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8시 30분(현지 시간) 프랑스 칸 팔레 드 페스티벌에서 열린 제75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감독상의 주인공으로 '헤어질 결심'의 연출자 박찬욱 감독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시상자로 나선 덴마크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은 무대에 오른 박찬욱 감독이 수상 소감을 말하기 전 "정말 멋지다"며 거장의 수상을 축하했다.
이로써 박찬욱 감독은 지난 2004년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올드보이', 2009년 심사위원상을 받은 '박쥐', 2016년 경쟁 부문 진출작 '아가씨' 이후 6년 만의 신작이자 11번째 장편인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까지 거머쥐며 칸이 사랑하는 감독이자 세계적인 거장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자타공인 '영화광' 박찬욱, 남과 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안하다
"눈 뗄 수 없이 매혹적인 작품. 박찬욱 감독이 훌륭한 로맨스와 함께 칸에 돌아왔다. 텐션, 감정적 대치, 최신 모바일 기술의 천재적 활용, 교묘한 줄거리의 비틂 등 너무나도 히치콕스러웠다." _제75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 '헤어질 결심'에 대한 영국 매체 가디언의 평가 중
미술에 관심이 많은 집안에서 태어나 미술뿐 아니라 문학과 인문학에도 꾸준히 관심을 가졌던 박 감독은 대학시절 사진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영화에 관심을 가졌다. '헤어질 결심'에 대한 가디언의 평가처럼 모두가 인정하는 '영화광' 박찬욱 감독은 대학 재학 시절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을 본 후 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
영화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박 감독은 지난 1992년 '달은 해가 꾸는 꿈'으로 감독 데뷔했으나 좋은 결과를 보지 못했고, 1997년 두 번째 작품 '삼인조'를 선보였지만 이 역시 흥행에 실패했다. 데뷔작 실패 후 영화평론가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박 감독은 '스크린' 등 다양한 영화잡지에 기고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의 세 번째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2001)는 '박찬욱'이라는 이름을 평단과 대중에 각인시킨 작품이다.
박상연 작가의 장편소설 'DMZ'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사이에 둔 남북의 초소 군인들 사이에 벌어진 비극을 다뤘다. 기존에 분단 상황을 다룬 영화들이 남북의 대치, 반공적인 경향을 가졌던 것과 달리 '공동경비구역 JSA'는 같은 말을 쓰는 민족, 형제애 등을 보여주며 남과 북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공한다.
훗날 그의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이란 평가를 받는 '공동경비구역 JSA'는 대종상영화제와 청룡영화상을 휩쓴 것은 물론, 베를린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과 제27회 시애틀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을 기록하며 세계적인 감독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세계를 놀라게 한 '올드보이', 거장 박찬욱의 시작
다음 영화이자 그의 B급 영화에 대한 애정이 담긴 하드보일드와 필름느와르를 표방한 '복수는 나의 것'(2001)을 시작으로 박찬욱 감독의 색깔이 강렬하게 드러나는 영화들이 이어지며 '박찬욱 장르 세계'가 구축된다.
처음으로 칸의 선택을 받은 5번째 장편 '올드보이'(2003)는 박찬욱 감독에게 '칸느 박'이라는 애칭의 시작점이 된 작품이자 그를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올린 작품이다.
'복수는 나의 것'에 이어 '복수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 '올드보이'는 박찬욱 감독에게 첫 번째 칸 트로피인 심사위원대상을 안겼다. 또한 미국 유니버설 픽처스가 리메이크 판권을 구매할 정도로 세계적인 관심을 받은 작품으로, 외신들은 '올드보이'를 두고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린 작품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번 제75회 칸영화제 수상 소식을 다룬 프랑스 국제 보도전문채널 프랑스24 역시 '올드보이'를 두고 "2004년 칸영화제에서 두 번째로 높은 상인 심사위원대상을 받으며 한국 영화를 세계무대로 끌어올리는 데 일조한 영화"라고 평가했다.
'복수 시리즈'의 마지막 '친절한 금자씨'(2005) 역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젊은 사자상, 가장 혁신적인 영상 등을 받으며 그의 실력을 다시금 세계에 알렸다. 이후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의 소설 '테레즈 라캥'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영화 '박쥐'(2009)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종교에 대한 근원적인 탐구, 자아 고민 등을 담아내며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미국 매체 데드라인은 '헤어질 결심'으로 칸을 찾은 박 감독을 인터뷰하며 박찬욱만이 갖고 있고,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작품 세계에 관해 장르 관습을 따른 적이 없다고 평가했다.
거대한 담론보다 개인의 세계에 집중하며 자신만의 작품과 철학을 구축해 가고 있는 박찬욱 감독의 11번째 작품 '헤어질 결심'은 자신을 영화감독의 길로 이끈 '히치콕 스타일'에 비견되기도 했다. 이미 박찬욱은 '박찬욱'으로 세계적인 거장이 됐고, 칸을 넘어 전 세계에 '박찬욱 스타일'을 공고히 했다.
"박찬욱은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의 기준을 높이고, 비길 데 없는 비주얼 스타일리스트로서 자신의 위치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_영국 영화 매거진 스크린 인터내셔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