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챔피언결정전에서 0승4패로 진 경험이 있는데 0승4패로 져본 사람만 그 기분을 알 수 있어요. 사람은 실패를 통해 성장합니다. 전혀 긴장되지 않구요. 빨리 KGC인삼공사와 붙고 싶습니다"
2021-2022 KGC인삼공사 정관장 프로농구 정규리그에서 서울 SK를 1위에 올려놓은, 그 기세를 몰아 4년 만에 다시 챔피언결정전 무대를 밟은 KBL 간판 가드 김선형의 말이다.
2010년대 초반은 중앙대 전설 출신들이 KBL 무대를 주름잡았던 시기다. 안양 KGC인삼공사의 간판 빅맨 오세근은 데뷔 첫 시즌인 2011-2012시즌에 챔피언결정전 MVP에 오르며 이름을 날렸다. 김선형은 2년 차였던 2012-2013시즌 결승 무대에 올라 단기간에 첫 우승 도전의 기회를 잡았다.
루키 시즌에 '동부산성'을 무너뜨렸던 오세근과 달리 김선형에게는 넘지 못한 벽이 있었다. 바로 울산 모비스(지금은 현대모비스)에서 활약하던 레전드 가드 양동근의 존재였다.
SK는 한 경기도 잡지 못하고 모비스에게 무릎을 꿇었다. 팀의 메인 볼핸들러로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던 김선형은 결승 4경기에서 평균 8.3득점, 야투 성공률 26.7%에 그쳤다. 반면, 양동근은 14.3득점, 4.0리바운드, 4.0어시스트로 활약해 만장일치로 챔피언결정전 MVP가 됐다.
이후 김선형은 성장을 거듭 했다. KBL을 대표하는 가드가 됐고 국제 대회에서도 화려한 기량을 뽐냈다. 2018년에는 데뷔 후 처음으로 챔피언결정전 우승의 감격도 누렸다.
하지만 당시 김선형은 발목 부상 여파 때문에 100% 컨디션을 발휘하지 못했다. 올해는 다르다. 김선형은 29일 서울 KBL센터에서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몸 상태가 최고조"라며 "경험도 더 많이 쌓였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챔피언결정전이 더 기대됩니다"라고 말했다.
김선형은 미디어데이 행사 전후로 취재진과 만나는 자리에서 "빨리 경기를 하고 싶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중앙대 시절 무적의 동료에서 이제는 우승을 놓고 경쟁하는 라이벌로 만난 오세근을 언급했을 때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KGC인삼공사의 간판 가드 변준형에 대한 질문이 나왔을 때 그의 눈빛은 더욱 또렷해졌다.
김선형은 "예전에는 항상 제가 도전하는 입장이었는데 지금은 제가 받아주는 입장이 됐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런 매치업이 더 기다려집니다"라고 말했다.
이유는 딱 하나, 그의 경쟁심을 제대로 자극하는 무대에서 KBL 최고 자리를 노리는 젊은 가드와 만났기 때문이다.
김선형은 "단신 외국인선수가 뛰었을 때 저는 농구를 무척 행복하게 했어요. 스스로도 발전했던 시즌 중 하나였습니다. 특히 조 잭슨 선수와의 매치업이라든지, 그런 매치업을 항상 기다려왔습니다. 그런 매치업이 계속 나와야 농구 팬들도 좋아하실 거구요"라고 말했다.
김선형은 이대성, 이정현 등 스타급 가드들과 맞붙었던 고양 오리온과 4강 플레이오프를 돌아보면서도 "굉장히 재밌었어요"라는 말을 남겼다. 이처럼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는 강력한 매치업은 오히려 김선형에게 좋은 자극제이자 동기부여가 된다.
하지만 김선형은 1대1 승부에 '올인'할 생각이 없다. 목표는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팀의 우승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챔피언결정전 경험은 그를 더욱 성숙한 선수로 만들었다.
김선형은 "저와 준형이가 모두 공격형이라고 해도 얼마나 운영을 잘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플레이오프는 과열될 수 있기 때문에 침착해야 하고 그 역할을 포인트가드가 해줘야 하니까요. 그런 부분에서는 제가 더 경험이 있다 보니까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