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방위 확장판…'과잉방위' 무죄의 의미

과잉방위? '야간·공포' 부합하면 '선 넘어도' 무죄 가능
무죄 극히 드물지만…차에 갇혀 흉기위협 동거남 찌른 女, 무죄
국민참여재판 영향도…"재판부, 이제 국민 눈높이 고려해야"
'무턱대고 과잉방위' 주장 부작용 우려도

2018년 5월 부산. 새벽 4시를 넘은 시각, A(여)씨 집 현관문 도어락이 열렸다.

문을 연 사람은 A씨의 전 남자친구. 그는 A씨가 새 애인 B씨와 함께 있는 모습을 발견하곤 흥분했다. 남성은 물품들을 던지며 욕설을 퍼부었고 A씨뿐 아니라 B씨도 폭행했다. 특히 그는 '죽여버리겠다'며 집 안에서 흉기를 찾았다.

남성과 몸싸움을 벌이던 B씨는 그를 방 바닥에 넘어뜨린 뒤 왼팔로 목을 감싸안았다. 당황한 탓에 5분 이상 그대로 제압했다. 그 사이 남성은 의식을 잃었고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B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형법 제21조 제3항에 따라 과잉방위가 인정된다고 봤다. B씨가 '과할 정도'로 대응하긴 했지만 그럴 만한 상황이었다는 것.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무엇이 쟁점이었을까.


'어둠·공포' 과잉방위 핵심 키워드

스마트이미지 제공

과잉방위는 야간이나 공포 상황에선 자신을 '과하게' 방어하더라도 처벌받지 않는 것이다. 형법 제21조 제3항은 '야간이나 공포, 경악, 흥분, 당황한 상태'에서 한 방위행위는 처벌하지 않도록 정하고 있다.

정당방위가 '선'을 지켜야만 인정받는다면, 과잉방위는 특정 요건에 부합하면 선을 넘더라도 무죄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과잉방위가 인정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엄격하게 요건을 따지기 때문이다. B씨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항소심 재판부는 과잉방위 인정 요건 중 하나인 '어둠'을 문제 삼았다. 남성을 제압한 B씨가 A씨에게 방 조명을 켜게 해 어둠으로 인한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다는 것.

또 B씨로부터 5분 이상 제압당한 남성이 도중에 의식을 잃었을 것이기 때문에, B씨의 '공포'가 지속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새벽 4시 집에 침입해 폭행하고 흉기까지 찾은 외부인. 야간과 공포·당황이라는 요건이 갖춰졌음에도 과잉방위를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B씨의 변호를 맡았던 법률사무소 시우의 이용민 변호사는 "A씨를 통해 조명을 켜서 어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판단은 공포나 당황 상태에 빠진 방위행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며 "여전히 다수의 재판부는 형법 21조 3항에 따라 과잉방위를 인정하는 것을 매우 조심스러워 한다"고 설명했다.


과잉방위 요건에 '국민 눈높이'가 더해진다면?

이한형 기자

최근 이례적으로 과잉방위로 무죄를 인정받은 판결이 있다. 수원지법 형사15부(조휴옥 부장판사)는 최근 특수상해 혐의로 기소된 C(여)씨에게 '과잉방위가 인정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해 8월 17일 자정에 가까운 시각, 친오빠 집에 다녀 온 C씨는 그의 동거남에게 외도 의심을 받았다. 술에 취한 동거남은 '친오빠를 죽이겠다'며 집에 있던 흉기를 챙겼다. 동거남은 C씨를 협박해 차에 태운 뒤 오빠집으로 향했다. C씨는 고막이 두 번이나 터지는 등 동거남에게 상습폭행을 당해왔던 터라 더욱 겁이 났다.

차에 탄 뒤에는 1분 1초가 지옥같았다. 동거남은 술을 마신 채 좁은 골목길을 내달렸다. 한 손은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은 흉기를 쥔 채 C씨를 위협했다. 흉기는 C씨의 목과 허벅지를 오고갔다. 욕설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차량이 정차한 사이, C씨는 몰래 챙겨온 과도로 동거남의 오른쪽 가슴을 한 차례 찔렀다.

늦은 밤부터 공포스러운 상황이 지속된 점, 차 안이라는 좁은 공간에 갇히고, 흉기위협까지 계속되며 방어행위가 필요했던 상황. 평소에도 폭행을 당하며 공포의 순간에 놓여있던 배경까지. 과잉방위가 인정될 만한 요건이 갖춰줬다.

여기에 국민참여재판이라는 특수한 상황까지 더해졌다. C씨는 배심원들 앞에서 자신의 공포스러웠던 상황을 호소했다. 심지어 동거남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는 배심원들 앞에서 "내가 잘못했다. 내가 C씨였어도 그랬을 것"이라고 했다.

그 결과 배심원 7명은 형법 제21조 제3항 과잉방위(불가벌적 과잉방위)에 대해 만장일치로 인정된다고 판단하면서 무죄 평결을 했다. 재판부도 같은 입장으로 C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C씨를 변호한 법무법인 해담의 양승철 변호사는 "C씨는 음주운전 차량에 감금돼 흉기로 협박을 당하면서, 오빠까지 다칠 위험이 있던 상황"이라며 "이만큼 형법 21조 3항에 들어맞는 상황은 없다"고 설명했다.

과잉방위 요건이 갖춰진 상태에서 국민들의 눈높이까지 더해지며 기록할 만한 판결이 나왔다는 의견도 있다.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 윤영선 회장은 "과잉방위를 인정받는 사례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한데, 이번 판결은 사건 당시 상황도 상황이지만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점도 의미가 있다"며 "배심원들은 '나라도 저렇게 할 수밖에 없었겠다'고 상식적으로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배심원 전원이 무죄를 주장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며 "앞으로 우리 재판부도 국민들이 생각하는 법이 무엇인지 감안을 해주셔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과잉방위 문턱 낮아지나…'무턱대고 과잉방위' 주장 우려도



새벽에 침입한 외부인을 숨지게 해 유죄를 받은 B씨 사건. 이 재판을 맡았던 이용민 변호사는 1심 무죄 판결 당시, 주변 법조인으로부터 여러 차례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과잉방위로 무죄를 받기 어려운 현실에서 이례적인 판결이었다는 것.

이 변호사는 "1심에서 과잉방위로 무죄 판결을 받자 주변 변호사들께서도 연락을 많이 주셨다"며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도 과잉방위로 무죄를 받은 사례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판례 등 국민들의 눈높이까지 더해지며 과잉방위를 인정하는 문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하지만 한편에선 무턱대고 과잉방위를 주장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으면 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인식 대신, 복수를 해도 된다는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윤영선 회장은 "그럴리는 없겠지만 법정에서 과잉방위가 쉽게 인정되면 웬만한 사건 피고인들이 모두 과잉방위를 주장할 수 있다"며 "또 일상에서도 내가 피해를 당하면 곧바로 반격해도 된다고 오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잉방위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하는 방위행위이지 무조건 맞서는 건 아니다"며 "다만 현실에선 과잉방위는커녕 정당방위도 인정되는 게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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