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중재안에 막판 합의한 건 그간 강행 처리에 따른 '꼼수 비판' 역풍이 거세지자 출구 전략을 찾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일부 강경파는 중재안을 받아들인 것에 대해 여전히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갈등의 불씨가 남은 상황이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22일 의원총회를 열고 박병석 국회의장이 내놓은 '검수완박' 중재안을 수용한다고 밝혔다. 같은날 국민의힘 측도 중재안을 받아들인다고 발표했다.
앞서 박 의장은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되 검찰의 6개 직접 수사 분야 중 부패·경제 2개 분야를 한시적으로 남기는 내용의 중재안을 발표했다. 검찰 수사권을 넘겨받는 중대범죄수사청(한국형 FBI) 구성을 논의하는 사법개혁특위도 구성해 6개월 내 입법을 완성하자고도 했다. 검찰이 송치사건에 대해 일정 범위 내에서만 보완수사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는 당초 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한 원안에서 유예 기간도 길어지고 보완수사 범위도 넓힌 것이지만, 민주당은 2시간의 토론 끝에 타협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민주당 "'꼼수 입법' 역풍…출구전략 필요"…국힘, 반대 명분 적어 '극적타결'
민주당이 한 발 물러선 것은 최근 검수완박 추진을 강행하면서 '꼼수'를 부린다는 비판 역풍을 강하게 맞았기 때문이다.
특히 법제사법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안조위)를 무력화하기 위해 민주당 소속 민형배 의원이 지난 20일 탈당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회법에는 상임위원회에서 이견이 있는 법안을 안조위에서 최장 90일 동안 논의한 뒤 전체회의에 회부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안건조정위에서 통과되면 사실상 법안이 의결 수순을 밟을 수 있다.
그런데 민주당은 여기에 민 의원을 무소속 의원으로 배치해 안건조정위원 6명 중 강제 종료에 필요한 4명(민주당 3명+민 의원)을 충족시키려 한 것이다. 기존에 민주당 출신 양향자 의원을 무소속으로 배치했는데, 양 의원이 '검수완박 강행에 반대한다'는 입장이 공공연히 전해지자 급히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당초 안건조정위는 다수당의 횡포를 막기 위해 2012년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이 앞서 추진한 국회선진화법의 한 장치다. 다수당이 된 민주당이 이 장치를 이용해 법안 추진을 강행하자 꼼수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지난 2020년 총선 당시 다수 의석을 활용해 위성정당을 창당한 것과 비슷한 광경을 재현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민주당은 최근까지 위성정당 창당에 대해 거듭 사과해왔다.
당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쏟아져나왔다.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민 의원이 당적을 바꾸면서 안건조정위의 국회선진화 취지를 훼손했다. 또 다시 편법을 관행으로 만든 것"이라며 "검찰개혁은 반드시 추진할 시대적 과제지만 입법과정이 정당하지 못하면 법안 취지도 공감을 얻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같은당 박용진 의원도 라디오에 출연해 "달력 정치에 몰두하다 보니 국민적 공감대를 잃고 소탐대실하다 자승자박으로 가는 구도에 우리 스스로 빠졌다"고 자조했다.
평소 당내 강경파에 대한 쓴소리를 이어오던 이상민 의원은 20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렇게 정치해서는 안 된다. 고민이 있었겠지만 정치를 희화화하고 소모품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라며 "어렵고 복잡할수록 원칙대로 정공법으로 가야 한다. 국민께서 지켜보고 있다. 헛된 망상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 분별력 있게 하자"라고 촉구했다. 여기에 조응천, 김병욱, 이소영 의원 등도 비판을 쏟아냈다.
이런 상황에 이르자 의원총회에서도 중재안을 수용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고 한다. 의원총회에 참석한 한 의원은 "검찰개혁 강행의 근거는 결국 공약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적인 측면이 근거로 작용했던 것"이라며 "법안 통과에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다른 중진 의원도 "꼼수 입법이라는 역풍이 생각보다 강해 당 차원에서 출구전략을 찾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갈수록 여론 지형이 불리하게 돌아갈 수 있어 지금 중재안을 받아들이는 게 최선일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와 맞물려 검찰개혁에 강하게 반대할 명분이 적다고 판단한 국민의힘이 중재안을 수용하면서 극적 타결로 이어졌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기본적으로 검찰의 수사권-기소권 분리에 동의했기 때문에 큰 틀에서의 검찰개혁 흐름에 반대하기 어렵게 됐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전날 의원총회 직후 "협상이라는 것이 한 쪽의 요구를 다 수용할 수가 없다"며 "대한민국의 형사사법체계를 근본적으로 흔들지 않으며 부정부패도 척결하고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 타협했다"고 설명했다.
또 민주당이 강행에 나선다면 국민의힘 입장에서 실질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는 계산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에 나선다 하더라도 민주당이 회기를 쪼개 중단시키면 입법 처리가 가능하다.
당내 대립구도 뚜렷해진 민주당…박홍근 리더쉽 '시험대'
민주당은 당장 여론의 포화는 피했지만 당내 일부 강경파가 여전히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내홍 수습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검수완박 추진에 앞장서온 김용민 의원은 합의 직후 SNS를 통해 "박 의장의 중재안 제안과정은 헌법파괴적"이라며 "입법권을 가진 민주당 국회의원 전원의 찬성으로 당론을 정했는데 의장이 자문그룹을 통해 만든 안을 최종적으로 받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입법권 없는 자문그룹이 실질적인 입법권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민형배 의원도 "의장이 입법권을 전유했다"며 "의회민주주의 파괴다. 의장이 의원은 물론 국회 밖 의견까지 포함해 의원들에게 강요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강경파 지지를 업고 "검수완박을 무조건 처리하겠다"는 강행 입장을 견지해 온 박 원내대표의 리더쉽도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이번 중재안 합의로 검수완박 추진에 제동이 걸렸다고 판단될 여지가 있어서다. 당장 일부 강성 지지자들은 검수완박에 소극적인 일부 의원들에게 문자 폭탄 등을 보내며 압박하고 있다.
특히 당 내 강경파와 소장파의 대립 구도가 뚜렷해진 점도 숙제다. 앞서 박 대표는 원내대표 선거 당시 '하나 된 민주당', '강한 민주당'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당선된지 한 달여 만에 당론이 쪼개진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