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새겨진 수많은 비극을 끊임없이, 그러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기록해 나가는 이유는 그 비극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잊히고 있는 지금에 애니메이션 '1975 킬링필드, 푸난'은 세심한 시선으로 다시금 되돌아볼 것을 권한다. '인간'이기에 기억해야 하는 것들에 관해서 말이다.
1975년,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이 공산주의 무장단체 크메르 루주에 의해 장악된다. 평범한 삶을 살던 슈의 가족들은 하루아침에 길 위로 내몰리고 피난 중에 세 살 아들 소반이 없어진다. 희망 없는 현실 속에서 모든 걸 포기하려는 순간, 슈에게 아들을 만날 마지막 기회가 찾아온다.
애니메이션계의 칸영화제로 불리는 제42회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은 '1975 킬링필드, 푸난'(감독 드니 도)은 1975년 크메르 루주 쿠데타 초기에 아들 소반과 떨어지게 된 캄보디아 젊은 여성 슈의 삶을 그려낸 작품이다.
철권통치를 이어온 시아누크 국왕을 몰아내고 탄압을 벌인 론 놀 정권에 대항해 무장 투쟁을 시작한 폴 포트는 론 놀 정권을 무너뜨리고 권력을 쥐자마자 '개조'라는 이름으로 학살을 자행했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씻어내고 '순수', 즉 사회주의 평등사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명목 아래 일어난 끔찍한 폭력이었다.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순수함'이라고 포장된 또 다른 권력의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비극은 같은 민족을 착취하고 학살하는 수순으로 이어졌다.
드니 도 감독의 '1975 킬링필드, 푸난'이 그려낸 캄보디아 푸난은 아름답고 밝은 색채, 그리고 생동감으로 빛나는 도시다. 그렇기에 그곳에서 일어난 학살과 비극의 색채는 푸난과 푸난 사람들 본래의 색채와 대비되며 더욱 아프고 처참하게 다가온다.
평범한 사람들과 그들의 평범한 일상을 무너뜨리는 것은 온전히 그들의 의지가 아닌 권력을 탐하는 자들이 만들어 낸 폭력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자유와 일상, 희망을 되찾으려는 평범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모든 것을 걸고 투쟁하며 동시에 '인간 존재'를 증명해 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폭력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모두 흩어지고 굶주림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인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버텨야 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사라지고, 생존조차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존엄을 지킬 것인가, 존엄을 포기하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칠 것인가라는 선택지까지 받아들게 된다.
어느 것을 선택하더라도 감히 비판하거나 재단할 수 없다. 어느 선택을 하던 그들 모두는 슬픔과 상처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화 속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남으려 선택지 하나를 집어 드는 이들 모두의 모습은 안타깝게만 다가온다. 슈는 이 모든 것을 눈앞에서 마주하고, 스스로도 선택을 반복하며 나아간다.
'인간'으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양심'과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는, '소중한 사람'을 지키려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마음과 의지를 폭력 속에서 온몸으로 증명하는 사람들과 슈의 발걸음을 보며 결국 인간으로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되새길 수밖에 없다.
또한 슈와 슈의 가족을 통해 우리는 역사를 되돌아보고,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는 참혹한 현실을 다시 살피는 것이야말로 '1975 킬링필드, 푸난'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다.
'1975 킬링필드, 푸난'은 당대의 역사와 그 속에 놓인 사람들의 상황과 심리를 효율적으로 보여준다. 폭력의 상황을 최소한의 방식으로 그려내는 동시에 배려 깊게 더듬어간다. 슈의 여정에 따라 달라지는 색채, 푸난이라는 자연과 인간들이 처한 상황의 색채 대비 등 영화의 색채와 공간 표현도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86분 상영, 1월 27일 개봉,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