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길거리와 이른바 '쪽방촌' 그리고 고시원 등 비적정 거처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이 자가격리가 불가능한 공간에 방치되고 있어 큰 문제다.
위중증 환자와 병상대기 환자 숫자가 역대 최고치를 찍는 상황에서 노숙인 지원단체 등은 지난달 이후 서울 쪽방촌, 고시원 등에서만 확진자 170여명이 나온 것으로 집계했다.
얼마 전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아들이 전화 한통으로 서울대병원 특실에 2박 3일간 입원할 수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비적정거주자들은 코로나 확진을 받고도 치료 받을 공간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평상시에도 의료시설 이용이 어려웠던 저소득층들은 코로나 19로 인해 '치료 격차'를 더욱 실감하고 있다. 어떤 계층에 속하는지가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생존의 양극화 현상'이 코로나 시대에 들어 더욱 짙어지고 있다.
한 명 걸리니 옆방도 '우르르' 감염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쪽방촌에 위치한 A고시원. 스물여섯 명이 거주하는 해당 고시원에선 확진자가 9명 나왔다. 한바탕 코로나 바이러스가 휩쓸고 간 고시원에는 음성 판정을 받은 일부 입주자들이 남아있었다. 확진자 1명도 고시원에 남아 재택 치료를 받고 있었다.
확진자가 방 안에서 재택 치료 중임에도 화장실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탓에 음성을 받은 이들도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비닐장갑을 끼고 도시락을 옮기고 있던 고시원 사장 김모(61)씨는 "위험하니 가까이 오지 말고 아무것도 만지지 말라"며 주의를 줬다.
고시원 곳곳엔 손 소독제와 동사무소에서 빌려왔다는 분무형 소독기가 자리했다. 확진자가 나온 이후 해당 고시원은 수시로 소독하는 게 일상이 됐고 입주자들은 먹고 씻는 일상을 빼앗겼다.
A고시원 4층에 거주한다는 김모(42)씨는 "1층 사는 사람이 처음 걸렸다"며 "여기 공동 주방에서 밥먹고 얘기하다 1, 2, 3층까지 다 퍼졌다"고 답했다.
고시원 2층에 사는 김모(63)씨는 "밀접접촉자와 확진자가 옆방에 있어 불안하지만 어떡하겠느냐"며 "그게 현실인데 피할 수 없다. 방법이 없다"고 체념한 표정으로 답했다.
이들은 코로나 상황에선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고시원 대표는 "지금은 어디든 아프면 안 된다. 큰일 난다. 병실도 없다"고 강조했다.
코로나 확진자가 연일 늘어나자 주민들의 경계심도 더해졌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 원모(59)씨는 "저쪽 골목에 있는 집에서 감염자가 3명이나 나왔다. 동네가 난리가 났다"라며 손을 내저었다
이어 인근 고시원에서 확진자가 여럿 나왔다고 전하자 "전혀 몰랐다"며 "좁은 데서 서로 모르고 있다가 전염됐구먼"이라며 혀 끝을 찼다.
박승민 동자동 사랑방 활동가는 "코로나가 퍼지고 쪽방촌 주민들이 외부 사람을 꺼려한다"며 "고시원도 그렇고 동네에 개인 화장실이 있는 곳은 단 한곳도 없다. 밀접접촉자와 확진자가 어쩔 수 없이 같은 화장실을 쓴다"고 전했다.
이어 "심각성을 인지한 역학 조사관들이 거주지가 쪽방이라고 하면 우선순위로 방을 배치하려고 하지만 환자가 워낙 폭증하는 상황이라 빨리한다고 해도 늦다"라고 전했다.
"확진됐는데도 나몰라라"…취약거처 살펴야
지난 10일 찾은 서울 종로구 돈의동의 또 다른 쪽방촌. 이곳도 코로나19에 잠식된 상황은 비슷했다. 지난달 40명에 달하는 확진자가 발생한 이곳에선 확진자가 10일 가까이 쪽방에 방치되기도 했다.
쪽방촌 곳곳에 '마스크 미착용 시 출입 불가'란 안내 문구가 붙어있었고 외부인을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폐지 줍는 일을 하는 한 60대 쪽방촌 주민은 "확진자가 많이 나와서 집에 있을 수 없다"라며 "옷 갈아입고 잘 때만 잠깐 머문다"라며 불안해했다.
쪽방촌 어귀에서 만난 70대 김모 할머니는 "11월쯤 주민 한 명이 밖에서 담배꽁초를 주워 피운 뒤로 아팠다"며 "모르고 있다가 요양보호사가 먼저 확진되고 같이 살던 주민 2명 감염됐다. 그 바람에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마스크 2장을 겹쳐 쓰고 있었다.
주민들은 감기와 같은 유사 증상만 보여도 퇴거를 종용받고 있다고도 했다. 쪽방에서 5년째 거주 중인 60대 한 주민은 "체온이 조금만 올라가도 그냥 코로나라고 소문을 낸다"라며 쪽방촌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원래 근처 노인회관에서 밥을 줬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끊겼다"라며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고 답했다. 쪽방촌 주민들은 감염 위기 탓에 방 안에 있을 수조차 없었고 끼니를 챙기기 위해서라도 밖으로 나와야 했다.
최봉명 돈의동 주민 협동회 간사는 "쪽방, 고시원 같은 주거 취약계층들에게 '재택 치료'는 불가하다는 기조를 가져야 한다"라며 "확진자를 빨리 찾아내 격리·이송하는 시스템 말고는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라고 답했다.
이어 "이들이 왜 쪽방에 자리할 수밖에 없었는지, 최저 주거 기준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감염 위험에도 '밖에' 방치된 이들은 또 있다. 12일 찾은 서울역 광장. 선별진료소엔 검사를 받기 위한 시민들이 길게 줄서 있었고 일부 노숙인은 마스크 없이 모여 앉아 있었다.
추운 날씨 탓에 연신 핫팩을 주무르던 노숙인 한모(52)씨는 "2주 전에 확진받은 한 노숙인이 도망 다니고 격리시설에도 안간다"며 "그 사람이 서울역 대합실과 흡연실을 막 돌아다닌다더라"라며 불안해했다.
이어 "자신은 공동 샤워시설 이용과 식사 배식을 받기 위해 PCR검사를 일주일에 한번씩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역에서 20년 가까이 노숙 생활한 오모(59)씨는 "여기 있으면 확진자가 막 입곱, 여덟 명씩 나온다"며 "얼마 전에도 3명이 확진돼 옆 커테이너 공간에 격리돼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노숙인 이모(60)씨는 "여기 백신 안 맞은 사람이 절반도 넘는데 매일 같이 술 먹고 어울리니 옮을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안형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고시원 쪽방촌의 '옆방'은 아파트에서 '옆집' 개념이 아니다. 밀접 접촉자가 확진자로 바뀔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이런 특성을 고려해 즉시 확진자 및 밀접접촉자에게 임시생활시설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취약 거처에서는 자가격리나 재택 치료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존엄하게 있을 수조차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