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살 강은주씨의 서울살이…"나는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가상 인물로 본 서울의 2030세대 모습


아침 7시 15분. 글로리아 텔스의 '샤인 온 유(Shine On You)'가 휴대전화 스피커를 통해 방안 가득 퍼진다. 20분 전부터 울리던 노래다. 전날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밀린 회분을 정주행하느라 늦게 잠들었더니 몸이 천근만근 무겁다. 커튼을 걷으니 신원동 원룸촌이 펼쳐진 길 사이로 아침 햇살이 반짝 빛난다. 아, 모처럼 햇살인줄 알았더니 멀리 다른 건물 창에 반사된 햇빛이었다. 매일 보는데도 적응이 안 된다.  

강은주씨(28·여)는 서울시가 6일 발표한 '2021 서울서베이'를 바탕으로 2030세대 청년의 삶을 재구성한 가상의 인물이다.

2021년 기준 서울에 거주하는 2030세대는 286만명이다. 이 중 은주씨와 같은 여성은 146만명이다. 강씨 친구들은 하나 둘 서울 밖으로 떠났다. 경기도로 가족을 따라 간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직장 때문이었다. 다섯 살 많은 회사 선배는 결혼 이후 집을 구해 경기권 신도시로 최근 직장을 옮겼다. 최근 임신을 했기 때문이다. 자주 어울려 점심밥을 먹는 선배였는데 이제 누구랑 밥을 같이 먹나 하는 생각이 들자 조금은 우울해졌다.    

서울시 전출인구 2명 중 1명이 2030세대였으며 전출 사유는 20대는 가족, 직업 30대는 주택, 가족 순이었다. 7년전과 비교하면 2030의 인구는 지속 감소하고 있는데, 서울시 전체 인구 감소 비율(-5.1%)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감소(-8.2%)했다.

연합뉴스

은주씨는 10평도 안 되는 신원동 원룸촌에 산다. 지방에 거주하는 부모님과 떨어져 산지도 벌써 10년 가까이다. 서울 토박이지만 지방 출신인 부모님은 아이들이 다 컸다며 홀연히 서울을 떠났다. 오랜 전세살이에서 벗어나 널직한 아파트로 이사했다. 아버지도 30년 가까이 경기도로 출근했었다. 은주씨는 대학 입학 때부터 자취를 시작해 옮겨다닌 고시원, 원룸만 다섯 곳이 넘는다. '늦겠다. 신림역까지 빠른 걸음으로 15분이다.' 8시 10분 은주씨가 가방과 텀블러를 동시에 집자마자 문을 박차고 나선다.

서울 2030세대는 통근·통학을 위해 주로 버스,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71.5%)을 이용하고 있었다. 은주씨 역시 직장이 있는 구로디지털단지와 가까운 신림역 근처로 이사온지 2년째다. 취직 전에는 아르바이트와 인턴직을 전전하다 취업에 성공해 직장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했다. 다소 여유가 있는 퇴근시간에는 버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지하철로 5~10분 남짓한 거리지만 땅속과 반짝이는 도심의 풍경을 보는 기분은 천지차이다. 은주씨와 같은 20대(76.4%)와 30대(66.6%)는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익숙하다.

역에 가까워질수록 자신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 또래들도 심심치 않게 본다. 서울 2030세대의 절반 이상(55.4%)은 다른 시도나 은주씨처럼 다른 자치구에 위치한 직장·학교로 통근(통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정신없이 출근길을 헤치고 온 탓에 헝크러진 앞머리를 정돈한 은주씨는 컴퓨터를 켜고 하루 일정부터 체크한다. 거래처에 보낼 자료를 정리하고 팀장이 전날 요청한 보고서 두 꼭지만 정리하면 오전 일은 빠듯하게나마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점심은 누구와 먹을까?'

달력에 굵직하게 별표한 날짜에 '삼순이 여행'이라고 적혀 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들 통틀어 '인생베프'라고 꼽는 친구들과의 모임이 잡힌 날이다. 한 주에 한 번은 만나지만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멀리 여행을 떠나기로 결의한 친구들이다. 이번엔 금요일 어렵게 휴가를 보태 부산으로 가기로 했다.

서울시 제공

2030세대의 여가생활은 은주씨처럼 영상시청과 게임/인터넷 검색 등 디지털 콘텐츠 소비와 같은 실내활동이 위주였다. 주중에는 영상시청(49.7%), 게임/인터넷 검색(19.4%)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주말에는 영상시청(30.7%)과 여행/야외 나들이(14.7%), 게임/인터넷 검색(14.2%) 순이었다.

그래도 영상시청을 줄이고 여행/야외 나들이나 문화예술관람, 운동과 같은 실외활동을 희망했다. 은주씨 역시 주말까지 유튜브와 넷플릭스에 빠져살고 싶지 않아 어떻게 해서든 약속을 잡아 나간다. 여가 생활 만족도는 38.8%로 높았다. 주로 친구(37.8%)와 시간을 보내거나 혼자서(33.2%)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익숙하다.

은주씨는 일하면서도 다소 불안하다. 아직 같이 밥먹을 사람을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팀 규모도 작고 그동안 사내 분위기를 주도했던 선배가 이직하면서 팀과 어울리는 횟수가 크게 줄었다. 퇴근 후에도 대부분 혼밥이라 회사 점심시간이 거의 유일한 직장 동료들과의 스킨십 시간이다. 특히 이번 달은 친구들과 부산여행을 위해 필수 '의식주' 3가지만 소비하기로 한 터다. 은주씨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면 '회사-밥-월급-휴식-부산여행-월세'가 가득 차있다. 흠…남자친구와 헤어진지 1년, 연애는 가물가물하다.

2030세대의 거의 절반(46.6%)는 스트레스를 느끼고, 주 원인은 대인관계(23.0%), 재정상태(22.7%), 과도한 업무/학습량(22.2%)으로 나타났다. 2년간의 코로나19 유행을 겪는 동안 우울감은 감소했지만, 2030세대가 느끼는 행복감도 코로나19 발생 전보다 더 낮아졌다.

은주씨는 똑같이 일하고도 여성이 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 때는 끼리끼리 어울려 다니다보니 그런가보다 했지만 사회생활 내내 아르바이트와 직장에서 여성이라는 존재를 좀 더 쉽게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래 남자친구나 동료들도 선배들에게 깨지고 끌려다니는 모습이 불쌍하하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가 여성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얼마전 다른 팀 직원들과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한 남자 팀장이 집요하게 남자친구나 연애관을 물었다. 앞에서는 슬기로운 직장생황을 위해 마지못해 '억지 웃음'을 지어보였지만 돌아오는 길에 다른 여직원들과 '별꼴'이라며 욕을 한바가지 했다. 은주씨가 '꼰대 상사'들과 어울리기 싫은 이유다.  

2021년 2030세대의 고용형태는 정규직(67.7%), 무기계약직(19.3%), 기간제 계약직(11.9%), 유급 인턴(1.0%)이었으며, 30대로 들어서면서 정규직 비율이 높았다. 20대의 50% 정도는 월평균 소득은 200~300만원으로 성별 간에 큰 차이가 없었으나 30대에 들어서 남성의 약 40%는 250~350만원, 여성의 40%는 200~300만원으로 성별간 소득 차이가 관찰되었다.


정치권·청년층 단골 소재인 '공정' 역시 세대별 차이가 나타났다. 교육기회, 취업기회, 법 집행, 공평과세, 성평등 부분에 있어 40대 이상의 평가는 상대적으로 나았지만 2030세대는 모든 부문에서 불평등하다는 반응이 컸다. 성평등에 대한 공정성 인식 부분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름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여러 회사 인턴직을 전전하기도 했던 은주씨는 중소기업에 정규직으로 입사했다. 급여는 만족스럽지 않다. 1년간 인턴을 마치고 2년차에 250만원이 채 안되는 급여내역서를 받았다. 4대보험이니 월세니 카드값이니 떼고 나면 월 적금은 빠듯하다. 은주씨는 1년 만 더 열심히 커리어를 쌓아 판교에 있는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IT 회사에 들어갈 계획이다. 한 회사에 오래다닐수록 손해라는 이직한 선배의 이야기가 잠자리마다 맴돌았다.

"경력이 쌓일수록 승진이나 급여,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더 적어지는 현실을 마주하게 될 거야. 그냥 네가 하고싶은 것 하고싶은대로 하며 사는 게 가장 행복한거야. 20대니까? 젊어서 고생은 사서한다고? 시간 그거 금방이야. 아무도 보상 안해줘."

은주씨는 결국 보고서 마무리가 밀려 혼자 늦은점심을 하고 있다. 휴대폰으로 친구들과 카톡으로 부산여행 리뷰와 해운대 백사장 사진을 공유하며 '조용한' 수다를 즐긴다. 은주씨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진다.

'2021 서울서베이' 조사 결과 및 2030 심층 분석 결과는 서울시 열린데이터광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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