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돼지의 왕' 연상호·탁재영이 밝힌 #19금 #학폭 #한국사회

티빙 오리지널 '돼지의 왕' 11년 만에 12부작 시리즈물 탄생
'연상호 월드' 디스토피아에 스릴러 더해 리얼하게 몰입감 유발
연상호 감독 "한국 계급사회 비극 효과적으로 보여주자 생각"
탁재영 작가 "자기 검열 없는 어른들 스릴러…복수 딜레마 존재"

※ 스포일러 주의

왼쪽부터 티빙 오리지널 '돼지의 왕'의 탁재영 작가와 원작자 연상호 감독. 티빙 제공
연상호 감독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이 11년 만에 OTT 시리즈물로 돌아왔다. '연상호 월드' 특유의 어두운 디스토피아 감성은 여전하지만 이번엔 학교 폭력(이하 학폭) 트라우마를 넘어서 연쇄 살인 복수극이 펼쳐진다.

96분 짜리 애니메이션은 실사 시리즈로 제작되면서 어떻게 12부작 복수극으로 탈바꿈 됐을까. 원작자 연상호 감독과 각색을 맡은 탁재영 작가가 의기투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탁재영 작가는 "원작 팬이라 이걸 보셨던 많은 분들이 드라마를 보시면서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망작'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원작의 정서와 감정, 메시지를 그대로 전달하고 싶었다"며 "다만 시청자분들이 메시지를 재밌고 몰입감 있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스릴러를 강화시켰다"고 설명했다.

연상호 감독 역시 "원작은 과거를 회상하는 어른들의 이야기, 즉 아이들의 이야기가 '주'다. 단순히 영화를 늘린 게 아니라 획기적인 오리지널 스토리가 필요하고, 강력한 장르가 더해져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게 일종의 복수극, 즉 연쇄 살인이 아니었나 싶다"라고 전했다.

티빙 오리지널 '돼지의 왕'에서 주인공 황경민 역을 맡은 배우 김동욱. 티빙 제공
하필 복수극을 '연쇄 살인'의 형태로 택한 이유는 과거 '돼지의 왕' 당시 받았던 질문에 있었다.

연 감독은 "처음에 탁 작가에게 '돼지의 왕' 드라마화를 제안했을 때 '이걸 어떻게 쓰지'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돼지의 왕' 애니메이션 당시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가 그 시절의 가해자는 어떻게 살고 있느냐는 거였다. '우리 사회에서 평범하게 잘 살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현재 살고 있는 가해자의 모습, 복수극 형태의 장르물을 만들어서 차별화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11년 전 관객들 질문에 대한 답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돼지의 왕'은 한국 사회 이면의 계급주의와 성과주의 민낯을 폭로한다. 진실이 드러날수록 학폭을 겪은 피해자들이 성인이 돼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또 과거의 트라우마가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지 샅샅이 들여다 보게 된다.

티빙 오리지널 '돼지의 왕'에서 정종석 역을 맡은 배우 김성규. 티빙 제공
20년 전 학폭을 잊지 못하는 주인공 황경민(김동욱 분)과 학폭 피해자에서 경찰이 된 정종석(김성규 분)을 두 축으로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기도 한 복합적 캐릭터들의 서사가 펼쳐진다.

연 감독은 "한국의 계급사회가 가지고 있는 비극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자고 생각했다. 주인공 황경민이 휘두르는 복수의 칼날이 가해자와 피해자로 이등분돼 보여지는 것 같지만 회가 거듭할 수록 이들이 당한 폭력이 복합적이고 복잡한 상태가 된다"고 밝혔다.

이어 "11년 전 '돼지의 왕'이 그렸던 디스토피아는 현재진행형이다. 사회가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의지가 존재해야 변하는데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더 고도화됐다"며 "한국 사회는 성과주의, 계급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나 또한 그렇다. 한 작품마다 성과에 대해 생각을 한다. 거기에서 벗어나 좀 더 개인적으로 즐거운 작품을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사회를 변화시키는 작은 실천적 태도나 생활 습관 같은 게 아닐까 싶다"라고 고백했다.

원작에 없었던 강력계 경위 강진아(채정안 분)는 관찰자의 눈으로 '돼지의 왕'을 바라본다. 정의감 넘치는 원칙주의자 강진아는 폭력의 순환 고리에 있는 다른 인물들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탁 작가는 "채정안씨가 맡은 강진아로 인해서 '돼지의 왕'이 보여주는 문제에 대한 대안을 찾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원작에서는 겁 많은 인물들이 적을 상대하기 위해 무리를 만들고, 그 무리 안에서 계급이 생기고, 또 다른 폭력이 발생한다. 그러나 강진아는 자기 신념대로 무리에 속하지 않고 진실을 찾아나가는 캐릭터로 다른 인물 군상들과 차별점을 가진다"라고 강조했다.

티빙 오리지널 '돼지의 왕'에서 강진아 역을 맡은 배우 채정안. 티빙 제공
이에 연 감독도 "'돼지의 왕'은 뒤틀린 남성성이 가 닿는 비극에 관한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다. 강진아 형사의 눈으로 그 뒤틀린 남성성을 목도하게 하는 구성 자체가 좋았다"고 덧붙였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소위 '19금'이긴 하지만 과거 학폭 장면이나 황경민의 복수 장면에서 폭력성과 선정성 고민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보여주되 '복수'에 대해서는 딜레마에 빠지도록 만들었다.  

탁 작가는 "과거 끔찍한 학폭을 겪은 인물이 현재 이걸 해소하고자 하는 노력이나 행동을 각자 방식으로 한다. 시청자가 납득이 되고 몰입이 되려면 과거 사건들을 꾸미지 않고 솔직하게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OTT로 넘어오면서 자기 검열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건을 리얼하게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어른들을 위한 스릴러이기도 하고, 솔직함과 진솔함이 있어야 시청자들이 울림 있게 받아들이리라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또 "아마 극 초반 부분에서는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것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통쾌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중후반에 갈수록 피해자가 똑같은 방식으로 복수하는 것이 정당한가, 주인공의 딜레마를 시청자들이 같이 고민하게 될 것이라 본다. 내가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문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여러 생각이 오가지 않을까 싶다"라고 덧붙였다.

형사 처벌은 어렵지만 학폭은 피해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연예계에서 폭로된 많은 학폭 사건들이 대중들의 지탄을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상호 감독은 10대에게 '학교' 외에 커뮤니티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어떻게든 폭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계급주의, 성과주의도 그렇지만 어떤 커뮤니티 안에서 받은 폭력을 해소할 다른 커뮤니티, 그러니까 한 인간이 여러 세계관 갖고 있는 게 중요하단 이야기"라며 "학폭도 학교가 아이들 인생 전부를 차지하는데 거기서 받은 상처가 해소가 안되니까 문제가 된다. 폭력을 정당화하기 보다는 폭력을 치유하고 상호 보완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갖고 있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게 고도화 되고 있는, 폭력 노출 사회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한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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