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었을 때도 '신민'들에게 돌려준다고 했었다. (중략) 근데 여기 안쓸거면 우리가 그냥 쓰면 안되나 묻고는 싶다. 좋은 사람들과 모여서 잘 관리할테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청와대 이전 계획에 대해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청와대를 우리가 쓰고 싶다"의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용도로 쓰고 싶은지 밝히지 않았지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허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임기를 불과 두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까지 특유의 조롱과 비아냥으로 일관하는 탁 비서관의 행태에 유감을 표한다"고 발끈했다. 그러자 탁 비서관은 "임기54일 남은 청와대 의전비서관에 신경끄라"고 곧바로 응수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회동을 다시 성사시키기 위해 이철희 정무수석과 장제원 비서실장이 물밑에서 조율하던 와중에 온라인상에서 이같은 글이 논란이 되자 양측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브레이크를 건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다음날 "당선인 측의 공약이나 국정운영방안에 대해 개별적 의사표현을 하지 말라"고 지시하며 탁 비서관에게 경고를 보냈다.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도 청와대 직원들에게 당선인 측 공약이나 정책, 국정운영 방향에 대해 SNS 혹은 언론을 통해 개인적 의견을 언급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간 탁 비서관은 청와대 의전비서관으로 복귀한 뒤부터 페이스북에 수시로 글을 올렸다. 청와대 직원들 대다수가 개인적인 SNS 활동을 최소화하고 발언에 신중을 기하는 반면, 탁 비서관은 예외로 적용됐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일정의 뒷이야기를 소개하고 자신의 감정을 거침없이 표현했다. 지난해 10월 누리호 발사 후 문 대통령이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하는 자리에 과학자들이 '병풍처럼 동원됐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를 두고 는 "철딱서니 없으며 악마 같은 기사"라고 맹비난 하기도 했다.
때론 거친 언어 표현에 참모로서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누구 하나 브레이크를 걸지 않았다. 그런 탁 비서관에게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공개적으로 자제를 지시한 것이다.
문 대통령과 유영민 비서실장의 경고를 받았는지, 탁 비서관의 관련 글은 현재 페이스북에서 삭제된 상태다.
이같은 탁 비서관에 대한 공개 경고는 유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청와대 직원들의 기강을 잡으려는 성격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선 직후인 10일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문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울컥하며 눈물을 보인 것도 청와대 안팎에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대선 패배 이후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돌발 행동을 하는 참모들에게 문 대통령이 따끔한 질책을 내리고 기강을 바로 세우려는 의도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