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발매를 약 일주일 앞둔 지난 22일 오전, 서울 강남구 DG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윤지성의 라운드 인터뷰가 열렸다. "새로운 생명이 시작하는 느낌"이고 "사람들이 가장 기다리는 계절"이자 "봄이 주는 특별함"이 있어서 항상 설렌다는 윤지성은 '지성이면 감성' 대신 '스프링돌'(봄과 아이돌을 합친 말) 이미지를 밀어 보고 싶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미니 3집 '미로'는 장미 미(薇) 자에 길 로(路) 자를 써서 복잡하고 어려운 삶의 갈림길에 선 이들에게 우리들만의 꽃길을 그려 나가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타이틀곡 '블룸'도 화사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멜로디부터 가사까지 청량하고 향기로운 이 곡은 윤지성이 작사·작곡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의미가 깊다.
'블룸'을 작업하기 시작한 시점은 2020년이었다. 군 복무 당시 군 뮤지컬을 하며 바깥과 부대를 오가는 와중에 바라본 예쁜 풍경에 영감을 받았다. 윤지성은 "공연하고 들어갈 때 야경이 정말 예쁜 거다. 지금 제 마음과 상반되게, 바깥의 반짝반짝하고 예쁜 것들이 마치 밤에 피는 꽃 같이 느껴졌다. 그 당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 영화를 감명 깊게 봤는데, (이 곡이) 그 영화와 하나의 색처럼 느껴져 작업해 보면 예쁜 감성의 노래가 나오겠다 싶더라"라고 설명했다.
'블룸'의 처음 버전은 지금과는 조금 달랐다. 윤지성은 "대중적인 댄스곡은 아니었고 시티팝 느낌이었는데 이 앨범의 완성도와 곡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많은 수정을 거친 끝에 조금 더 대중적으로 신나는 곡이 됐다"라고 부연했다.
'꽃'이라는 비주얼 콘셉트를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색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게 바로 꽃이라고 봤다. 윤지성은 "무언가 내 마음을 표현할 때 꽃말이나 꽃으로 표현 많이 하지 않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게 뭘까. 꽃이라고 생각해서 '미로'라는 제목을 지었다. 곡 작업하다 보니 앨범에 풀고 싶은 얘기가 많아서 ('미로'는) 앨범명으로 했고, 사랑하는 사람 만났을 때 만개하는 감정을 표현하고자 '블룸'이라는 단어로 (곡 제목을) 진행했다"라고 말했다.
정식으로 작곡을 배워보지 않았기에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군 수첩에 가사를 먼저 적었고 휴대폰 음성 메모로 음을 붙였다. 그렇게 흥얼거린 음을 피아노 치는 친구에게 부탁해 코드를 땄고, 기존에 함께 작업했던 손고은 작곡가에게 편곡을 부탁했다. 윤지성은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은 아니지만 작곡과 작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같다"라고 돌아봤다.
이어 "만약 비트가 먼저 오고 제가 탑라인(멜로디)을 썼다면 그 비트에 맞는 멜로디밖에 나오지 않았을 거다. 아무것도 없이 (제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멜로디로 했기 때문에 편곡해주신 분께 죄송하긴 하다"라면서도 "뭔가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멜로디를 만들었던 점이 재미있었고 그게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이렇게 가도 되나?' '멜로디와 벌스, 코러스가 잘 붙어있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어 어렵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그는 "대휘가 그러더라. '형, 나는 형이 많이 참여해줄수록 좋아. 가사 바꾸고 싶으면 하고 형이 의견 많이 내줬으면 좋겠어.' 대휘와 제가 함께한 추억이 있는 가사가 있다. (곡을 들을 때) 그런 부분도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라고 귀띔했다.
이번 앨범에는 타이틀곡 '블룸'부터 '토독토독'(With 베로), '썸머 드라이브', '걷는다'(Florescence), '슬립'(SLEEP)까지 총 5곡이 실렸다. '걷는다'를 제외한 4곡 가사를 썼고, '토독토독'과 '블룸'은 작곡 크레디트에도 이름을 올렸다. 네 곡을 만들었는데 그중 두 곡이 앨범에 실렸다.
윤지성은 "(나머지) 두 곡은 조금 부끄럽더라. 객관적으로 평가가 안 되는 느낌? 내가 너무 거창한 말들을 해 놓은 것 같고, 너무 거창한 멜로디 같아서 비트도 찍지 않고 저 혼자 핸드폰 속에만 남겨놨다"라며 "나중에 디벨롭(발전)해서 좋은 모습으로 찾아뵐 수 있지 않을까"라고 밝혔다.
본인이 작사·작곡한 노래로 타이틀을 삼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최종본'을 내기까지 여정도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결론을 내야 했다. "한도 끝도 없이 수정"하게 되면 "초안의 느낌이 무색해질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정리한 게 지금의 '블룸'이다. 윤지성은 "이렇게 한다 한들 빌보드 올라갈 정도로 전 세계를 강타할 노래가 될 것 같진 않았다"고 덧붙여 취재진의 폭소를 자아냈다.
"연예인 윤지성은 좀 도전을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사람 윤지성은 사실 겁쟁이인데, (연예인으로서는) 발전해야 하고 그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기대감을 그만큼 보여드려야 해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방법이 작품이 될 수도 있고 뮤지컬이 될 수도 있고 연기가 될 수도 있죠. 곡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열의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한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그가 받은 '상처'는 무엇일까. 부지런히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했을 때 그게 대중에게 잘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서 오는 막막함이었다. 윤지성은 "전역하고 앨범 내고 드라마, 뮤지컬하고 바쁘게 살았는데 매체에 (자주) 노출이 안 되다 보니…"라며 "언제 충격받았냐면, 워너원이 '마마'(MAMA)에서 뭉쳤을 때 (저를 보고) '군대 휴가 나와서 무대하고 있냐'는 댓글을 봤을 때"라고 답했다.
그는 "나는 진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앞으로) 유튜브나 TV나 노출을 많이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구나 해서 완전히 매너리즘에 빠졌다. '지금까지 내가 한 일은 뭐지' 하는 생각이 들어버린 거다. 진짜 쉴 새 없이 달렸는데 나는 아직도 부족한 사람이구나, 아직도 많은 사람이 이걸 몰라주는구나 그런 점에서 많이 (실의에) 빠진 것 같다. 되게 힘들었다. 길 가다가 주저앉고, 제가 쓴 가사 보고 혼자 슬퍼서 울고 강아지 밥 주다가 울고 그랬다"라고 털어놨다.
하루아침에 수많은 타인과 한 공간에서 지내야 하는 군대 생활 중에도 '언제 이런 사람들과 만날 수 있을까' 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그가 슬럼프를 이겨낸 방법은 일정 부분을 '포기'하는 거였다. 윤지성은 "(내가 나온) 드라마와 뮤지컬 안 본 분들인데 (그 의견에) 상처받을 필요가 있나. 내가 일한 건 내가 알고 가족과 팬들이 아니까 그냥 나의 일을 하자고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예능에 많이 나가고 싶다고 어필하고는 있다"라고 말했다.
그룹 활동 때 성과가 더 좋았던 건 사실이다. 지난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왕성하게 활동했던 윤지성은 "제가 벌인 일이 많아서 처음으로 회사에 빚을 져봤다. 사실 충격이었다. 그룹 활동할 때는 한 번도 빚져 본 적이 없다. 전 돈을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일하면 벌고 일하지 못하면 못 번다고. 근데 일을 하면 돈이 나가고 일을 안 하면 돈이 세이브되더라. 그렇다고 활동을 안 할 수는 없다. 통장 때문에 그룹 생활이 그립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 또한 살면서 겪을 일이라고 본다. 대한민국에 빚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나. 집도 차도 빚지고 사는데. 저도 대한민국 국민 중 한 사람이다"라고 웃었다.
자작곡으로 타이틀곡 발매, 솔로 데뷔 후 첫 콘서트까지 윤지성은 이번 앨범으로 다양한 '처음'을 경험했거나 앞두고 있다. 다른 작곡가의 곡이 아닌 자신의 곡으로 대중 앞에 나선 만큼 "조금 더 직관적으로 평가받는 날짜가 다가오니까 너무 긴장된다"면서도 "객관적인 평가가 떨리지만 설렘과 기대감도 있다"라고 말했다.
오는 5월 14일과 1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아티움에서 열리는 콘서트도 신경 써서 준비했다. 생각보다 공백기가 길어져 팬들에게 미안함이 컸다는 윤지성은 본인이 입대한 날짜에 콘서트를 개최하는 등 '나름의 세계관'을 짜는 데 주력했다.
그는 "세계관, 서사 덕질이라고 하지 않나. 저에 대해 즐길 거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팬분들에게 (그런 걸) 제공하고 싶었다. 팬분들은 잘 못 찾지만, 저는 꾸준히 콘셉트와 서사 부여하면서 작업하고 있다. 이번에도 콘서트에 와야만 알 수 있는 서사를 만들었다"라고 귀띔했다.
"어떤 팬분이 해준 말이 있어요. '지성아, 너는 쏟아지는 비 같은 사람은 아니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고 스며드는 사람이야.' 그 말이 제 연예계 생활에 정말 큰 힘이 되는 거 같아요. 그때(워너원)만큼 대중의 관심을 못 받는 건 사실이죠. 그걸 알고 있고 인정해요. 현타(현실 자각 타임) 오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내가 그룹 끝나면 그때처럼 주목받지 못할 거야'라는 생각에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해 왔어요. 그때처럼 많은 사람이 보는 꽃은 아니지만 지나가다가 오며 가며 항상 그 자리에 피어 있어서 문득 봤더니 '저 꽃 되게 예쁘다. 저기 항상 피어 있었어?' 하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항상 그 자리에서 빛내고 있고 향기 내고 있으면 나중에라도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해서 그런 식으로 활동 많이 하고 싶고요. 연기가 됐든 뮤지컬, 작곡, 노래가 됐든 저라는 사람을 천천히 대중분들에게 스며들게끔… 이것도 1위를 하고 싶어서 내는 앨범은 아니에요. 빌보드 가고 싶어서 낸 앨범 아니고요. 가수 윤지성이 이만큼 도전 의식 갖고 열심히 연습하고 있고 대중분들께 항상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다는 의미를 담은 앨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