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내가 미쳤었나" 루나 투자한 젊은 세대 '코인쇼크' ②'돈놓고 돈먹기' 루나 신기루에 투자자 보호장치는 없었다 ③'코인시장 규제공백' 어떻게 메꾸나…'루나 사태'로 논의 급물살 ④[단독]"저커버그 누나와 암호자산 매매업"…국내 상장사 석연찮은 변신 (계속) |
해외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사고 팔리는 A코인(가명) 관련 작년 말 한글백서엔 코스닥 상장사 이즈미디어가 엔터테인먼트 산업 계열 NFT 마켓을 구축하고, 해당 코인을 기본 통화 삼아 거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의 구상이 담겼다. 이 프로젝트 관련 주요 인물로는 국내 유력인사들 뿐 아니라 마크 저커버그 메타(옛 페이스북) 최고경영자의 누나인 랜디 저커버그가 '고문'으로 소개됐다.
상장사와 국내외 거물급 인사들이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주목을 받은 이 프로젝트의 현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아 보인다. 구심축이었던 이즈미디어는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해 현재 주식거래가 정지돼 있다. 이를 둘러싼 일련의 과정이 석연치 않은 만큼 자금흐름을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금융업계와 법조계에서 나온다. 실제 한 법률사무소는 사기와 업무상 배임 가능성 등을 의심하며 프로젝트 핵심 관계자들에 대한 법적대응도 검토 중이다.
'카메라 장비 제조' 상장사, 갑자기 "암호화 자산 매매·중개업" 추진
해당 프로젝트의 핵심 역할자로 소개됐던 이즈미디어는 2002년 11월에 설립돼 2017년 7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회사로, 지난 2020년까지만 해도 휴대전화 카메라 관련 장비 개발이 주요 사업이었다. 그런데 작년 3월 서비스, 도매·소매업이 주업인 티피에이리테일이라는 회사가 82억여 원을 들여 이즈미디어 지분을 사들인 뒤 최대주주로 올라서면서 사업영역 확장과 거물급 인사 영입이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티피에이리테일 관계사 임원이자 증권사 출신 김모씨와, 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 또 다른 김모씨의 '양김(兩金) 공동대표' 체제가 구축된 작년 3월30일 랜디 저커버그가 이즈미디어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이명박 정권 당시 청와대 최고위급 관계자, 대기업 고위임원 출신 인사 등 5명도 호화 사외이사진에 포함됐다. 곧이어 이즈미디어의 정관상 목적사업에 전에 없던 '블록체인 기술 관련 기타 정보서비스업'과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 자산 매매 및 중개업'까지 추가 확정됐다. 5월 말과 6월 초쯤엔 미국 나스닥 상장사 등 외국 기업들과의 NFT 플랫폼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소식도 잇따라 발표됐다.
최대주주가 바뀐 지 3개월 사이 기존 본업(本業)이었던 카메라 관련 장비 사업과는 접점을 찾기 어려워 보이는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 자산 매매 및 중개업체'로의 변신시도가 일사불란하게 이뤄진 모양새다. 그해 6월 랜디 저커버그는 이즈미디어 사외이사 자격으로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 나서 "이즈미디어가 하는 블록체인, NFT 등 사업과 관련해 실리콘밸리에서 한 경험과 네트워크를 활용할 예정"이라고 했다.
화려한 변신, 디테일은 '물음표'…랜디 저커버그 이사회 출석율 '제로'
이즈미디어의 변신 속도에 비례해 주가 역시 빠르게 치솟았다. 기존 경영진이 티피에이리테일에 주식을 양도하는 계약(1주당 9천 원)을 최초 체결한 작년 1월 28일 4810원(종가)이었던 주가는 5월25일 장중 2만 2948원까지 가파르게 올랐다. 4.8배 가까이 주가가 뛴 것이다. 그런데 이즈미디어의 후속 행보에선 석연찮은 대목들이 여럿 등장한다. 우선 이목을 끌었던 랜디 저커버그는 사업보고서상 단 한 번도 이사회 중요의결 과정에 참여한 적이 없다. 작년과 올해 총 18차례 의결 과정에 참석율이 '제로'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 사측 핵심관계자는 "NFT 플랫폼 사업을 하려면 미국 벤처회사들과의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했고, 랜디 저커버그가 그 역할을 했다"며 "이사회 참여는 시간이 맞지 않아 못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즈미디어가 작년 6월25일에 NFT 사업 목적으로 30억 원을 들여 설립한 자회사 고센미디어의 정체성을 둘러싸고도 물음표가 붙는다. 당초 고센미디어 등기상엔 사업 목적으로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 자산 매매 및 중개업' 등이 적시됐는데, 설립 한 달도 채 안 돼 삭제됐다. 뒤이어 '의류 패션 제작·판매업'과 '무형재산권 임대·중개업' 등이 추가됐다. 고센미디어는 올해 1월엔 국내 유명 가수를 경영고문으로 선임하면서 복수 언론에 "NFT 플랫폼에 더욱 활발하게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 대표는 설립 당시 이즈미디어 공동대표였던 CFO출신 김씨가 맡아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김씨는 고센미디어의 주요역할을 '이즈미디어의 NFT 플랫폼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블록체인 관련 사업목적 삭제 경위에 대해선 "당시 법을 이유로 (사업목적에) '블록체인'만 들어가도 거래를 시킬 수 없다고 은행에서 통보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비슷한 의문지점은 또 있다. 이즈미디어의 작년 사업보고서상에서 목적사업인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 자산 매매 및 중개업' 내용과 관련한 세부적 설명을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그해 1~6월분 반기보고서상 소개된 '사업 내용'엔 외국 기업들과 NFT 플랫폼 개발을 명분으로 맺은 MOU 정도만 간략히 적시됐다. 이 밖에도 고센미디어 설립 사실과 "NFT사업, 메타버스 등의 분야로 사업을 확장할 예정"이라는 설명 외엔 보다 명확한 계획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사업개요 설명을 가득 메운 건 골프웨어 등 유통사업 관련 현황과 종전 카메라 장비 관련 내용이었다. 1~12월분 사업보고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미국에 있는 '최홀딩스'라는 법인에 NFT플랫폼 개발 의뢰 계약을 그해 말 맺었고, 모두 3회에 걸쳐 33억여 원을 지급했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결국 주식거래 정지…외부감사인 "NFT 사업 투자 적정성 증거 입수 못해"
경영진 교체 이후 신사업 추진을 둘러싼 이 같은 물음표는 결국 외부감사인인 한영회계법인의 '감사의견 거절'에 따른 주식거래 정지 상황으로 이어졌다. 해당 회계법인은 이즈미디어의 작년 1~12월분 사업보고서에 '감사의견 거절'을 적시하면서 그 이유 가운데 하나로 'NFT 플랫폼 관련 신규사업투자'를 들었다. 구체적으론 "이즈미디어는 당기 중 최홀딩스에 무형자산을 취득하고 33억 5400만 원을 지급했다. 회사는 이 가운데 25억 700만 원을 자산성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해당 자산과 관련한 구체적인 향후 사업계획 및 자산의 평가와 관련한 회계처리의 적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충분하고 적합한 감사증거를 입수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감사의견 거절은 한국거래소 규정상 상장폐지 사유에 해당해 이즈미디어의 주식거래는 올해 3월24일부터 정지(종가 2705원)됐다. 회사가 이 같은 위기로 향하는 과정에서 '양김 공동대표'는 작년 11월10일 '일신상의 사유'로 사임했다. 현재 고센미디어 대표직만 유지 중인 김씨는 외부 감사의견 거절 사유에 대해 "(NFT 플랫폼 사업 관련) 충분한 자료를 갖고 진행했다는 근거는 다 있고, 재감사 때 제출할 것"이라며 "(당시) 회계 담당임원이 내부적으로 경영권 분쟁이 있다 보니, 자료제출을 안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과 함께했던 3년 임기의 호화 사외이사진 6명 가운데 랜디 저커버그 등을 제외한 4명도 같은 해 마찬가지 사유로 사임했다. 모두 새 경영진이 들어선 지 1년도 채 안 돼 벌어진 일들이다. 사임한 한 사외이사는 최초 합류 계기를 묻는 질문에 "사측에서 요청이 왔다"고 답했을 뿐, 블록체인 관련 사업 관련 진행 현황에 대해서도, 랜디 저커버그와 소통이 있었는지를 묻는 질문에도 "잘 모른다"고 했다.
이즈미디어는 급기야 올해 초 사업목적에서 '블록체인 기술 관련 기타 정보서비스업'과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 자산 매매 및 중개업'을 제거하는 한편, 골프연습장·골프레슨 사업 등을 추가했다. 새 경영진이 회사를 맡았던 작년 한 해 동안 매출은 전년보다 늘었지만, 영업이익과 순이익, 부채 수준은 악화됐다. 두 공동대표 사임 약 1주일 전인 11월 4일 티피에이리테일이 이즈미디어 보유주식 전량을 담보로 60억 원을 대출받은 여파로 최대주주는 담보권자인 대부업체로 지난 4월21일 변경됐다.
NFT 플랫폼은 '미완성'·코인은 '거래중'…코인이 주목적 이었나?
그렇다면 이즈미디어가 기존에 투자했던 NFT 플랫폼 구축 등 사업은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우선 프로젝트 구심축 격인 NFT 플랫폼은 아직도 정식 출범 상태가 아닌 시범 운영 단계에 머물러 있다. NFT 플랫폼을 만드는 작업은 미국 법인 최홀딩스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 플랫폼에 대한 고센미디어의 콘텐츠 공급 업무도 모회사 이즈미디어의 위기와 맞물려 사실상 멈춘 상태라고 한다.
이처럼 플랫폼이 미완성이고, 눈에 띄는 콘텐츠 공급도 끊긴 상황인데 백서상 해당 프로젝트의 기본통화로 소개됐던 A코인은 이미 지난해 12월부터 해외 여러 거래소에 상장돼 사고 팔리는 중이다. 발행 주체는 최홀딩스의 최모 대표로 파악됐다. 현재로선 '계획상의 가치'만 존재하는 코인이 무분별하게 유통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지만, 최 대표는 지난 3일 CBS노컷뉴스와 만나 "NFT 플랫폼 베타(시범) 버전이 출시됐고, 그에 맞춰 (A코인이) 상장된 것"이라며 "6월 중순과 7월 초에 (완성된 NFT 플랫폼) 애플리케이션이 연달아 출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초에 코인 발행이 주목적이었고, 이즈미디어의 갑작스런 NFT 플랫폼 관련 사업 추진은 이를 위한 수단일 뿐이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도 있다. 이즈미디어를 인수한 티피에이리테일 측이 당초 자신들의 유통사업 모델 기반 '티피에이 코인' 구상을 최 대표와 검토했는데, 현실화가 어렵자 NFT 플랫폼 기반 프로젝트로 선회한 것이라는 취지의 내부 증언이 나온 것이다. 고센미디어 대표 김씨는 "티피에이 코인은 티피에이의 유통사업 모델에 자금을 조달해주기 위한 코인이었다"며 "그런데 현실화가 안 되니까 'NFT 플랫폼으로 가자'고 된 것이고, 해당 플랫폼에선 A라는 코인으로 (이름이) 변경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작년 6월까지만 해도 이들의 NFT 플랫폼 프로젝트와 관련된 백서엔 기본통화가 되는 코인의 이름이 '티피에이 토큰'으로 적시됐다. 이 백서의 내용은 A코인의 작년 말 백서 내용과 거의 유사하다.
이와 관련 김씨와 최 대표는 이즈미디어의 투자자금이 오로지 NFT 플랫폼 개발에만 쓰였을 뿐, 코인 개발·발행 과정엔 한 푼도 들어가지 않았다며 "코인 사업은 이즈미디어와 별개다. 연관이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백서상 하나의 '생태계'로 엮인 사업을 이들 주장대로 별개로 볼 수 있을지, 코인 발행과 상장에 따른 구체적 수혜자는 누구인지 등은 보다 세밀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즈미디어 주가에 대한 인위적 부양의혹도 제기되지만 김씨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즈미디어의 NFT 플랫폼 사업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놓고 법리검토를 진행 중인 '법률사무소 윤오'의 윤철민 변호사는 "금융감독원 등 감독기관에 증권불공정 신고를 비롯해 관련자들에 대한 법적조치를 검토하고 있다"며 "자본시장법 위반, 형법상 사기죄, 업무상 배임죄 적용 가능 여부를 따져보는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