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청? 서? 수사·형사? 안갑니다"…'워라밸' 택하는 요즘 경찰

지구대·파출소 승진 시험 준비·워라밸 유리해
'검·경 수사권 조정' 수사업무 과중에 한 몫
젊은 경찰들 '공직자 소명의식 부족' 우려도

황진환 기자
수도권 일선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A 경사는 '고속 승진'에 성공했다. 지금까지 경찰 승진 시험에서 한 차례 빼고 모두 합격했다. A 경사는 자신의 '성공 비결'로 지구대·파출소 근무를 꼽는다.

"파출소와 지구대에서 근무하면서 승진시험 준비를 철저하게 했다. 근무 시간 외에는 '터치'가 없기 때문에 시험을 준비할 시간과 개인 여가시간을 고려했을 때 '지파(지구대·파출소)'가 서보다 낫다. 경찰서에 와서도 수사부서가 아닌 내근부서에서 계속 근무하고 싶다."

16일 CBS노컷뉴스 취재결과 최근 젊은 경찰을 중심으로 지방청이나 경찰서보다 '지파'를 더욱 선호하는 분위기가 일고있다. 특히 이들은 '승진시험'과 '워라밸'에서 지파 근무가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경찰 승진 과정은 시험승진과 심사승진으로 나뉜다. 이중 시험승진은 형법·형사소송법 등 시험을 통과하면 된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출·퇴근 시간이 지켜지는 지파에서 교대근무를 하며 준비하는 편이 수월하다는 것이다.

이한형 기자
서울 도심의 한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김모 경장은 "야간 근무가 섞여 있더라도 규칙적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시험을 준비하기 유리한 분위기"라며 "게다가 우리 같은 젊은 사람들은 시험 준비에 익숙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서울 도심의 경찰서 형사과에서 근무하는 B 경위는 "경찰서에서는 퇴근 시간이 됐어도 일이 연속성이 있기 때문에 내가 맡은 사건이 끝나지 않으면 퇴근하기 어렵다"며 "반면 지파에서는 교대근무로 시간이 엄격히 지켜진다"고 설명했다.

시험뿐 아니라 '워라밸' 측면에서도 지파 근무가 낫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일선 경찰서 형사·수사과에서 지파로 이동하겠다는 젊은 경찰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서울 도심 한 경찰 관계자는 "올해 형사과에서 2명이 파출소로 갔다"며 "젊은 경찰들이 형사·수사과 안 오고 지파 가서 워라밸을 찾고 재테크를 신경쓴다"고 지적했다.

최근 진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도 이러한 분위기에 한몫했다는 분석도 있다.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이 직접 수사하던 사건들도 경찰에 몰리고, 경찰이 1차 수사종결권을 가지면서 수사부서의 업무가 크게 늘었다는 분석이다.

연합뉴스
실제 지난 3월 경찰청이 경찰관 6901명(수사경찰 3138명·비수사경찰 3763명)을 대상으로 '수사경찰 인사·교육'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수사경찰은 30.9%만 현 부서에 만족하다고 답한 반면 비수사경찰은 69.3%가 만족하다고 했다. 수사경찰은 '업무량'을 불만족 이유 1순위(40.5%)로 꼽았다.

이같은 분위기에 상대적으로 사건이 많은 수도권을 피해 지역으로 이동하고 싶다는 젊은 경찰들도 나온다. 고향은 전라도 지역인데 현재 수도권에서 근무 중인 최모 경장은 "고향 쪽으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서울에서 지역으로 지망하는 인원이 많아 어려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경찰로서 소명의식이 부족해 보인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 도심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C 경정은 "지역에서 사건 1건 나올 때 서울은 20~30건 씩 나오는데 같은 봉급 주니 젊은 사람들이 편한 쪽으로 가려는 것"이라며 "10년 전만 하더라도 경찰이라는 소명의식을 갖고 격무지에 지원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잘 안 보인다"고 밝혔다.

일선 형사·수사과 경찰들은 부족한 인력에 젊은 경찰들마저 등을 돌려 아쉽다는 입장이다. B 경위는 "젊은 경찰들이 열의에 차서 형사과에 들어왔다가 6개월 만에 힘들어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자주 봤다"며 "올해도 몇 명이 그렇게 나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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