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소리를 지르고 공격을 합니다. 응급입원이 필요해요."
지난달 14일 오후 6시쯤 서울 양천구의 한 지구대에 112신고가 들어왔다. 조현병으로 3년여 동안 정신과 치료 중인 30대 A씨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모친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현장에 출동해 응급입원이 가능한 병원을 수소문한 경찰은 오후 6시 30분쯤 서울의 한 병원에 병상이 있다는 안내를 받고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경찰이 병원에 도착하는 사이에 다른 환자가 병상을 차지해 A씨는 입원에 실패했다.
팀원 전원이 붙어 150통의 전화…결국 비극 못 막았다
한시가 급하다고 판단한 지구대에선 야간 팀원 전원이 응급입원이 가능한 병원을 찾는데 몰두했다. 서울은 물론 경기 지역의 병원에까지 총 150여 통 전화를 돌렸으나 "입원할 자리가 없다", "야간 당직 의사가 없다"며 불가 통보만 이어졌다. 오후 11시쯤 겨우 경기 안산의 한 사설 병원을 방문했으나, 행정상 문제로 또다시 입원에 실패했다.
신고 시각부터 약 6시간쯤 지난 자정 무렵, 녹초가 된 A씨 모친과 여동생은 결국 입원을 포기하고 A씨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튿날 오전 6시 30분쯤 A씨의 모친으로부터 또다시 112 신고가 들어왔다. A씨가 사라져 아침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이와 동시에 경찰에는 인근 15층 높이 아파트 인근에 사람이 떨어져 있다는 내용의 신고도 접수됐다. 떨어져 숨진 사람은 A씨였다.
당시 사건을 잘 아는 경찰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야간에 응급입원 사건이 들어오면 팀원 10여 명이 전부 그쪽에 붙는다"며 "응급입원이 쉽지 않고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 걱정이 돼 등에 식은땀이 쫙 난다"고 말했다.
응급입원에 실패한 정신질환자가 숨진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0년 11월 경남 지역에서 번개탄을 피우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정신질환자에 대해 경찰은 응급입원을 시도했으나 경남, 부산 지역에는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이 없었다. 결국 입원에 실패한 정신질환자는 3일 뒤 극단적 선택으로 숨졌다.
정신질환자 응급입원 어려움 비일비재…모든 부담은 경찰로
경찰은 자해 및 타해의 위험성이 있고 추가적 위해가 발생할 긴급성이 있는 대상자를 의사의 동의를 받고 응급입원 조치할 수 있다. 응급입원 조치는 입원한 날을 제외하고 최대 3일 지속된다.
하지만 정신질환자 응급입원은 굉장히 어려운 실정이다. 경찰이 수 시간 동안 수백 통의 전화를 돌려 입원이 가능한 병원을 찾는 일은 현실에서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더구나 야간에는 당직 의사가 없다며 입원을 거부하는 병원도 많은 상황이다.
최일선에서 응급입원 대상자를 마주하는 경찰들은 "모든 부담을 다 떠안는다"고 입을 모았다. 정신질환자 응급입원에 대한 어려움은 광범위한 문제로 파악된다.
지난 1월 경기 부천에서는 오전 2시부터 오전 8시 30분까지 6시간 30분 동안 경찰이 진땀을 뺀 끝에 응급입원이 가능한 병원을 찾은 사례도 있다. 지난 3월 진주에서는 평소 우울증을 앓던 응급입원 대상자를 입원시키려 했으나 관내 병원을 찾지 못하고 양산까지 이동해 약 7시간 만에 입원시킨 일도 발생했다. 지난달 22일 경남 김해에서는 경찰이 약 5시간 30분 동안 병원을 찾은 끝에 정신질환자를 겨우 응급입원 시켰다.
특히 코로나19 확진자에 대해서는 응급입원 조치에 어려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지난 3월 송파구에서 새벽시간대 발생한 택시비 시비 사건으로 출동한 경찰은 당사자 중 한 명이 정신질환자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응급입원 조치에 나섰다. 정신질환자는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확진자였다. 경찰은 병원을 수소문했으나 "코로나19 확진자는 안된다"며 모두 거부당했다. 결국 아침이 되어서야 문을 연 보건소를 통해 국립정신병원센터에 입원시킬 수 있었다.
정부의 무관심, 병원은 입원 거부…"정부 차원 대책 필요해"
의료계에서는 정신질환자의 응급입원이 수익성이 떨어지는 등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며 꺼리는 분위기다. 정신 질환은 내과 질환에 비해 의료비가 3분의1 수준으로 낮고, 정신질환의 진료 과정에는 병원이 주로 수익을 내는 MRI와 같은 검사도 별로 없다. 더구나 정신과의 경우 입원 기간도 일반과보다 길어 병상 회전율에서도 차이가 난다는 입장이다.
한 정신과 전문의는 "(특히 혼자 사는) 정신질환자는 미수금이 발생할 우려도 커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며 "경제적 문제 때문에 정신 병동 자체가 줄어드는 추세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꼭 경제적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며 "응급입원 대상자의 특성상 자의에 반해 강제 입원하게 될 때가 많은데, 추후 의사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등 부담스러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정부 대책도 전무하고 병원도 입원을 꺼리는 상황에서 모든 책임은 치안 최일선에 있는 경찰이 떠맡는 모습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응급입원 대상자를 입원할 병원을 찾는 동안 이들을 관리 및 보호하는 것도 우리의 책임이 된다"며 "지구대에 마땅한 공간도 없어서 순찰차에서 관리한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경찰이 응급입원에 온 힘을 쏟는 동안 또 다른 치안 공백이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응급의료시스템 구축 등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신병원이 아닌 일반병원은 경찰과 병원이 실시간으로 응급실 병상을 확인할 수 있도록 일원화돼 있다. 정신병원도 이 같은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권준수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실시간으로 빈 응급실 현황이 공유되는 응급의료시스템 연결이 필요하다"며 "현장에서 경찰이 응급입원 대상자를 판단하기 어려우니, 전문의가 동행하거나 비대면으로라도 진단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산하의 정신건강복지센터와 경찰의 협력을 보다 강화할 필요도 제기된다. 경찰 관계자는 "유관기관인 만큼 센터가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을 찾는 것이 경찰보다는 수월할 것"이라며 "실제로 센터가 운영되는 낮 시간대에는 센터를 통해 병상을 찾기가 좀 더 쉽다. 문제는 정신질환자 신고가 많은 야간에 센터는 운영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