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한 문재인 전 대통령과의 회동 계획이 무산되면서 아쉬움과 함께 그 배경을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8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예정된 면담은 현재로선 없다"고 밝혔다.
지난달 말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입을 통해 처음 알려진 뒤 여태 기정사실로 여겨졌기에 예정일을 불과 사흘 앞두고 전격 취소된 이유가 더욱 주목된다.
문 전 대통령의 측근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9일 MBC에 출연해 "여러가지 추측은 되지만 제가 정보가 완벽하게 있는 게 아니어서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한미 양측 모두 뚜렷한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몇 가지 추론할 단서는 있다.
일단 이번 회동 계획이 추진됐다 취소된 것 모두 미국 측 요청에 의해서다. 윤 의원은 "분명한 건 문 전 대통령은 가만히 계셨다는 말씀이시죠"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일정 가운데 문 전 대통령과의 회동을 갑자기 취소시킬만한 대목은 눈에 띄지 않는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설이 돌출했지만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이고, 비무장지대(DMZ) 방문 계획은 빠졌기에 일정에는 오히려 여유가 생겼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보다는 양국 전현직 정상 간 만남으로 파생될 수 있는 정치적 의미가 급제동의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문 전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견고한 지지세를 유지하는 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매우 이례적으로 만남을 청한 사실 자체가 여권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수 있다.
여기에다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문 전 대통령의 대북특사 활용설까지 부각되면서 그런 분위기를 부채질했다.
이와 관련, 박진 외교부 장관은 1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문 전 대통령의 대북 특사설에 대해 "들은 바도 없고 검토한 바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어찌됐든 문 전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만남이 무산된 것은 현실성 낮은 대북 특사설 여부를 떠나 양국관계 발전 차원에서도 큰 아쉬움을 남긴다.
지난해 5월 한미정상회담의 전후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두 정상은 가톨릭 신자라는 공통점 등을 배경으로 두터운 개인적 친분을 나눴고 회담 성공에 크게 일조했다.
트럼프와는 전혀 다른 성향의 바이든 대통령을 맞아 처음에는 다소 긴장하는 듯했던 문 대통령이 미국의 싱가포르 합의 존중이나 종전선언 지지 입장 등을 끌어낼 수 있었던 배경이라는 것이다.
만약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에 문 전 대통령과 오랜만에 재회하고 또 다시 개인적 친분을 나눈다면 그 자체로도 한미동맹 위상을 높이게 된다.
미국 대통령이 영국이나 호주 등 우방국을 방문할 때 과거 친분을 활용해 전임 총리 등과 자연스럽게 만나 교류하는 것은 별 특별한 일도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것은 역대 대통령들의 퇴임 후 정치적 여건이 대부분 녹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미국 측의 회동 취소가 외교적 결례라면 결례일 수 있지만, 그보다는 한미관계의 질을 끌어올린다는 차원에서 아쉬움이 더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