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현장에서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소방관으로서의 사명을 다한 데 대한 마지막 예우를 지키고 더 이상 같은 참변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반복된 희생에 깊은 슬픔…경기소방 '추모' 분위기
평택 화재가 발생한 이튿날인 7일 오전 수원 권선구에 있는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출입구에는 "당신의 숭고한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이날 신년 인사발령으로 정복을 차려입은 일부 소방관들은 왼쪽 가슴엔 근조 리본을 달았다. 직원들은 축 처진 어깨에 상기된 표정으로 사무실을 오갔다.
복도에서 마주친 한 소방관은 "한두 번도 아니고 또 세 분이나 돌아가셨다"며 "사기가 저하되고 굉장히 (마음이) 무겁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건물 안은 신고를 받고 출동 중인 몇몇 대원들의 발소리와 차량 엔진소리만 들릴 뿐 적막감이 감돌았다.
재난본부 관계자는 "모든 관서가 순직하신 분들의 영결식 준비에 정신이 없다"며 "추모하는 마음으로 서로 말을 아끼고 있고 착잡한 심경이다"라고 고개를 떨궜다.
책임 따지기보다 '소방 제도' 개선 우선
일각에서는 대응 1단계를 서둘러 해제해 소방관들이 무리하게 건물로 진입하게 만든 게 화근으로 지목된 바 있다.
한 간부 소방관은 "현장에서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건 출동한 소방관들 뿐"이라며 "지침과 현장 상황에 따라 결정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원들이 사망한 결과만으로 모든 원인과 책임을 현장 당국에만 돌리는 건 과도한 것 같다"며 "오히려 거듭된 희생을 막지 못한 제도적인 한계를 꼬집는 게 합당하다"고 덧붙였다.
일반건물과 달리 냉동창고는 스프링클러 같은 긴급 소화장치 설치가 의무사항에서 면제돼 불이 나면 진화하기 어려운 데다, 내부 온도 유지를 위해 사용하는 우레탄폼 등 가연성 물질에 대한 규제 미흡이 더 근본적인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는 또 "건물에 사람이 있는지를 알려주는 체계가 확립되지 못한 것도 문제"라며 "조난자 여부를 파악하기 힘들다보니 일단 생명부터 찾아보겠다고 뛰어들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조난자 유무도 모르고…" 뛰어들 수밖에 없는 '숙명'
한 일선 소방관은 "대기업이 시공을 맡더라도 현장엔 하청을 거듭해 파견된 작업자들이 나와 있다"며 "직접 불 속에 들어가 확인하지 않는 한 정확히 몇 명인지 알 수 없다"고 털어놨다.
또한 "탈출한 조난자들은 불안하기 때문에 안에 또 사람이 있는지 여부를 헷갈려해 없어도 있다고 진술하는 경우마저 있다"며 "요새 경찰이 부실대응으로 비난받는 것처럼 우리도 소극적으로 대응했다가 뭇매를 맞을까 봐 사지로 뛰어들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하소연했다.
특히 규모가 큰 냉동창고나 물류센터 화재 현장은 소방관으로서도 극심한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그는 "축구장 몇 십 배 되는 창고 안에 들어가려면 몇 백 미터를 호스를 끌고 들어가는데 다시 나오기 위해 한참이 걸린다"며 "그럼에도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까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소방관들의 숙명이다"라고 담담히 말했다.
앞서 지난 5일 오후 11시 46분쯤 평택 청북읍 냉동창고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났다.
소방당국은 신고 접수 14분 만에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진화에 나섰다. 이후 7시간여 만인 6일 오전 6시 32분쯤 큰 불길이 잡힌 뒤 오전 7시 10분 대응단계가 해제됐다.
이어 당국은 인명구조, 화재진압을 위해 구조대 등 소방대원들을 화재현장 건물에 투입했다.
그러나 불씨가 갑자기 다시 확산하면서 오전 9시 8분쯤 진화에 투입된 소방관 5명의 소재가 확인되지 않자 곧장 수색팀이 진입했다.
2명은 자력으로 불이 난 건물을 빠져나왔지만, 나머지 3명은 연락이 두절됐다가 실종된 지 3시간 30여분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