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하나, 검찰의 직수 시한을 정확히 규정한 혐의가 선거범죄라는 점은 아이러니다. 수정안은 선거범죄에 관해 올해 말까지만 검찰이 직수하도록 못박았다. 법안이 통과되면 2년 뒤 다음 총선에서 정치인들은 검찰로부터 수사를 받지 않는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인 줄 알았는데 '정수완박(정치인 수사권 완전 박탈)'법이더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검수완박? 수정 거듭하며 위헌 소지 없애고 檢 수사 확대
애초 민주당 소속 의원 172명 모두가 발의에 참여한 검수완박법 원안은 검찰의 직무 범위에서 '수사'를 모두 빼버리는 것이 골자였다. 검사뿐 아니라 검찰청 소속 수사관의 직제마저 전부 삭제하는 내용이 포함됐었다. 검찰 내부에서 "검찰청이 아니라 공소청을 만들겠다는 것이냐"라는 비판이 터져 나온 대목이다. 그런데 여야가 지난 22일 합의한 박병석 국회의장 중재안이 검찰 수사권을 부분적으로 되살렸다. 검찰의 6대 범죄 수사권한 중 공직자·방위사업·대형참사·선거 범죄 수사권은 법 시행 4개월 후에 폐지하고, 경제·부패 범죄 수사권은 사개특위 논의에 따라 1년 6개월 후 중수청 설립과 함께 폐지하기로 한 것이다.
본회의에 상정된 법안은 한 번 더 검찰 수사 범위를 넓혔다. 직수 범위를 '부패범죄와 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라고 명시했다. 법안에 새로 첨가된 '등'이라는 한 글자는 앞으로도 상당한 논란을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당선인이 검찰 직수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확대할 여지를 남겨뒀기 때문이다. 수정안대로라면 부패·경제범죄는 중수청 설립 때까지 검찰이 수사할 수 있다. 하지만 중수청 설립은 시동 단계부터 삐그덕 거리고 있다. 사개특위 구성에 야당인 국민의힘이 협조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탓이다. 만약 중수청 설립 자체가 어그러지게 되면 중수청 설립과 동시에 사라질 예정이던 경제·부패 범죄에 대한 검찰 수사권도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
'선거 범죄'만 내년부터 경찰이 전담 못박아
수정안에서 검찰의 직수 시한을 제대로 명시한 것은 선거범죄 딱 하나다. 검찰은 올해 말까지만 선거범죄를 수사할 수 있다. 선거범죄 공소시효는 6개월이다. 내년부터 검찰은 진행하던 선거 사건을 모두 경찰로 넘기거나 그 전에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선거 담당 평검사들이 "당장 6월 지방선거부터 수사 공백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대검은 "선거 사건은 난해한 쟁점이 많아 고도의 법률 전문성과 공소유지 경험 등 노하우가 필요한 분야"라고 짚는다. 하지만 수정된 법안이 통과되면 2024년 국회의원에서 벌어질 범죄 수사는 모두 경찰 몫이다. 다음 총선에서 당선되는 국회의원은 검찰의 수사를 받지 않는다는 얘기다.
보완수사 확대했지만…고발인 이의신청 금지는 독소조항
법조계 안팎에서 지적한 위헌 소지 상당수가 원안보다 해소된 것은 사실이다. 검사의 영장청구권을 삭제하거나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피의자를 직접 조사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 제외됐다.수정안은 원안에서 폐지됐던 보완수사도 상당부분 허용했다. 경찰 수사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범죄 피해자나 진범·공범의 규명 등이 원천 차단된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민주당이 지적을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하다.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사건에 관해서는 보완수사 범위 제한이 없지만, 무혐의처분해 불송치한 사건에 관해서는 '동일성 원칙'을 강하게 적용해 공범이나 여죄 수사를 금지했다.
고발인이 경찰이 불송치한 사건에 관해 이의신청을 못하도록 만든 조항은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닌 고발인은 경찰의 무혐의 판단에 불복할 수 없다. 대검은 "현재는 공정위나 국세청, 선관위 등 기관 고발 사건에 대해 혐의없음 처분을 하면 항고도 하고 이의신청도 한다. 이런 길이 다 막히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아동이나 장애인 등 범죄 취약계층이 입은 피해는 공익신고자가 고발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경찰 수사 결과에 불복할 수 없도록 한다면 경찰의 불송치 결정이 이 사람들에게는 법원 판결과 사실상 똑같아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수부를 6개 부서에서 3개로(박 의장 중재안) 줄이거나 6천 명에 달하는 검찰 수사관을 없애는(원안) 내용도 사라졌다. 수정안이 본회의 문턱을 넘더라도 검찰 조직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검찰 안팎 "졸속입법 예고된 참사…사회적 약자만 피해"
이렇듯 발의 후 수정을 거듭한 누더기 개정안이 나온 것은 전적으로 무리한 입법을 추진한 민주당의 책임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한 검찰 간부는 "처음 발의한 법안부터 무엇부터 지적을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워낙 엉망이었다. 수정안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위헌 소지가 곳곳에 많다"고 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공청회도 제대로 한 번 열지 않고 법안을 발의했는데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정략적 사보임, 중재안 파기 등 여야 갈등까지 연일 불거졌다. 민주당 안에서조차 반대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법안이 처음과 달라졌다"라며 "향후 법 시행으로 초래할 국민 피해는 누가 책임질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른 검찰 출신 변호사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변호사 시장이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면서 "현재는 형사 사건의 경우 판례 상 성공 보수를 받지 못하지만, 사건 수사 단계를 쪼개 수임을 하면 돈 없는 피해자는 점점 더 법률 구제를 받기 어려운 구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