이다.
각 당은 성폭력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철저한 진상 파악을 통해 권력형 성범죄를 근절하고 성평등 조직 문화를 위해 당헌·당규와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등 대안을 내놓는다. 그러나 정작 1년 중 언제든 온라인으로 들을 수 있는 1시간짜리 성인지 교육조차 듣는 데 소홀해 어불성설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여성학 박사)은 "(성인지 교육을 법적으로 의무화한 것은) 성인지 감수성이 공무원의 자질이라고 인정한 것으로 보이는데 해당 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의원들이 듣지 않는 건 아이러니"라고 지적했다.
이어 "성인지 교육이라고 하면 여성을 위한 편향적 교육이라는 오해가 아직도 많은 듯한데 특정 성별에 과도한 이익 또는 불이익이 돌아가는 것을 막고 전체 사회 구성원에게 정책의 효과가 골고루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교육 이수를 강제해 개인에게 페널티를 주기보다 이수 의원 명단을 공개해 독려하는 식 등 묘안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