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공론화 11년만에 도출된 피해구제조정안이 옥시레킷벤키저 등 기업체로부터 거부된 데 대해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조정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조정위는 마지막까지 조정 성립 노력을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김이수 조정위원장은 11일 서울 광화문 변호사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조정 성립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기에는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특히 당초 주도적으로 조정을 요청했던 일부 기업 측에서 조정안을 수용하지 않는 입장을 표명해 아쉽고 유감"이라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출범 이래 6개월간의 활동 경과를 설명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도 김 위원장은 마지막까지 조정 성립을 위한 노력을 벌이겠다는 입장을 냈다.
김 위원장은 "조정위원회는 조정 성립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기에는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곧바로 조정의 불성립을 판단하기보다는 마지막까지 조정의 성립을 위한 노력을 다 해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조정안에 동의하지 않는 기업들에게 의사결정을 재고해 줄 것을 촉구했고, 조정위원회와의 추가 협의를 요청드렸다"며 "이 자리에서 관련기업 모두에게 사회적 참사인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종국적 해결을 위해 다시 한번 분담비율의 조정에 관한 추가 협의를 요청드린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조정위의 마지막 노력이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며, 조정위원회의 활동 연장 또한 섣불리 예상하기 어렵다"며 "하지만 조정위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조정 성립 위태"…입장 뒤집은 옥시에 비판
조정위는 살균제 제조기업과 피해자단체 개별 접촉을 포함해 60여 차례 회의 등을 거쳐 지난달 19일 피해지원금 조정안을 도출했다. 조정대상자 7천여 명에 총액 최소 7795억여 원에서 최대 9240억여 원의 지원금을 지급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조정에 참여한 9개 기업체 중 분담 비중이 큰 옥시와 애경 2개사가 조정안에 불수용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들 업체의 지원금 분담 비중은 60%를 넘는다고 조정위는 설명했다. 비중이 큰 업체들이 빠지면 피해지원금 조성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조정위는 특히 옥시를 비판했다. 황정화 조정위원은 회견에서 "애초 조정위원회 구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곳이 옥시"라며 "2016년 국정조사특위가, 2019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가 영국 본사를 찾아갔을 때 그곳 CEO는 피해자에 사과하고 책임을 다 하겠다는 약속을 똑같이 내놨다"고 지적했다.
조정위는 활동시한인 이달까지는 이들 업체와 추가협의를 계속 진행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일부 조정위원은 옥시 영국 본사를 찾아가 직접 타진하는 방안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전해졌다.
옥시 마음 바꿔도…피해자 '과반 동의' 등 절차 남아
조정 성립은 재원을 부담할 9개 기업체의 동의에 이어, 피해자들이 50% 이상 조정안에 동의해야 된다. 조정에 참여한 피해자단체는 13개, 이들 단체에 분산된 7천여 명 중 과반이 반대하면 이 역시 조정안 무산으로 귀결된다.
실제로 일부 피해자는 조정안에 제시된 지원금이 충분하지 않다며 반대하고 있다. 피해자단체 중 일부는 '소송전 불사'를 선언하면서 이번 조정안을 거부하기도 한다.
다만 피해자 과반 반대시 조정안이 '사회적 대타협'으로 이어지지는 못해도, 조정위는 기업의 조정안 규정 외 추가부담이 없도록 절차를 추진하고 있다. 업체들이 조성한 재원으로 '동의 피해자'는 조정안 규정대로의 지원금을 지급받는다.
소송 등 다른 경로로 구제를 받게 될 '부동의 피해자'들에게 지급될 돈도 기업체들이 조성한 재원에서 확보하고, 필요시 정부가 일부 부담한다는 얘기다. 조정위는 정부와 이같이 협상을 벌여왔다.
정권 교체 뒤 정부의 입장변화 우려 등에 대해 김 위원장은 "가습기살균제 문제는 특정 정부의 과제는 아니라, 어느 정부나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라며 "어느 시점이든 정부는 협조적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달 활동기한…조정위 향후 전략은
지난해 10월 출범한 조정위는 당초 연말까지를 활동시한으로 정했다가 2개월씩 두차례 기한을 연장했다. 기업들과 피해자단체는 이번주부터 조정 연장 논의 등을 협상할 예정이다. 양측이 조정위 활동을 불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조정위 활동이 종료된다.
그러나 사태 10년만에 출범해 이제 막 조정안을 도출한 현 조정위를 해산하기보다는 현 조직의 전문성을 활용하는 쪽이 이익일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김 위원장은 "문제를 해결하자고 출범했는데 여기서 또 실패하면 다시 10년을 보낼 수도 있는 비상 상황이라는 것 인식하고 있다"며 "4월달이 20일 정도 남아 있으니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적절치 않으나, 비상한 방법을 써보려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