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 9수 끝에 늦깎이 검사…요직 거치며 승승장구
윤 당선인은 1994년 연수원을 수료한 뒤, 대구에서 초임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8년 뒤, 사표를 내고 대형 법무법인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약 1년 만에 검사로 돌아왔다. 검찰에서 야간 수사를 하며 먹었던 '짜장면' 냄새가 그립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소신…尹의 수난과 비상
윤 당선인은 당시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부당한 압력에 굴하지 않는 이미지를 얻었다. 다만, 정권의 눈 밖에 나며 지방 고등검찰청 등 한직을 전전하게 됐는데,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수사팀장으로 복귀하며 윤 당선인의 인생은 다시 새로운 전기를 맡게 됐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적폐청산 수사와 공소 유지에 성과를 드러내며 역량을 입증했다. 여권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 검찰 기수를 건너뛰고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됐고, 여권의 기대 속에 검찰총장에 직행하며 화려하게 비상했다.
그러나 일명 '조국 사태' 이후, 윤 당선인은 현 정권과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조 전 장관을 겨냥한 강도 높은 수사에 여권은 반발했고, 여당 대표 출신인 추미애 의원이 법무장관으로 기용되며 전방위 갈등을 빚었다. 결국, 윤 후보는 지난해 3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며 검찰총장 임기를 4달가량 남기고 자진 사퇴했다.
압도적 정권교체 여론에도 계속된 부침…'정직한 머슴' 녹록지 않아
다만, 정권교체에 이르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각종 실언으로 지지율이 하락했고, '전두환 옹호' 발언과 '개 사과' 논란으로 당내 경선 승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당원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국민의힘 대선후보에 최종 선출됐다.
경선 '컨벤션 효과'를 누리며 압도적 지지율 1위를 유지하려 했지만,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논란에 이준석 대표·김종인 전 비대위원장과 마찰이 계속되며 이재명 후보에게 지지율 1위 자리를 뺏기기도 했다. 결국, 선대위 해체라는 극약처방을 내리고, 끝까지 초박빙 선거 구도가 유지되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1%p차이로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윤석열 정부의 앞날도 한 치 앞을 예상하기 어렵다. 정권교체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음에도, 국민들은 윤 당선인에게 표를 몰아주지 않았고, 새로 야당이 될 더불어민주당과의 여소야대 국면 속에 원만한 협조를 기대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윤 당선인은 대통령직을 '국민의 머슴'에 빗대며 자신은 정직한 머슴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집권 시 펼쳐질 난관도 굳은 소신을 기반으로 돌파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