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범죄 특성상 피해자가 쉽게 자신의 의사를 밝힐 수 없는 상황이 비일비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는 곧 스토킹 범죄 '재발 위험성'과도 연관된다는 지적이다.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의 '반의사불벌죄' 적용이 적절한지 의문이 제기되는 셈이다.
9일 서울 강동경찰서는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를 받는 40대 남성 A씨가 전날 오후 체포 40여 시간 만에 풀려났다고 밝혔다.
앞서 강동서는 6일 오후 3시경 여자친구 B씨의 직장에 찾아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며 협박한 혐의로 A씨를 현행범 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법원에 영장을 청구하지 않았다.
검찰의 영장 기각 이유로는 B씨의 '처벌 불원 의사'가 작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경찰 조사에서 B씨는 A씨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진술했고, 영장 신청 단계에서 조사 내용을 넘겨 받은 검찰이 영장을 기각한 셈이다. 스토킹처벌법에 따르면 흉기를 사용하지 않고 스토킹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데,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하지만 B씨의 처벌 불원 의사 배경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B씨는 9월부터 A씨의 괴롭힘과 업무방해 등을 받아와 신변보호를 신청했고, A씨가 경찰에 붙잡히기 전날인 5일에도 112신고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렇듯 B씨는 A씨에게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인 데다가, 벌금이 나왔을 경우 혹시 B씨 자신이 내는 상황이 생길까 두려워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은의 변호사는 "반의사불벌죄 조항은 스토킹처벌법 취지와 맞지 않는다"며 "스토킹 범죄 특성상 가해자가 피해자 신상정보를 잘 알고 있는데 차후 보복범죄를 우려하는 피해자는 가해자가 합의 요청을 할 때 거부하기 쉽지 않다"고 밝혔다.
또 "반의사불벌죄니까 쉽게 신고하고 철회하는 부분도 있다"며 "애정 다툼일 경우 국가 사법권 발동 요구가 아니라 양 당사자가 풀었어야 하는데 그런 신고가 들어오면 수사기관에서 상황을 위중하게 보지 않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피해자 보호에 좀 더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승재현 연구위원은 "(가해자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 때문에 처벌 불원 의사를 표시하는 건데 스토킹 행위를 반드시 처벌하면 오히려 역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가해자가 '내가 처벌받고 전과 기록 남는 이유는 저 사람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는 별개의 영역"이라며 "가해자는 처벌할 수 없어도 여전히 현존하고 명백한 위험 속에 피해자가 노출됐다는 가정하에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경우 물리적인 피해는 없었지만, 재발 우려 등 때문에 사회에서 (피의자를) 격리하고자 영장을 신청했다"며 "(피해자의) 처벌 의사는 없었지만,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B씨 신변보호를 위해 집과 직장 주변을 순찰하는 한편 추후 스토킹 행위가 반복되면 영장 재신청을 검토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