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메달리스트의 행동은 더 괴기하다. 누군가 다가가 껴안으려 했지만 그녀는 울화통이 터졌다. "나는 다시는 안 할거야, 진짜 증오한다구, 누구나 금메달을 따는데 나만 아니야"라고 소리쳤다. 한 소녀의 실망이라고 보기에는 도가 지나쳤다.
피겨 여자 올림픽에서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획득한 러시아올림픽위원회 셰르바코바와 트루소바 얘기다. 트루소바는 특히 저급한 스포츠맨십을 보여줬다. 금메달의 세르바코바도 지금까지 지켜 본 가장 외로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아닌가 생각됐다.
4년마다 열리는 스포츠제전, 올림픽에서 큰 압박에 시달리지 않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산더미 처럼 밀려오는 거대한 압박, 승리의 영광, 경쟁에서 좌절, 모든 선수는 올림픽 그날에 자신의 시계를 맞춰놓고 정신력과 생체리듬을 조정한다. 최고의 기량을 겨루기 위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4년 간의 단련과 연단, 그리고 수도자와 같은 고행을 불사하는 것이다. 올림픽 경기에서 어떤 운명의 신도 이 법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올림픽은 스포츠에 의한 인간의 완성과 경기를 통한 국제평화 증진에 그 정신을 두고 있다. 상호이해와 우의증진 정신으로 젊은이를 교육하여 보다 발전되고 평화로운 세계를 도모하자는 것이다. 아쉽게도 베이징 올림픽은 편파 시비와 반도핑, 선을 넘어선 지나친 국가주의 논란 등을 남긴 채 폐막됐다.
특히 러시아 피겨 선수단과 코치가 보여준 '성적 지상주의'는 이번 올림픽에서 최악의 순간을 만들고 말았다. 목도한 현실은 실망스럽고 공허한 것이었다. 더욱이 러시아 젊은 선수들의 '멘탈 붕괴'를 지켜보는 일은 착잡했고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경기 후 보인 태도는 수준 낮은 스포츠맨십 이었다. 투정과 짜증을 부리고 경기장에서 끌려나가는 장면에서 올림픽 참가 선수의 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돌발적 행동은 4년 넘게 뼈를 깎는 인고의 노력을 기울이고도 메달을 얻지 못한 다른 동료 선수들에게 폭력으로 비춰질 만큼의 반항이었다. 비록 국적이 다르고 경쟁 상대라 하지만, 동료를 배려해야 할 올림픽 정신에는 반하는 행위였다.
올림픽은 국가주의와 선수의 자아실현이 동시에 투영되고 충돌하는 현장이다. 권위주의 국가가 개최하는 올림픽에서 지도자를 부각하고 애국주의를 과시하는 행위가 촌스럽게 보이지만(우리도 한 때 그랬다), 우리 일처럼 기뻐하는 '국뽕'과 같은 애국심을 타오르게 하는 것이 올림픽의 기능 가운데 하나이다. 그럼에도 극한의 훈련을 극복하고 영광스런 자리에 오른 선수가 던지는 메시지는 다른 사람의 삶에서 위로와 힘을 주곤 한다. 자아실현은 우리 선수든 누구든 선한 영향력을 준다.
트루소바의 울화통이 터진 사건을 보고 나는 이전 올림픽 메달리스들의 수상 영상을 뒤적여 봤다. 김연아의 벤쿠버올림픽 우승 소감을 찾아 본 다음 위로를 얻었다. "기뻤던 순간은 그때 뿐이지만….항상 그런 힘든 날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연아 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