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외교부 출입기자인데, 왜 공수처가 통신자료를 조회한 거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입기자인 제게 최근 쏟아진 질문입니다. 야당 의원총회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현안질의까지 하며 '공수처 사찰 논란'이 절정으로 치달은 지난달 30일에는 △공수처 사찰 논란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단체카톡방을 턴 게 맞는지, △공수처는 대체 무슨 수사를 하기에 이러는 건지 등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지금까지 공수처 관계자들과 법조계 전문가들을 취재한 것과 공수처장이 국회에서 답변한 것을 종합해봤습니다.
1. 공수처는 왜 '사찰 논란'에 빠졌나?
공수처 사찰 논란의 발단은 TV조선 기자와 이른바 '조국 흑서' 공동저자인 김경율 회계사의 통신자료 조회 사실이었습니다. 공수처의 수사 대상은 고위공직자로 한정돼있는데, 고위공직자가 아닌 기자와 회계사에 대한 통신자료 조회를 한 건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이에 거의 모든 언론사의 기자들이 통신사에 자신의 통신자료 조회를 확인한 결과, 기자만 100여명 이상이 공수처로부터 통신자료 조회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86명의 야당 의원에 대해서도 공수처가 통신자료 조회를 했다는 게 파악되면서 논란은 일파만파 커졌습니다.
사실 공수처의 통신자료 조회 건 수가 10건 안팎 정도로 나타났을 무렵, 공수처는 사찰 논란을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사건 실체 규명을 위해 피의자에 대한 통신영장(통신사실확인자료)을 통해 통화 내역 자료를 받았고, 통화 상대방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한 절차라고 강조했습니다. 수사 절차일 뿐인데 '과도한 수사 흔들기'라며 오히려 화를 낼 정도였습니다.
예를 들어 수사기관이 피의자 A씨에 대해 통신영장을 법원에 청구해 발부 받으면 A씨가 걸었던 통화내역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때 전화번호만 나오기 때문에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통신사에 통신자료 조회를 요청하는 것이죠. 이때는 법원의 허가가 필요 없습니다. 통신자료 조회에는 이름과 주소,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가입일이 포함됩니다.
통신자료는 통신영장을 통해 확보한 것보다는 덜 개인적이지만, 공수처의 사찰 논란이 일기 전부터 수사기관이 과도하게 통신자료 조회를 요청하는 것은 문제라는 비판은 시민사회에서 제기돼왔습니다. 5년 전 이에 대한 헌법소원도 청구됐고, 국회에선 법 개정도 추진됐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14년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는 영장주의 원칙을 위반하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통신자료 조회 규정을 삭제하라고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수사기관이 범죄 수사 지연과 증거 인멸 우려를 주장하면서 번번이 막혔습니다.
수사기관의 관행인데 공수처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건 가혹하다고 공수처는 생각할 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김진욱 공수처장은 국회에서 "저희가 언론에서 보기에 중앙지검, 인천지검에서 야당 국회의원들 상대로 통신자료 조회한 게 74건으로 알고 있다. 그런에 왜 저희만 가지고 사찰이라고 그러시는지 모르겠다"고 반발했을 겁니다. 김 처장은 객관적인 자료도 들고 나왔습니다. 지난해(2020년도) 검찰과 경찰에서 통신자료 조회한 것은 550만 건이고, 이 가운데 검찰이 184만 건이고 공수처는 135건이라고 밝히며 "통신사찰을 했다고 하는 건 과한 말씀"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사자이기 때문에 억울할 순 있겠지만, 공수처의 논리에 쉽게 납득은 가지 않습니다. 공수처장이 말한대로 사건 건수와 검사 수 등에서도 검찰과 공수처는 단순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또 야당이 주장하는대로 사건 처리 대비 통신자료 조회를 봤을 때도 공수처의 통신자료 조회가 과도하게 나오기 때문입니다. 2021년 검찰연감에 따르면 검찰이 지난해 처리한 사건의 피의자는 221만 5577명으로, 피의자 1명당 1건의 통신자료 조회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더 중요한 점은 공수처의 통신자료 조회는 수사상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에 대해, 한 사람에 대해 자주 했어야만 했냐는 겁니다. 수사의 필요성, 상당성을 넘어서 수사를 했냐는 질문으로 바꿔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수처장은 야당이 왜 이렇게 통신자료 조회를 많이 했냐는 질문에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에 따른 통신자료제공 요청은 적법하다"고만 반복했습니다. 정치인들이 하는 교묘한 동문서답입니다. 검찰을 개혁해야한다는 소리도 검사들이 법을 따르지 않아서는 아니었습니다. 수사의 상당성과 필요성을 넘어서 과도하게 휘둘렀기 때문이었죠.
주요 피의자와의 통화 때문에 통신자료 조회를 했다는 공수처의 설명이 부합하지 않은 사람들이 속속 등장한 것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습니다. 외신기자와 외교부 기자, 야당 의원, 학회 교수 등 주요 피의자와 통화한 적 없는 사람들이 무더기로 등장했기 때문이죠. 이는 통신영장을 통한 카카오톡 단체방참가자 전화번호가 통쨰로 확보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공수처는 고발 사주 의혹 등 각종 사건을 수사하면서 통신영장을 청구할 때 전기사업자에 카카오와 같은 메신저 사업자를 포함시켜 통화내역 뿐 아니라 카카오톡의 수·발신 내역까지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카카오는 수사기관이 특정 시기를 지정해 영장을 제시하면, 대상자가 속해 있는 대화방 참여자의 전화번호와 로그기록 등을 제공하는데요. 이때 내용은 따로 주지 않고, 전화번호도 누구인지 알 수 없으며 어떤 단체방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수사기관은 통신영장으로 통화 내역을 확보한 뒤 통신자료 조회로 인적사항을 확인하는 것처럼, 카카오톡 수·발신 내역을 받아 통신자료 조회로 누구인지 확인하는 작업을 거칩니다. 카카오의 경우 수·발신 내역 전체를 엑셀 파일 형태로 보내주는데, 이때 단체방의 경우 전화번호 앞에 001, 002 등의 번호를 매겨 단체방인 게 식별은 가능하다고 합니다.
현재 무더기 통신자료 조회는 △야당 의원, △기자 등으로 나타나 있는데, 이는 카카오톡 단체방을 통한 통신자료조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민의힘 의원의 경우 31일 오전 8시 기준으로 86명의 의원이 공수처로부터 통신자료 조회를 받았다고 하는데, 김 처장은 야당의 통신자료 조회는 고발 사주 수사가 이유라고 밝혔습니다. 공수처는 김웅 의원과 정점식 의원을 입건했는데 이들에 대한 통신영장을 발부받아 카카오톡 단체방의 참가자 전화번호를 받고, 이에 대한 통신자료 조회를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자들의 경우도 주로 법조 기자와 외교 기자 등이 공수처로부터 통신자료를 조회를 받았는데요. 이성윤 황제 조사 보도 관련 공무상 비밀누설 의혹 내사 사건과 이성윤 공소장 유출 의혹의 참고인(사건관계인)에 대한 통신영장을 칠 때 카카오톡 단체방 참가자 전화번호까지 확보해 통신자료 조회를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통신영장을 통해 카카오톡 전화번호를 확보한 것까지는 수사 관행상으로 이해를 하더라도, 수십명~수백명이 있는 단체방 참가자가 누구인 것까지 확인하려고 했다는 건 수사의 상당성과 필요성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됩니다. 포르노를 단체로 돌려보거나 하는 등의 범죄가 아닌 이상, 상식적으로 수십명이 있는 단체방에서 범죄 행위를 할 가능성이 적다고 보기 때문이죠. 따라서 공수처가 왜 카카오톡 단체방의 참가자 통신자료 조회까지 했는지는 설명돼야 할 부분입니다.
공수처장은 국회 답변에서 과도한 통신자료 조회 논란에 대해 사찰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김 처장은 "사찰은 특정한 대상을 상대로 해서 타깃으로 하는 것"이라면서 "전화번호만 갖고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조회를 한 게 사찰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현재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무더기 통신자료 조회는 그의 정의대로라면 수사권을 과하게 남용한 것이지, 사찰로 정의하기에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기자에 대한 통신영장 청구는 사찰 가능성을 의심할 수준이라고 봅니다. 공수처는 이성윤 고검장의 황제 조사 보도에 대한 내사를 진행해왔습니다. 4월 초 황제 조사 보도가 나간 5일 후 바로 내사를 시작했고, 현재까지도 마무리를 짓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TV조선 기자 2명에 대해 참고인 신분으로 통신영장까지 발부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공수처는 기자가 어떻게 영상을 확보했는지 경위를 캐기 위해 간 게 아니라, 수사기관만 보유하고 있어야 할 자료인 CCTV 영상이 부당한 경로로 유출됐다는 첩보 확인을 위한 것이라고 내사 경위를 밝힌 바 있습니다.
공수처의 수사 대상에는 검사가 들어갈 뿐이지, 검찰 수사관이나 기자가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공수처는 검찰 수사관이 검사의 지휘를 받기 때문에 공수처의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내사가 가능하다고 판단합니다. 기자를 상대로 통신영장까지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도 CCTV기록이 검찰에서 언론에 넘겨진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확인하는 절차였다고 말하고요. 마치 뇌물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을 수사 하듯이 말이죠. 그 결과 이들이 참여했던 단체 카카오톡방의 참여자들까지 수사기관에 이름과 주소 등이 공개됐습니다. 이같은 행위에 대해 특정 대상을 '타깃'삼아 한 게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로 인해 비판 보도를 한 언론을 위축시킨 건 아니라고 말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