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모성과 현대사 비극의 평행세계 '패러렐 마더스'

외화 '패러렐 마더스'(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외화 '패러렐 마더스' 스틸컷. 찬란 제공
※ 스포일러 주의
 
개인의 비극과 현대사의 비극, 같은 상황 다른 입장의 두 여자, 드러내고자 하는 진실과 감추고자 하는 진실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동시에 평행하게 달려간다. 이를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페넬로페 크루즈와 함께 감각적이면서도 매력적으로 '패러렐 마더스'라는 하나의 이야기 안에 담아냈다.
 
홀로 출산을 준비 중인 사진작가 야니스(페넬로페 크루즈)는 같은 병실에서 17살의 어린 산모 아나(밀레나 스밋)를 만난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딸을 낳은 야니스와 아나는 짧지만 깊은 우정을 나눈다. 그 후 야니스는 아나와 자신의 딸이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진실을 알리지 못한 채 아나와 점점 더 가까워져만 간다.
 
세계적인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과 전 세계를 매료시킨 명배우 페넬로페 크루즈의 8번째 만남으로도 화제를 모은 '패러렐 마더스'는 같은 날 아이를 낳은 두 여자 야니스와 아나 사이의 사랑과 배신, 진실과 거짓을 그린 멜로 스릴러다.
 
영화는 야니스의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해 이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듯 보이지만, 이와 함께 스페인 현대사의 비극인 스페인 내전에 대해서도 평행하게 배치해 가져간다. 양극화된 정치와 역사는 스페인 내전으로 이어졌고, 당시 희생자 수는 폭격·처형·암살 등으로 희생당한 사람을 포함해서 약 1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현대사의 아픔, 모성, 정체에 관한 이야기는 각각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얽혀 들어간다.
 
외화 '패러렐 마더스' 스틸컷. 찬란 제공
법의인류학자에게 스페인 내전 희생자 유해 발굴 작업을 문의하는 야니스는 그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갖게 되고, 한 병실에서 아나와 만나며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렇게 역사와 현재의 이야기가 교차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중요한 두 단어는 'DNA'와 '발굴'이다. 야니스는 자기 딸과 자신의 뿌리를 찾는 작업을 진행하고, 이 과정에서 개인의 트라우마와 스페인 현대사의 트라우마를 발굴하는 작업이 벌어진다. 이 모든 작업은 '정체성'과도 연관된다.
 
야니스와 아나는 서로 다른 성향의 인물이다. 두 사람 모두 갑작스러운 임신을 경험했지만, 야니스는 이를 받아들이고 아나는 두려워한다. 자신에게 닥친 임신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두 시선만큼 다른 형태의 모성과 정체성이 존재한다.
 
우연한 임신에 대해 후회하지 않고 전문직 여성으로서 자기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려는 야니스,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인해 불안과 혼란을 겪는 청소년과 어른 사이 경계에 놓여 있는 아나, 임신으로 자신이 꿈을 포기해야 했던 테레사 등 세 명이 지닌 모성과 정체성에 관한 고민이 그려진다. 이들은 생물학적 엄마, 사회적 엄마, 그리고 모성에 대한 우리들의 오해와 사회의 왜곡을 대변한다. 그 안에서 여성은 연대의 힘으로 불안과 혼란을 이겨나간다.
 
야니스는 자신의 딸 세실리아가 알고 보니 아나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아나에게 사실을 고백하지 않는다. 진실을 감춘 관계는 불안정할 수밖에 없고, 야니스 또한 이러한 사실로 인해 불안에 시달린다. 결국 자신의 침묵이 잘못된 일임을 깨닫고 아나에게 솔직히 고백함으로써 세실리아의 뿌리를 찾아준다.
 
외화 '패러렐 마더스' 스틸컷. 찬란 제공
여기서 재밌는 지점은 야니스는 내전 희생자의 뿌리를 찾고 비극의 진실을 드러내고자 하지만, 세실리아의 뿌리와 개인적인 비극의 진실은 숨기고자 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과거와 야니스는 미래를 향해 두 갈래로 나뉘는 분기점에서 다른 선택을 한다. 야니스는 모든 것을 감당하고 진실을 드러내기로 한다.
 
야니스의 행동은 잘못에 대한 인정과 이에 대한 책임을 말하는데, 이는 영화 속 또 다른 이야기의 주제인 현대사와 맞닿아 있다. 영화 속 야니스도 이야기하듯이 역사의 비극에 담긴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질 것은 책임지면서 뿌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서로 별개의 것으로 보였던 개인적인 이야기와 집단의 이야기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으며 하나로 수렴된다. 이러한 개인과 역사의 교훈은 그 이전, 지금 그리고 다음 세대의 어머니로 이어진다.
 
야니스와 아나, 테레사 등 여성들은 자신 안의 비극 안에서 갈등하고 상처받지만 상대에게 상처를 내지만, 이를 파괴적인 방향으로 가져가지 않는다. 내전과 그 이후에서 보았던 폭력성과 무책임과 달리 그들은 더욱 성숙하게 자신의 과오를 책임지고, 상대의 과오를 직시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평행한 위치에서 동등하게 다시 앞을 향해 나아간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서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놓인 주인공 야니스의 직업이 사진작가라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보통 여성은 프레임 안에서 관찰의 대상이 되지만, '패러렐 마더스'에서 야니스는 프레임 밖에서 자신이 담아내는 여성을 기존의 남성적 시선에서처럼 대상화하지 않고 한 명의 존재로 바라본다.
 
개인적인 동시에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이야기를 동시에 하는 '패러렐 마더스'는 내전이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에게 그들의 삶과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얼마나 잔혹한 일이 있었는지도 언급하고 넘어간다. 이 비극의 스페인 역사에서 강인한 여성들은 세대를 거듭하며 더욱더 단단하게 연결된다.
 
외화 '패러렐 마더스' 스틸컷. 찬란 제공
영화의 마지막, 서로의 비극을 딛고 아이의 뿌리,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 두 존재가 함께 발굴 현장을 직시하는 모습은 비로소 각자의 갈래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던 이야기를 하나로 합치고, 관객들에게 영화의 메시지를 보다 뚜렷하게 바라보도록 만든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서 여성을 중심에 두고 여성들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도록 해왔고, 이번에도 여성을 통해 여성과 역사를 이야기한다. 특유의 원색적인 강렬함이 가득한 미장센이 돋보이며, 특히 감독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빨간색이 곳곳에서 감각적으로 빛난다. 부드러운 페이드아웃과 상황에 대한 시적인 표현, 순간에 집중하게 만드는 클로즈업이 야니스의 감정과 이야기들을 매력적으로 연결해 나간다.
 
알모도바르 감독의 페르소나 페넬로페 크루즈는 과거와 현재, 역사와 개인을 오가는 복잡하고 감정적이고 정치적인 이야기 안에서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뚜렷하게 감정과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또한 감독의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배우 로시 드 팔마, 줄리에타 세라노 그리고 아나 역을 맡은 신예 밀레나 스밋의 연기는 깊은 인상을 남긴다.
 
122분 상영, 3월 31일 개봉, 15세 관람가.

외화 '패러렐 마더스' 메인 포스터. 찬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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