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는 전임자들에 비해 한반도 외교안보 전략에 대한 기술이 충분치 않고 구체성도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윤 대통령은 10일 취임 연설 후반부에 "전 세계 어떤 곳도 자유와 평화에 대한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도 마찬가지"라며 한반도 문제로 주제를 돌렸다.
그러면서 "저는 한반도뿐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서도 그 평화적 해결을 위해 대화의 문을 열어놓겠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북한 경제와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계획을 준비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는 '선(先) 핵포기 후(後) 보상'을 기조로 하는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구상' 수준을 넘지 못하며 구체성 면에서는 오히려 퇴보한 감도 있다.
이 전 대통령 취임사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의 길을 택하면 남북협력에 새 지평이 열릴 것이다.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10년 안에 북한 주민 소득이 3천 달러에 이르도록 돕겠다. 그것이 바로 동족을 위하는 길이고 통일을 앞당기는 길"이라고 기술했다.
물론 윤 대통령이 '압도적 힘을 통한 평화 구축' 등의 대북 강경론은 일단 뒤로 하고 '대화의 문'을 앞세운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지난 70여년 남북관계에서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대화를 통한 외교적 해법이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된 적이 없다. '대화'를 언급한 것 자체만으로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고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통일의 문'까지 거론하면서 "남북 정상이 언제든지 만나서 가슴을 열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기회는 열려있다"고 한 것을 감안하면 비교가 더욱 쉬워진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윤 대통령의 취임사는 같은 보수정권인 박근혜 대통령 취임사와도 비교된다.
집권 후 '통일대박론'을 설파했던 박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도 비록 막연하기는 하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북한에 제안했다. 당시는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감행한 직후였다.
그 이전 진보정권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취임사는 거의 독트린 수준의 대북 제안을 담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어떠한 무력도발 용납하지 않고 △북한을 해치거나 흡수할 생각이 없으며 △남북간 화해와 협력 가능한 분야부터 추진한다는 대북 3원칙을 천명했다.
노 전 대통령도 '평화번영정책'의 원칙으로 △모든 현안의 대화를 통한 해결 △상호신뢰 우선과 호혜주의 실천 △남북 당사자 원칙에 기초한 국제협력 △투명성과 국민참여를 통한 초당적 협력을 제시했다.
다만 윤 대통령의 취임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추상적인 담론을 폈다는 점에서 외교안보 비중만 특별히 소홀히 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오히려 그 보다는 다소 철학적이면서 생경한 논법이 전달력 자체를 떨어뜨린다고 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정치의 기능 부전은 '민주주의 위기' 탓이고, 그 가장 큰 원인은 '반지성주의'이며, 그 해법은 '자유'의 가치 제고에 있다는 식으로 역설했는데 논리 전개를 놓고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자유, 과학기술, 창의를 강조하다가 갑자기 북한의 비핵화를 언급하는 것이 왠지 어색하고 메시지의 임팩트도 느껴지지가 않는다"며 "담대한 비전과 희망, 남다른 각오와 고민들, 보다 구체적인 방향 제시 등이 담겨 있지 않아 다소 아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