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4년 전 에이스급 선수들이 모두 빠지게 됐다. 동계 스포츠 효자 종목인 한국 쇼트트랙이 간판 선수들의 공백 속에 올림픽을 치른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한국에 금메달을 안겼던 임효준(26)과 심석희(25·서울시청)가 모두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에 나설 수 없게 됐다. 임효준은 대표팀 후배 강제 추행에 따른 징계로 대표팀에도 선발될 수 없는 상황 속에 중국으로 귀화했고, 심석희 역시 대표팀 동료에 대한 욕설 및 비방으로 받은 대표 자격 정지 징계에 발목이 잡혔다.
심석희는 18일 서울동부지법 민사합의21부(임태혁 수석부장판사)가 대한빙상경기연맹 스포츠공정위원회의 징계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기각하면서 징계가 확정됐다. 지난해 12월 21일 대표 자격 정지 2개월의 효력이 생긴 것.
이에 따라 심석희는 올림픽 최종 명단 마감 시한에 걸려 대표팀에 승선할 수 없게 됐다. 심석희는 이날 법원 결정이 내려진 뒤 소속사인 갤럭시아SM을 통해 "피해를 받으신 모든 분께 죄송하다"고 심경을 밝혔다.
임효준은 2020년 6월 중국에 귀화하면서 태극 마크를 달 수 없게 됐다. 2019년 6월 훈련 도중 후배에 대한 강제 추행에 따른 징계 때문이었다. 그러나 임효준은 중국 국가대표로도 선발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빙상계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간판급 선수들이 이탈한 한국 쇼트트랙이 베이징올림픽에서 쉽지 않은 경기를 펼칠 것이라는 걱정이다. 특히 최대 라이벌 중국이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인 만큼 최대한 유리한 조건을 만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관계자는 "4년 전 평창올림픽 당시 우리나라에 밀린 중국 대표팀이 '2022년에 베이징에서 보자'고 이를 갈았다"고 귀띔했다.
이어 "임효준의 귀화 역시 중국 대표팀에서 뛰지 못해도 한국 대표팀 에이스를 빼냈다는 점에서 중국이 노렸을 부분"이라고 전했다. 임효준은 평창올림픽 1500m 금메달, 500m 동메달을 따냈다. 2019년 세계선수권에서는 1000m와 1500m, 3000m 슈퍼 파이널 등 3관왕과 함께 개인 종합 우승까지 차지했다. 한국으로선 강력한 올림픽 금메달 후보를 잃은 셈이다.
심석희 역시 마찬가지다. 심석희는 2014년 소치, 2018년 평창올림픽 여자 3000m 계주 금메달을 이끌었다. 이후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에게 당한 폭행 및 성폭행 폭로와 재판 등으로 마음고생을 했지만 2021-2022시즌 국가대표 선발전 1위에 오르며 여전한 기량을 확인했던 터였다.
하지만 위기가 곧 기회일 수 있다. 남자팀은 임효준이 빠졌지만 황대헌(23·강원도청)이 건재하다. 황대헌은 올림픽 전초전 격인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에서 1, 3차 대회 1000m와 2차 대회 500m 금메달을 따냈다. 평창올림픽 500m 은메달을 따낸 황대헌은 베이징에서 금빛 질주를 노린다.
여자팀도 중장거리 세계 최강으로 꼽히는 최민정(24·성남시청)이 있다. 평창올림픽 1500m와 계주 2관왕인 최민정은 베이징에서도 강력한 금메달 후보 0순위다.
사실 심석희의 욕설 및 비방을 한 대상자 중 1명이 최민정이었다. 최민정은 심석희가 경기 중 고의로 자신과 충돌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돼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러나 일단 껄끄러운 심석희가 대표팀에서 빠지면서 심적 부담을 덜게 됐다.
다른 선수까지 비방을 했던 만큼 심석희가 빠진 대표팀은 팀 워크에서 더 단단해질 수 있다. 올 시즌 월드컵 1~4차 대회 1500m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를 따낸 이유빈(23·연세대)도 든든하다.
대한민국 선수단은 이번 올림픽 목표로 금메달 1~2개를 잡았다. 사실상 쇼트트랙에서 금빛 낭보를 기대하고 있다. 선수 개인의 일탈로 홍역을 겪은 쇼트트랙이지만 결국 베이징에서 태극기를 휘날리게 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다. 과연 한국 쇼트트랙이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로 만들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