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사형수' 정동년 이사장의 마지막 걸음··· 국립5·18묘지에 영면

정 이사장 추모 속에 5·18민주묘지 영면
5·18 민주광장서 영결식 시민들 추모

31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고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의 안장식이 진행됐다. 김한영 기자

'오월 사형수'로 평생을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이 31일 광주에 영면했다.
 
고(故) 정동년 선생 5·18민주국민장 장례위원회는 이날 오후 2시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정동년 이사장의 안장식을 진행했다.
 
정 이사장의 부인인 이명자 전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오열해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안장식에 참석한 추모객들은 "정 이사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비통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지만 부디 편히 잠드시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김범태 5·18민주묘지관리소장은 추도사를 통해 "몇 년 전 건강 문제로 시골에 내려가셨을 때 뵙지 못해 항상 마음에 빚을 지고 있었다"면서 "정 이사장이 이 땅에 뿌려놓은 대동 세상의 씨앗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밝혔다. 
 
31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고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의 부인인 이명자 전 오월어머니집 관장이 참배하고 있다. 김한영 기자

고인은 1964년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을 맡았다가 이듬해 한일 국교 정상화를 '굴욕 외교'라고 지적하며 반대 투쟁을 이끌다가 구속, 제적됐다.
 
정 이사장은 5·18 당시 주동자로 지목돼 내란수괴 혐의로 사형을 선고 받았다. 1982년 말 성탄절 특사로 석방돼 1984년 전남대에 두 번째로 복학, 그해 가을 학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이듬해 5·3 인천사태 주동자로 구속돼 다시 3년간 옥살이를 했다.
 
1989년에는 조선대생 이철규 사인 규명과 관련돼 또다시 구속되는 등 30~40대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이후 평생을 민주화운동에 헌신해 왔다.
 
앞서 이날 오전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정동년 5·18 기념재단 이사장의 영결식이 '5·18 민주국민장'으로 엄수됐다.
 
시민들이 31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고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의 영결식에 참석해 추모하고 있다. 김한영 기자

이날 영결식에는 비롯한 유가족과 추모객 등 300여 명이 함께했다.
 
고인의 마지막 길을 뒤따르던 유족들은 애통해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유족들은 통곡하면서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조사에 나선 지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5·18 민주화운동이 완전한 진상규명과 그 정신이 오롯이 헌법전문에 담길 수 있도록 고인의 뜻을 받들어 노력하겠다"면서 "정동년 선생이 남긴 숙제를 받들고 앞으로 나가겠다"고 추모했다.
 
유가족 대표로 나온 장남 정재헌 씨는 "전날까지 5·18 행사에 참여해서 오월의 미래를 고민하시던 당신의 모습을 이제 더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장남으로서 가슴이 많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고(故) 정동년 선생 5·18민주국민장 장례위원회와 유족은 영결식을 마치고 오전 11시쯤 광주 5·18 기념재단과 전남대를 거친 후 영락공원 화장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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