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권력과 역술은 공존할 세계가 아니다

윤창원 기자·스마트이미지 제공
출입기자 시절, 역술인 얘기를 드물지 않게 청취했다. 특히 검찰에서 종종 들었던 기억이 난다. 역술인도 통틀어서 역술인 이라는 것이지 그 중에는 무속인도 있었고, 승려도 있었고, 주역 괘에 능하다는 사람도 있었다.
 
검찰에서 역술인 얘기가 상대적으로 좀 많았다는 점은 인상 깊다. 물론, 내 경험은 짧고 얇아서 극소수 검사의 얘기일 뿐 대다수 검사 일인 것처럼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니 아무래도 '신체 형벌권'을 가진 권력기관 이라서 그러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권력자 일수록 역술과의 관련성이 높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역술인 말을 듣고 조상묘를 옮겼다는 스토리는 흔하다. 정치 영역 뿐만 아니라 경제 권력에서도 무속인.역술인 얘기가 낯설지 않다.
 
70년대 산골벽지에서 자랐지만 고 이병철 삼성회장이 역술인을 끼고 사원면접을 본다는 얘기는 초등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다.
 
다른 정부 부처보다 검찰에서 유독 역술인 얘기가 더 등장한다는 사실을 놓고 당시 몇몇 동료 기자들과 그 사유를 따져본 적도 있다. 첫 번째는 잦은 인사 이동 설이다. 검찰 조직은 1~2년에 한 번씩 대부분 자리를 옮겨야 한다. 특히 서울.수도권과 지방으로 인사 이동이 많았다. 그 중 유독 지방을 가지 않고 서울에서 오랜 동안 근무하는 검사를 '귀족 검사'로 통칭했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모습. 황진환 기자
두 번째는 검찰에서 부장검사 급에 이르러 핵심 승진 자리에서 경로를 벗어나는 일은 미래를 결정짓는 커다란 운명이었다. 핵심 경로에서 한 번 벗어나면, 좋은 보직으로 경로를 다시 교정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단지 그것은 검찰 조직에 몸 담았을 때의 일일 뿐만 아니라 퇴직 후 변호사 수입과도 상관된 중차대한 일이었다. 경력 관리는 다른 조직도 마찬가지이지만 검찰 조직은 더 특별했다.
 
특별히 고위직 검찰 관리들은 지역 기관장으로 일할 때 그 고장서 이름난 역술인이나 속칭 '도사'를 만날 기회가 많다는 것도 통설 중 하나였다. 사람은 누구나 불안한 현재나 미래에 대한 걱정을 안고 살기 마련이다. 역술인에게 잠깐이나마 의지해 보고 싶은 경향이 있음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16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 걸린 전광판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의 '7시간 전화 통화' 내용을 다루는 MBC 프로그램 '스트레이트'가 방영되는 모습. 연합뉴스
윤석열 후보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유튜브 <서울의소리>와 대화에서 "나는 영적인 사람이라 도사들과 삶을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명사형 '영적(being spiriual)'의 사전적 정의는 '매우 신령스러움' 또는 '정신이나 영감'을 뜻한다. 또 '영감(inspiration)'은 '1.신령스러운 예감이나 느낌' 또는 '2.창조적인 일의 계기가 되는 기발한 착상이나 자극'을 말한다.

김 씨가 "삶을 도사와 얘기한다"고 첨언한 것을 감안하면 그 언급은 '창조적 기발한 착상 이나 자극' 이라기보다, '예지적 능력이나 미래를 점치는 일에 관한 능력'과  연관성이 더 높다고 해석된다.
 
김 씨가 특정의 도인들과 '양식의 대화(?)'를 나누건 말건 그건 사생활이다. 타인이 관여할 바 아니다. 문제는 그의 위치다. 그는 전직 검찰총장 부인이었다. 지금은 야당 대통령 후보의 부인이다. 윤 후보가 손바닥에 '王'자를 그리고 나왔을 때만 해도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 언급은 국민들에게 최순실 사태의 뇌관을 터치시킬 수 있는 폭발성을 안고 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왕'자를 놓고 "오방색 타령 하던 최순실 같은 사람과 윤 후보는 뭐가 다른가"라고 토론에서 한탄한 적이 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징역 18년을 선고받은 최서원(65·개명 전 최순실). 황진환 기자
항간에서 이미 '여장부 같은 스타일'이나 '툭툭 치고 나가는 화술'이 최 씨와 닮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다만 최 씨는 전직 대통령을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로 '비공식 지위'에 있었던 반면, 김 씨는 후보 부인이라는 '공식적 직위'에 있음은 차별적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제 권력 속성 상, 그 지위에 도전하는 후보 가족은 늘 비선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막후에서 공식화 되지 않은 것이 오고 가면 그 문제는 분명히 노출될 수 밖에 없다. CCtv 없는, 녹음기 없는 조선 시대에도 비선에 대한 소문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은 적이 없다.

힘이 작용하면 그 힘을 쫓아가는 사람들은 굉장한 촉각을 갖고 있다. 그러면 어느 순간에 힘이 작용하는 쪽에 레이더를 빠르게 돌리기 마련이다. 그것은 동물적이어서 통제할 방파제가 없다.
 
'권력'과 '영적인 것'은 공존할 세계가 아니다.

정보란 것은 권력자에게 쏠리는데, 그 권력자는 자기가 '촉이 좋다', '영이 있다'고 우쭐하고 착각한다. 그걸 갖고 본인 능력이라 과시하면, '길흉화복' 역술에 민주주의는 또 좌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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