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윤 당선인 측의 김은혜 대변인은 "청와대에서 윤 당선인은 문 대통령과 오찬을 갖기로 했다"며 "배석자 없이 허심탄회하게 격의 없이 이야기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대선 이후 두 사람의 첫 회동 사실을 전했다.
특히 김 대변인은 "윤 당선인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사면 요청하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견지해왔다. 따라서 이번 만남을 계기로 국민통합과 화합의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한다"면서 이 전 대통령 사면 요청 계획을 공식화했다.
정권 인수를 위한 현직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의 만남, 특히 코로나19 사태와 부동산 가격 폭등, 북한의 잇따른 도발,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내외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이런 현안을 덮으며 논란으로 번질 수 있는 이 전 대통령의 사면 요청 계획을 먼저 공개한 만큼 당선인의 의지가 강하다는 걸 읽을 수 있다.
당선인이 걱정한 대로 이 전 대통령은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에 따르면 올해 82세인 이 전 대통령은 고혈압과 당뇨로 인해 우측 신경 마비 증상이 있고, 기관지도 좋지 않다고 한다.
또, 윤 당선인은 직접 언급한 것처럼 국정농단 사태로 수감된 박 전 대통령은 건강문제 등으로 지난해 마지막날 사면된 반면 이 전 대통령은 여전히 수감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형평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이 전 대통령의 사면이 국민통합에 부합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같은 표면적인 이유 외에도 윤 당선인의 핵심 측근인 소위 '윤핵관'이 과거 MB계로 분류된다는 점도 이 전 대통령 사면을 강하게 요청하는 배경이라는 지적이다.
당선인의 1호 인사로 비서실장이 된 장제원 의원과 당선인과 같은 검찰 출신으로 동갑내기 친구인 권성동 의원은 모두 이 전 대통령 당시 공천을 받아 정치에 입문해 MB계로 분류된다. 윤한홍 의원 역시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실력을 인정받아 청와대 행정자치비서관 등을 지냈다. 당선인 대변인인 김은혜 의원도 비슷한 시기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대표적인 MB계다.
이 가운데 권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에 출연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사면해주고 그보다 더 연세도 많고 형량도 낮은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안 해주는 건 또 다른 정치 보복이고, 형평성에 안 맞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 전에 결단을 내려야 할 사안이라고 본다"며 총대를 멨다.
인수위 한 관계자는 "장제원, 권성동, 윤한홍 의원 같은 핵심 인사들이 지금 전부 MB계이다 보니 아무래도 사면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사면 문제는 사실 윤 당선인이 취임하고 해도 되지만, MB가 고령인데 구치소에 계속 둘 순 없다는게 윤 당선인과 핵심 인사들의 생각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와 동시에 문 대통령 입장에서도 이 전 대통령 사면이 나쁠 게 없다는 게 당선인 측의 분석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책임이 있는 이 전 대통령의 사면이 마뜩잖은 면이 있겠지만 이를 문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수감 중인 김경수 전 지사의 사면 카드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받아들일 것이라는 얘기다.
권 의원도 "문 대통령이 최측근인 김 전 지사를 살리기 위해, 동시에 사면하기 위해 (이 전 대통령의 사면을) 남겨 놓은, 이런 정치적 함의가 숨어 있는 것"이라며 "문 대통령이 어떻게 (행동을) 취할지 한번 두고 보시라. 저는 아마 같이 사면하리라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