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목동병원 남궁인 응급의학과 교수가 김밥 장사로 평생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하고 40여년간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해온 박춘자 할머니(92)의 삶을 언급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남궁인 교수는 지난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난달 3일 청와대에서 열린 '2021 기부·나눔단체 초청 행사'를 회상하는 글을 남겼다. 남궁 교수는 당시 아동보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의 홍보대사 자격으로 초청받았다.
남궁 교수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고액 기부자로 참석한 한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대통령, 영부인, 비서실장, 단체의 이사장, 유명 연예인 틈의 왜소한 체격의 구순 할머니. 그 대비는 너무 뚜렷해서 영화나 만화 속 장면 같았다"며 "할머니의 차례가 되자 대통령 내외는 직접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부축하러 나갔다. 전 재산을 재단에 기부한 분으로 소개되고 있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회상했다.
김정숙 여사의 손을 잡은 할머니는 행사장에서 울음을 터트렸다고 한다.
앞서 박 할머니는 10살 무렵부터 50여년 간 매일 남한산성 길목에서 등산객들에게 김밥을 팔아 모은 전 재산 6억 3천만 원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모두 기부했다. 60대에 김밥 장사를 그만 둔 후에는 11명의 지적 장애인을 집으로 데려와 20여년 간 친자식처럼 돌보기도 했다.
박 할머니는 지난해 5월부터 거주하던 월셋집 보증금 중 일부인 2천만원마저 기부한 후 한 복지시설로 거처를 옮겼다. 박 할머니는 사망 후 남을 재산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기부하겠다는 내용의 유언도 남겼다.
남궁 교수는 "고령이 되자 남은 것은 거동이 불편한 몸과 셋방의 보증금 뿐이었다"며 "할머니는 셋방을 뺀 보증금 2천만 원마저 기부하고 거처를 옮겨, 예전 당신이 기부해 복지 시설이 된 집에서 평생 돌보던 장애인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그러니까, 성자였다. 할머니가 청와대에 초청받아 영부인의 손을 붙들고 우는 장면은 어느 드라마 같았지만, 현실이었다"며 "지극한 현실이라 오히려 더 비현실적으로 보였다"고 알렸다.
"저는 가난했습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어머니가 없었습니다. 아버지와 근근이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돈이 없어 배가 고팠습니다. 배가 고파서 힘들었습니다. 10살부터 경성역에 나가 순사의 눈을 피해 김밥을 팔았습니다. 그렇게 돈이 생겨 먹을 걸 사 먹었는데 먹는 순간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그게 너무나 좋아서 남한테도 주고 싶었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주면 이 행복을 줄 수 있었습니다. 돈만 있으면 그 뒤로는 돈만 생기면 남에게 다 주었습니다. 나누는 일만큼 기분 좋은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구십이 넘게 다 주면서 살다가 팔자에 없는 청와대 초청을 받았습니다. 이런 일이 있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방금 내밀어 주시는 손을 잡으니, 갑자기 어린 시절 제 손을 잡아주던 아버지의 손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귀한 분들 앞에서 울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에 남궁 교수는 "구순이 넘는 육신과 이미 모든 것을 기부했다는 사실만큼 당신을 완벽히 증명하는 것이 없었다"며 "그 패배가 너무 명료해 '봉사'라는 명목으로 모인 사람들은 그 앞에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기분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청와대에서 조우한 것은 화려한 건물이나 높은 사람들도 번듯한 회의도 아니었다. 범인으로는 범접하기 어려운 영혼이 펼쳐놓는 한 세계였다"고 강조했다.
이를 접한 누리꾼들은 "눈시울이 붉어지는 글이다", "당시 느낌 전달해주셔서 감사하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분들이 빛과 소금 역할을 해주고 계신다" 등의 훈훈한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