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 "적어도 디지털 자산 분야만큼은 규제 걱정 없이 민간의 자율과 창의가 충분히 발휘되도록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네거티브 규제란 법으로 금지하는 것 빼고는 모두 허용하겠다는 뜻으로, 시장 활성화에 무게추를 둔 것이다.
그의 이 같은 인식을 잘 반영하는 공약 가운데 하나가 ICO의 단계적 허용이다. ICO, 즉 가상화폐 공개(Initial Coin Offering)는 사업주체가 가상화폐를 발행, 투자자들에게 팔아 자금을 모으는 행위를 뜻한다.
국내에선 금융당국이 투기에 가깝다고 판단해 이 행위를 2017년부터 전면 금지했다. 유사수신 등 사기 위험이 증가하고, 투기 수요가 몰리면서 소비자 피해가 확대될 수 있다는 게 핵심 이유였다. 이 때문에 그동안은 사업주체들이 해외에서 가상화폐를 공개하고, 국내 거래소가 이를 위탁 판매하는 일종의 우회 상장 방식을 택해왔다.
윤 당선인은 공약집을 통해 국내 ICO 허용 방식과 관련 "우선 안전장치가 마련된 거래소발행(IEO·Initial Exchange Offering) 방식부터 시작하겠다"며 "투자자가 거래소를 통해 코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방법인데, 거래소가 중개인이 돼 프로젝트와 투자자 사이에서 검증자와 중개의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가상화폐 발행처에서 ICO를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게 아니라, 우선 가상화폐 거래소라는 비교적 안전지대에서 이를 심사·대행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시장 활성화도 중요하지만, 거래소의 심사 역량에도 물음표가 붙는 만큼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 보완 논의에도 그만큼의 무게가 실려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현재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이 '가상자산 실명거래제' 역할을 하며 거래소에 관련 의무를 부여하고 있지만, 가상자산을 별도의 산업으로 규정해 육성·규제하는 내용의 이른바 업권법은 국회 논의단계에 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특금법은 사실상 가상자산 실명제일 뿐, 종합 규제라고 보긴 어렵다"며 "현재 존재하는 공정거래법과 자본시장법으로도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가 가능하다고 보지만, 업권법을 만들어야 한다면 자본시장법에 준하는 규제가 담겨야 한다고 본다. 그것보다 약한 규제가 담긴다면 첫 번째로 소비자 피해의 우려가 있고, 두 번째론 증권시장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 뒤따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의견이 존재하는 만큼, 윤 당선인도 업권법인 '디지털자산 기본법' 제정 역시 약속했다. 이를 통해 가상자산 부당거래 수익은 전액 환수하고 해킹·시스템 오류 발생에 대비한 보험제도도 도입·확대하는 한편, 가상자산 거래 계좌와 은행을 연계시키는 전문금융기관도 육성하겠다는 구상이지만 국회의 관련법 세부 논의가 어떻게 귀결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처럼 불확실한 상황 속 가상화폐 거래소들도 IEO 관련 실무 준비에 곧바로 착수하기보다는 일단 업권법 제정까지 관망하는 기류다. 한 실무 관계자는 거래소의 심사·검증 역량에 따라붙는 우려에 대해 "당국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게 사실"이라며 "알아서 잘 해보라고 하면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업권법이 명확히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