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정당혁신추진위원회(혁신위)가 6일 일명 '국회의원 3선 제한법'을 포함한 혁신안을 발표했습니다.
이 안이 의원총회를 거쳐 당 최고위원회의 의결이 되면 3선인 민주당 의원들은 현재의 지역구에 공천 신청을 하지 못 하게 됩니다.
"정치혐오에 기댄 것일뿐…" vs "구청장은 3선제한 하지 않냐"
당내 반응은 대체적으로 좋지 않습니다. 어차피 '4선' 고지를 밟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원들은 "자연스레 물갈이가 된다"고 입을 모읍니다.
의총 안건으로조차 채택되지도 않을 거라고 보는 분위기가 지배적입니다.
아무리 유능한 의원이라 하더라도 3선 즈음 되면 지역구 피로감도 상당하고 새 인물에 대한 열망도 커지기 마련입니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국면에서 3선의원 지역구를 노리는 신인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지난 총선에서는 당시 3선이었던 안민석·노웅래 의원 등 다선의원의 지역구에 청년 정치인들이 도전장을 내밀기도 했습니다.
혁신안이 통과되면 당장 출마길이 막히는 3선 의원만 이번 혁신안을 떨떠름해하는 것도 아닙니다.
초·재선의원들도 대체로 반대하는 분위기가 우세합니다. "국회의원을 희화화하기만 할 뿐 대체 무슨 감동이 있느냐"는 날선 반응을 보이는 의원도 있습니다.
기획재정부 등 입김 센 정부 부처를 상대할 때 다선의원의 '짬'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고충부터 야당이 자중지란하는 이때 왜 굳이 '3선제한'으로 당내 분란을 자초하느냐는 전략적인 고민도 있습니다.
지자체장은 3선으로 선수에 제한을 두는데 왜 국회의원 선수 제한은 안 되느냐는 겁니다. 구청장도, 시장도 3선까지밖에 못 한다는 거죠.
반대 측은 이에 대해 의결기관(국회)과 집행기관(지자체)은 다르다고 강조합니다. 또 지자체장도 무소속으로 4선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이해찬·정세균·이낙연 등 '민주당 어르신들' 지역구 바꾸기도
유권자의 선택을 제한하고 의원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할 여지가 상당한 3선 제한법. 혁신위는 당내 반발에도 왜 이런 안을 내놨을까요?
혁신위 핵심 관계자는 "4선을 막은 게 아니지 않느냐. 3선까지 하고 험지로 가서 선수를 쌓을 수 있다"며 "(선수가 높은 의원이) 국회의장을 맡는데, 의장이 되려면 이 정도 고비는 넘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옆 지역구든, 고향이든, 험지든 다른 지역구 출마를 할 수 있으니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한 것도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경희대 서정건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역구를 대표하는 의미가 있는데 지역구를 바꿔가면서 대표한다는 건, 지역구민 의사보다 당원의 의미를 크게 보는 관점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 데다 민주당에서 '큰 어른들'로 통하는 이해찬 전 대표, 정세균 전 국무총리, 이낙연 전 대표 등 다선의원 중 상당수는 4선 고지를 점한 뒤 험지로 지역구를 옮겨 생환했습니다. 현역의원 중엔 설훈 의원이 지역구를 옮긴 케이스입니다.
지난 총선에서 경선 패배나 컷오프 등의 이유로 공천권을 따내지 못한 민주당 3선의원(오제세·민병두·유승희)도 꽤 됩니다. 최재성 전 의원처럼 공천은 따냈지만 본선에서 패배해 4선 고지를 밟지 못한 사례도 허다합니다.
속된 말로 '자연스러운 물갈이'가 가능하도록 공천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어느 정도 작동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굳이 3선 제한을 당규로 정하지 않더라도 공천 과정에서 3선 이상 다선의원들을 향해 '기득권'이라는 딱지가 붙기 마련이라, 유권자도 쉽게 4선을 시켜주지 않습니다.
상당수 의원들이 "혁신위에 강성 개혁파 의원들만 있어서 이런 안이 나온 것", "민주당에 혁신위를 신뢰하는 의원들은 아무도 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지역구 연임 금지한 나라 없어…왜?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나라 중 일부는 연임을 제한하거나 멕시코처럼 최근 들어 임기 제한을 둔 나라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박 의장 말대로 소위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나라 중에선 연임 제한을 의무화한 곳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우리나라 정치 제도의 상당 부분을 본따온 미국의 경우를 살펴볼까요?
6년 임기인 상원, 2년 임기인 하원 모두 선수 제한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에서도 '선수 제한 운동(term limits movement)'이 꽤 크게 일어났었다는 점입니다.
1992년에서 1994년 사이 공화당 소속 하원의장이었던 뉴트 깅리치 전 의원이 불을 지핀 시민사회 운동입니다.
미국 공화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선수제한법(상원은 재선, 하원은 6선)이 본회의에 상정됐지만, 가결정족수에 한참 못 미쳐 결국 실패했습니다.
깨끗한 정치를 위한 쇄신책 차원에서 시작된 운동이지만 사실은 미국 민주당의 50년 하원 독식을 저지하기 위한 정파적인 성격이 강했던 탓입니다. 지금 우리처럼 여론의 반응이 좋은 편이었지만 전국적 호응으로도 이어지지 못 했습니다. 민주당 혁신위의 3선제한도 '오만한 민주당'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강조하기 위한 정무적인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역대 민주당 혁신위는 국회의원 정수 확대 등 민감한 안건들을 자주 꺼내든 바 있습니다. 여성·청년 우대 등 다양성을 제고하기 위한 유의미한 안들이 관철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혁신위의 실험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