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읽기]여수성폭력상담소는 누구 거예요

2002년 강정희 전남도의원 개인상담소로 설치 신고
도의원 당선된 2014년 겸직 금지에 시설장에서 물러나
시설장 교체시 폐지 신고해야 하는데 이뤄지지 않아
운영주체 판단 받으려는 여수시 질의 전남도가 패싱
여수시, 새날상담센터 신설해 상담소 기능 이관키로
보조금 환수, 과태료 채납 등 9천만 원…행정심판에 관심

여수성폭력상담소 간판. 최창민 기자
전남 여수에서 한해 2천 명이 넘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상담해온 여수성폭력상담소가 운영주체 논란 끝에 결국 폐지 수순을 밟게 됐습니다.
 

강정희 전남도의원이 개인상담소로 설치 신고


전남도의회 강정희 의원이 2002년 7월 개인상담소로 설치 신고한 여수성폭력상담소는 설립 당시 강 의원이 운영주체이자 시설장인 소장을 맡아 운영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2014년 6월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전남도의회에 입성한 강 의원은 그해 7월 1일자로 상근 소장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이후 상담소는 2014년 7월과 10월, 이듬해 2월, 2016년 1월에 각각 시설장이 변경됐고 2018년 2월 현재 소장인 A씨가 시설장이 될 때까지 7년여 동안 5차례나 시설장이 바뀌는 부침을 겪었습니다.
 
문제는 강 의원이 소장직에서 물러난 2014년 7월부터 현재까지 소장은 바뀌었지만 운영주체는 바뀌지 않았다는데 있습니다.
 

시설장 교체시 폐지 신고해야 하는데 이뤄지지 않아


여성가족부 성폭력상담소 운영 지침을 보면 운영주체가 변경될 경우 시설폐지 후 신규설치 신고를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수성폭력상담소는 시설장 교체만 이뤄지고 운영주체 변경에 따른 시설폐지 신고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개인상담소의 소장 변경은 운영주체(대표자)가 동일한 경우로만 한정하고 있습니다. 개인상담소의 경우에는 운영주체 변경 신고를 하지 않고 소장만 교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는 의밉니다.
 
여수성폭력상담소는 강 의원을 여전히 대표자로 보아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방자치법이 정한 지방의원 겸직금지 규정을 보면 지방의원은 시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기관이나 단체의 대표가 될 수 없습니다.
 
강 의원이 2014년 7월 도의원에 당선됐을 당시 시설장 교체가 아닌 운영주체 변경에 따른 시설폐지 신고가 이뤄졌어야 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강 의원이 도의원에 당선된 직후 폐지되었어야 할 시설이 시설폐지 신고 없이 7년이 넘도록 변칙적으로 운영된 셈입니다.
 
강정희 전남도의원. 전남도의회 제공
이에 대해 강정희 의원은 어떤 입장일까요. 강 의원은 지난 6월 CBS와의 통화에서 "2014년에 사직하고 떠났기 때문에 운영주체가 될 수 없다"면서 "공문서 서류도 명백하게 현 소장이 대표자로 신고가 되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강정희 의원 "상담소 대표는 내가 아닌 현 소장"

 
사직 당시 시설폐지 신고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소장 변경 신고를 하면 운영주체가 달라지는 것"이라며 "상담소 대표는 내가 아닌 현 소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정리하면 강 의원은 시설장인 현 소장이 대표이지 시설장을 그만둔 자신은 상담소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강 의원이 스스로 자신을 상담소 주인이라고 말하며 상담소 업무에 직접 관여한 정황이 담긴 녹취록이 나오면서 파문이 일었습니다.
 
강 의원은 지난 2019년 3월 19일 여수성폭력상담소에서 소장 A씨와 복수의 직원이 있는 자리에서 A씨의 채용 과정과 임기, 상담소 운영 등을 놓고 대화를 나눴습니다.
 
CBS노컷뉴스가 확보한 당시 대화가 담긴 녹취록에서 강 의원은 A씨 등에게 상담소가 누구의 것인지 캐물으면서 "여기는 강정희라는 사람이 개인상담소로 설치신고를 한 상담소"라며 "여러분들은 근무만 잘하면 되는 거지 주인행세를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강 의원 상담소 찾아가 주인행세하며 운영 개입 정황


강 의원은 또 소장 A씨에게 상담소의 상담원을 채용할 경우 자신과 상의할 것을 종용하는가 하면 A씨를 채용할 당시 전임 소장과 함께 자신이 관여한 것을 언급하며 "여기 주인이어서 그런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강 의원은 A씨에게 "당신은 1년짜리로 여기 와서 일한 것"이라며 "그것을 부인하고 그러면 너무 불량하다"며 A씨를 압박하고 A씨의 신분이 임시직 근로자임을 강조했습니다.
 
녹취된 내용을 종합하면 강 의원은 스스로가 상담소를 설치하고 운영했기 때문에 상담소의 대표 자격이 있다고 이해하고 있으며, 이를 근거로 A씨의 채용에 관여했다는 점을 자백하고 있는 겁니다.
 
상담소 대표는 자신이 아닌 현 소장이라는 기존의 주장과 정면으로 위배되는 내용을 담은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거짓 해명 논란과 함께 파장이 일었습니다.
 
또 강 의원이 대표가 아닌데 상담소를 찾아가 소장 A씨에게 상담소 운영이나 채용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따를 것을 종용했다면 상담소와 관련이 없다는 해명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 직권남용이자 갑질이란 지적입니다.
 
전남 여수시청사 전경. 여수시 제공
CBS노컷뉴스의 관련 보도가 이어지자 여수시는 운영주체에 대한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을 해소하고 위해 전라남도를 통해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에 여수성폭력상담소의 운영주체를 판단해달라는 내용의 질의를 보냈습니다.
 

여수시 운영주체 질의 뭉갠 전라남도 여성정책관실


여수시는 세무서에서 발급한 '해당 시설 고유번호증'의 대표자인 현 상담소 소장 A씨를 운영주체로 봐야하는지, 아니면 시군구에 별도의 대표자 변경 신고내역이 없으므로 애초 상담소를 설치한 강 의원을 운영주체로 봐야하는지 질의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과정에서 전라남도는 여수시의 질의를 제치고 도청이 직접 행정처분이 가능한지를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전라남도는 여수시의 이번 질의에 대해 "여수시 담당공무원의 직무유기이자 일관성 없는 행정행위"라며 "시설을 지도‧점검해야 할 행정으로서 책임을 방기했다고 판단된다"며 질의 자체를 비난하고 뭉개버린 겁니다.
 
왜 이런 걸까요. 김종분 전라남도 여성가족정책관은 상담소 운영주체 논란이 제기되자 "현 소장을 대표로 보고 있다"며 강 의원의 입장을 두둔했습니다. 전라남도가 유권해석을 받아보겠다고 해놓고 여수시의 질의를 뭉갠 것도 이 같은 기존 입장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여수시의 한 공무원은 "중앙부처는 질의에 대해서만 답변하기 때문에 전남도의 질의로 여수시가 원하는 답을 못 받을 수도 있겠다"며 "질문 자체를 비난하면서 도의 의견을 달아 다른 질의를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의아스러운 일"이라고 전남도의 행태를 꼬집었습니다.
 
중앙부처의 답변은 어떻게 나왔을까요.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는 전남도의 질의에 대해 '상담소의 설치와 운영주체 여부 등 관련사항은 신고에 따른 수리업무를 담당하는 해당 지자체장의 소관 사항'이라는 원론적인 답변을 냈습니다.
 
왜 이런 답변이 나왔을까요. 운영주체를 밝힐 의지가 없었던 전라남도가 여수시의 질문을 패싱하고 뜯어고친 탓이란 지적입니다. 7년 동안이나 이런 상황을 방치해온 여수시의 행정도 비판 받아야 하지만 뒤늦게라도 이를 되돌리기 위해 운영주체를 판단해달라고 한 질의를 뭉개버린 전라남도의 행정은 더 큰 문제라는 겁니다.
 

여수시, 운영주체 판단 않고 새날상담센터 신설 운영키로


결국 여수성폭력상담소의 운영주체 판단은 해당 지자체장인 권오봉 여수시장에게 넘어온 모양새가 됐습니다.
 
현 소장 A씨는 전라남도로부터 무자격을 이유로 지난 5월부터 직무정지 처분을 받았는데 이와 관련한 행정 심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수시는 이같은 상황을 고려해 상담소 운영주체를 판단하지 않고 시가 직접 운영주체가 되어 새로운 상담소를 신설하기로 했습니다.
 
전남 여수시의회 회의 전경. 여수시의회 제공
여수시의회는 지난 16일 여수시가 제출한 여수성폭력상담소를 폐지하고 그 기능을 대신할 여수새날상담센터 민간위탁 동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습니다.
 
동의안은 여수시가 직접 운영주체가 되는 여수새날상담센터를 신설하고 사회복지법인 또는 비영리법인 등 민간에 위탁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상담센터는 기존 성폭력상담소 상담 직원과 업무를 그대로 이관받아 운영에 들어간다는 방침입니다. 사업은 성폭력 피해, 데이트 폭력, 스토킹 피해의 신고 접수와 상담, 성폭력 예방 홍보 및 교육을 진행합니다.
 
또 의료지원, 법률지원, 치료회복 지원, 지역사회복지서비스 연계 등 피해자 지원에 나선다는 방침입니다. 향후 수탁자 공개모집을 통해 여수시 수탁자선정위원회를 통해 선정할 계획입니다.
 
여수시는 그동안 여수성폭력상담소 이용시설 정상화를 위해 정상화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여수새날상담센터는 오림동 복지회관에 둥지를 마련하고 공석인 시설장과 상담원 1명을 추가로 모집할 계획입니다.
 
이번 여수새날상담센터 민간위탁 동의안 통과로 전남도의회 강정희 의원이 2002년 설치 신고한 여수성폭력상담소는 운영주체 논란 끝에 설립 19년 만에 폐지 수순을 밟을 전망입니다.
 
여수시 관계자는 "그동안 시설 주체 문제로 논란이던 상담소의 정상화를 위한 다각적인 활동을 진행했다"며 "피해자들을 위해 더 다양하고 적극적인 행정을 펼치겠다"고 말했습니다.
 
여수시가 직접 운영주체가 되어 성폭력 피해자 상담업무를 이관하더라도 여수성폭력상담소를 둘러싼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전라남도는 여수성폭력상담소의 부실 운영 등을 이유로 현 소장 A씨의 급여 등이 포함된 보조금 7천여 만원에 대해 환수 처분을 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여수시는 상담소에 임대료 채납액 1천여만 원을 납부하라고 통보했습니다.
 
현 소장 A씨는 교육수료가 실제로 이뤄진만큼 무자격자라는 전남도의 판단이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 자신의 신분이 시설장으로 채용된 임시직일 뿐 운영주체가 아니라며 전라남도 행정심판위원회에 지난 8월 3일 행정 심판을 제기했습니다.

전라남도 행정심판위원회는 지난달 25일 심리 기일을 잡았다가 오는 26일로 연기했다. 행정심판의 경우 통상 60일 이내, 한차례 30일 연장해 90일 이내에 결론을 내도록 권고하고 있으나 이를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겁니다.

여수성폭력상담소의 대표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전라남도 행정심판위원회가 결론을 계속 미루고 있는 가운데 상담소 운영주체와 관련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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