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도 놀란다는 말이 있다. 지금 중국에서 펼쳐지고 있는 상황을 잘 설명해주는 말이다.
중국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도시였던 상하이의 한 달에 가까운 봉쇄로 그 안에 사는 주민들이 먹거리 등 생필품 부족에 시달린다는 소식을 알게 모르게 전해들은 수도 베이징시 차오양구 일부 지역에서 사재기가 나타나고 있다.
차오양구에서는 방역 당국이 지난 23일 기자회견에서 관내 한 중학교를 중심으로 일주일 동안 코로나 19가 은밀하게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하고 22일부터 24일까지 사흘간 48명의 감염자가 나오자 당국이나 주민들이나 비상이 걸렸다.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왕징도 차오양구 관할이다. 25일 아침 두부 한모를 사기 위해 현재 주거 단지 뒤쪽의 슈퍼마켓에 들렀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매장으로 입구로 들어가기 위해 핸드폰에 고정했던 시선을 뗀 순간 계산대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했다. 순간적으로 '아, 이게 사재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슈퍼는 개장한지 얼마 안됐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편도 아닌 것 같아서 언제 문 닫을까 속으로 생각했던 곳이다. 그런데 인구 350만 명의 차오양구에서 감염자가 사흘 동안 50명도 안 나왔는데도 생필품을 집에 쟁여놓기 위해 라오바이싱(일반 서민)들이 슈퍼로 몰려나온 것이다.
점원들에게서는 처음 본 사자 인파 때문인지 목소리에 힘이 느껴졌다. 물건도 아직은 모자라지 않은 것 같았다. 고기 파는 곳, 생선 파는 곳 모두 붐볐다.
슈퍼에 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두부 코너에 들렀지만 평소 사던 두부는 품절됐는지 없고 품질을 장담하지 못하는 수제 두부 몇 모가 비닐봉지에 쌓여 있었다. 부근의 채소 코너는 드문드문 바닥이 드러난 곳이 보였다.
집 앞에 있는 또 다른 슈퍼마켓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 곳은 비교적 비싸고 고급스러운 곳이어서 설마 여기까지 그렇겠냐는 생각을 했지만 방심이었다. 가게 밖에서 얼핏 보이는 계산대 풍경이 장난이 아니었다. 계산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이 마저도 과소평가였다.
매장 안에 들어서자 계산대를 향해 선 줄이 온 매장을 감싸고 있었다. 비교적 매장이 크고 고급화 전략을 앞세운 곳이어서 계산대가 매장 좌우 두 곳에 있는데 두 곳 모두 긴 줄이 만들어졌다. 채소 코너에도 줄이 길게 만들어져 있어서 채소 구하기 전쟁이 벌어졌구나 생각했지만 계산대에서 시작된 줄의 연장이었다.
두부 달랑 한 모 사기 위해 채소코너 앞 인파를 헤치고 들어갈 엄두도 안 났지만 5위안(약 900원)짜리 두부 한모 사기 위해 1시간 이상 줄을 설 엄두가 나지 않아 일단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게를 나왔다. 횡단보도를 건너 현재 사는 아파트 안에 들어서자 핵산 검사를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주민들이 보였다.
차오양구는 전날 25일부터 연속 3일간 핵산 검사를 실시한다며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한국에서는 하루에 50만 명 가까이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을 때도 물건 사재기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베이징의 중심구 가운데 하나인 차오양취에서는 사흘간 50명도 안 되는 감염자 발생에 놀란 물건 확보에 나선 것은 상하이 봉쇄로 벌어지는 현상을 똑똑히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지금 힘들어 하는 것은 코로나19가 아니라 '동타이칭링'으로 불리는 방역 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