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서보민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 혐의로 검찰이 청구한 곽 전 의원의 구속영장을 1일 기각했다. 서 부장판사는 "범죄 성립 여부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구속 사유와 필요성·상당성에 소명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검찰의 수사가 부실하다고 평가한 셈이다.
곽 전 의원은 화천대유 로비 의혹의 핵심 수사 대상자다. 하나은행의 화천대유 컨소시엄 이탈을 막고, 결과적으로 화천대유가 대장동 사업권을 따내는 데 일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아들 병채씨가 화천대유에서 수령한 퇴직금 등 50억 원이 그 대가로 거론된다. 이른바 '50억 원 약속 클럽'이다. 여기에는 곽 전 의원뿐만 아니라 권순일 전 대법관, 박영수 전 특검 등이 등장한다.
대장동 개발 로비 의혹의 실체는 '50억 클럽' 실존 여부와 맞닿아있다. '50억 클럽'이 실제 로비 명단으로 밝혀지면 그들의 역할과 대가성 여부에 따라 화천대유의 불법 로비 의혹도 보다 구체화될 수 있다. 그중 현재까지 50억 원이라는 구체적인 액수가 드러난 인물은 곽 전 의원 측이 유일하다. 로비 의혹 수사의 시작점이자 본궤도로 올라가는 길목에 곽 전 의원이 놓인 것이다.
검찰 수사팀도 곽 전 의원을 겨냥했다. '50억 클럽'으로 언급된 인물들을 최근 들어 잇따라 소환했지만, 곽 전 의원을 상대로만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지난달 27일 한차례 소환 조사 이후에는 곧장 곽 전 의원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부실 수사 논란에 특검론까지 대두된 상황이라 수사팀이 막판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수사팀의 헛발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핵심 인물인 김만배씨의 구속영장도 한차례 기각당하면서 시간을 벌어줬다. 미국에서 입국한 남욱 변호사는 공항에서 체포하고도 영장 청구 기한 안에 수사를 매듭짓지 못해 풀어줬다. 이재명 후보의 측근으로 알려진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은 애초 배임 혐의를 제외하고 기소했다가 봐주기 수사 비판이 일었다.
수사 초반 증거 확보에도 소극적이었다. 수사팀은 출범한 지 2주일이 훌쩍 지나서야 대장동 개발의 핵심 기관인 성남시청을 압수수색했다. 그마저도 시장실은 제외했다가 논란이 이어지자 엿새후 뒤늦게 시장실에 들어갔다. 심지어 유 전 본부장은 검찰의 압수수색 직전 휴대전화를 창문 밖으로 던져 증거 인멸을 시도했는데, 해당 휴대전화는 며칠 지나 경찰이 대신 확보했다.
이런 와중에 수사팀은 단체로 저녁 회식을 가졌다가 코로나19에 집단 감염되면서 수사 지연을 자초했다. 이때도 수사팀은 방역 수칙은 어기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지만, 참석자 16명이 2개의 방에서 8명씩 '쪼개기' 회식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구속 기한이 임박해 숨 가쁜 상황에서 조사가 나흘이나 연기됐고, 결국 수사를 총괄한 유경필 부장검사는 업무에서 배제됐다.
안팎의 잡음이 끊이지 않은 상황에 곽 전 의원의 영장까지 기각되면서 수사팀으로서는 로비 의혹 수사에서도 재차 속도 조절이 불가피하게 됐다. 수사팀은 앞서 유 전 본부장과 대장동 핵심 4인방의 유착 의혹 수사에만 2개월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이마저도 윗선 수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수사팀은 기각 사유를 분석하면서 곽 전 의원의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를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