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살인' 스토킹에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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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예고살인' 스토킹에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
(계속)

스토킹 피해자 김은영(가명)씨가 신변보호용 스마트워치를 차고 있다. 이형탁 기자

폭행과 스토킹에 "죽겠구나" 1년 만에 신고…남성 결국 구속 재판

김은영(가명, 40대 여성)씨는 스토킹 피해자다. 현재 김 씨는 평소 즐겨 신던 구두를 포기하고 운동화를 신는다. 최근까지 이어진 스토킹과 데이트 폭행 피해 탓에 허리를 크게 다쳤기 때문이다. 최근 폭행 피해로 전치 5주가 나왔다.
스토킹 행위. 독자 제공
김 씨 스토킹 피해는 지난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씨는 30대 남자친구를 만난 지 얼마 안 된 지난해 여름쯤 폭력성과 집요함을 인지하고 이별을 요구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납치와 폭행이었다. 야산으로 끌려가 남자는 김 씨에게 "죽어라"며 큰 돌을 던졌고 마구 때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김 씨는 첫 폭행을 당한 이후 몇 번 더 용기를 내 이별 얘기를 꺼냈지만 그때마다 폭행이 이어져 사실상 강제적으로 연인관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김 씨는 한 달에 한 번꼴로 눈에 띄지 않는 야산이나 차량 등지에서 남자에게서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남자는 폭행 흔적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게끔 얼굴을 제외한 신체를 때리는 치밀함도 보였다. 심지어 이별을 통보할 때면 남자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척하며 김 씨를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 해왔다.
 
연락을 차단하면 남자는 집에 침입하거나 가족에게 연락을 하면서 끝까지 김 씨를 괴롭혔다. 김 씨는 그렇게 남자의 폭행 패턴이 점차 익숙해질 즈음, 지난달 남자의 폭행으로 병원에 입원한 이후에도 또다시 처참히 폭행을 당하자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며 깨닫고 경찰에 신고했다.

남자는 이달 15일 스토킹처벌법 위반과 상습상해, 주거침입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내년 1월 13일 창원지법(형사1단독)에서 첫 공판이 열린다.

김 씨는 그럼에도 여전히 불안하다. 가해 남자의 얼굴이 아직 보인다며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신변보호를 위해 차고 있던 스마트워치가 제대로 작동할지 걱정한다. 김 씨는 현재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


계속된 고백, 로맨스가 아닌 '스토킹'…친밀한 주변인에게도 피해

스토킹처벌법상 스토킹 행위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 또는 그의 동거인, 가족에 대해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등으로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주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스토킹 피해 대상은 당사자와 가족, 동거인뿐 아니라 친구나 직장동료, 애인 등의 친밀한 주변인에게도 끔찍한 피해를 준다.

최민석(가명, 30대 남성)씨는 당시 스토킹을 당한 여자친구를 가장 가까이에서 본 목격자이자 친밀한 주변인으로 사실상 피해자다. 최 씨의 당시 여자친구는 지난 2016년 한 동아리에서 남성 회원에서 고백을 받았지만 "남자친구가 있다"며 거절했다.

그때부터 스토킹 가해 남성은 최 씨의 여자친구에게 극도의 우울감과 무기력을 호소하는 수십 통의 문자나 전화를 해댔다. 특히 남성은 새벽 시간이 되면 고백 취지의 메시지를 보냈고 급기야 극단적 선택을 하겠다고 협박했다. 급기야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최 씨는 "처음에는 흔히 남자들이 착각하는 열 번 찍어 안 넘어간다 생각하는 잘못된 로맨스 관념 정도로 치부했다"며 "하지만 남자가 극단적 선택까지 한다 하니 여자친구 옆에서 보는 나조차도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갈수록 남자의 집착이 병적으로 심해지자 여자친구와 경찰서로 가 고소했고 그는 결국 협박 등 혐의로 벌금형을 받았다"고 했다.

최 씨가 더 힘들었던 건 선처를 받기 위해 가해자 가족들이 찾아 와 2차 피해를 주는 행위였다고 한다. 최 씨는 "여러 차례 경찰서에 가서 진술하고 재판하는 과정에서 가해자와 가해자의 가족들이 여자친구의 집을 찾거나 연락을 해 사과를 해왔다"며 "감형 목적의 사과였을 텐데 결국에는 우리가 온전히 감당해야만 했던 2차 피해였다"고 했다. 최 씨에게는 스토킹 피해를 막으려다 생긴 신체적 부상 흔적이 아직 남아있다.


"피해자들 용기내 신고하고, 경찰 초동 수사 잘해야" 요구

연합뉴스
이들은 스토킹에 대해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고 피해자들이 당당히 용기 내 신고하고 경찰은 보다 적극 수사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 씨는 "돌이켜보면 좀 더 일찍 경찰에 찾아갔어야 했다"며 "경찰 조사에서도 부실한 점은 다소 느꼈지만 그래도 검찰이나 법원 등 다른 기관보다는 친숙하니까 끝까지 진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나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피해자들이 두려워 말고 용기 내 목소리를 내야만 제2의, 제3의 피해자를 미리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씨는 "스토킹처벌법 시행 전에 겪었던 일이었지만 집요한 스토킹은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며 "하지만 피해자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상처가 없는 경우도 있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데 소극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점 때문에 경찰이 전문성을 갖추고 보다 면밀하게 초동 수사를 잘 해야한다"며 "그래야만 살인과 같은 끔찍한 사건으로 번지는 걸 미리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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