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는 삶의 비극과 인간에 대한 원작의 통찰을 물(水)의 철학으로 일컬어지는 노자의 사상과 엮어냈다. 리어와 세 딸, 글로스터와 두 아들의 관계를 통해 서로의 욕망을 대비시키면서 2막 20장에 걸쳐 인간의 어리석음을 이야기한다.
극본을 새롭게 집필한 배삼식 작가는 23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 창극 '리어' 기자간담회에서 "원작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가장 잔혹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셋째 딸 코딜리아가 살해당하고 리어왕이 죽음에 이르는 것처럼 이야기가 인과응보, 권선징악과는 정반대로 흘러간다 노자에도 '세계는 우리가 원하는 것처럼 어질지 않다'는 구절이 있다. 인의예지라는 틀 안에 삶을 우겨 넣으려는 도덕과 윤리가 지나치면 억압이나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으로 읽혔다"고 했다.
배 작가는 "이 작품은 피하고 싶지만 결국 마주할 수밖에 없는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다. 마지막을 생각하면 살아있는 모든 존재가 애달프다. 잔혹한 세계에서 살아있기 위해 애쓰고 분투하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안쓰러워하고 가엾어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이 이야기가 의미있을 것이다. 삶의 진면목은 명명백백하지 않고 쉽게 판단할 수 없는 그 곳에 있다고 노자도 생각할 것 같다"고 했다.
한승석 음악감독은 "증오와 광기, 파멸, 음모, 배신 같은 정서를 판소리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음악적 확장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무대는 고요한 가운데 생동하는 물의 세계로 꾸며져 거대한 자연 앞에서 연약한 인간의 존재를 보여준다. 달오름극장 무대에 수조를 설치해 20톤의 물로 채운다. 수면의 높낮이와 흐름이 변화하며 작품의 심상과 인물 내면의 정서를 드러낸다.
이태섭 무대디자이너는 "물이 흔들리고 반사되고 왜곡되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표현한다. 배우들이 움직이면서 물을 튀기기도 하는데 자연이 결코 어질지 않다는 작가의 의도를 반영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고정관념을 깬 캐스팅도 눈길을 끈다. 국립창극단 김준수(31)와 유태평양(30)이 각각 리어와 글로스터 역을 맡았다. 이들은 '나이 듦'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인물이 처한 상황에 집중하며 분노와 회한, 원망과 자책으로 무너지는 인간의 비극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김준수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생각하면서 관객의 공감과 이해를 끌어낼 수 있는 리어를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정영두 연출은 "'젊은 단원이 리어와 글로스터 역을 소화할 수 있을까' 우려 섞인 시선이 있었지만 두 배우의 연기를 보면서 의문이 확신으로 바뀌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