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은 1932년 12월 대구에서 태어났다. 1951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한 노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이 5사단장이던 1956년 육군 제5보병사단 소대장으로 발령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인 1978년 육군 소장으로 진급한 뒤 경호실 작전차장보로 발탁됐다. 박 전 대통령이 1979년 10.26 사건으로 사망한 뒤 육사 동기인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12.12 군사쿠데타에 참여할 당시, 그는 9사단장이었다.
전 전 대통령 집권 후 정치인으로 전향해 2인자로 지내던 노 전 대통령은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정당 대선후보로 나서 '보통 사람의 위대한 시대'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당선됐다. "나 이 사람, 보통사람입니다. 믿어주세요"라는 말은 오랫동안 회자됐다.
군부 쿠데타의 핵심인 노 전 대통령이 87년 항쟁 뒤 직선제 개헌의 과실을 취한 배경엔,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의 후보 단일화 실패가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는 슬로건도 이들 민주화 세력의 대척점에 있는 자신의 정체성을 희석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도 그는 반대파로부터 '물태우'라 불리는 수모를 감수하면서 군사정권에서 민주정권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관리했다. '5공 숙청'이라는 명분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 퇴임 2달 만에 큰형 전기환 씨를 비롯해 친인척 8명을 구속수사했고, 전 전 대통령도 같은 해 11월 백담사에 유폐했다. 또 '언론기본법'을 폐지하고 "정치인에 대한 풍자의 자유를 적극 허용한다"고 발표하는 등 기존 군부독재와 대조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남북 대화가 어느 때보다 활기를 띈 것도 노 전 대통령 재임 때다. 88년 7.7선언(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을 했고 89년에는 여야 4당 합의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마련했다. 91년에는 서울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남북한 화해, 상호 불가침, 교류협력을 골자로 하는 '남북 기본 합의서'가 채택됐다. 그러면서도 88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남북 체제에서 승리한 것도 전세계에 확인시켰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과 함께한 12.12 군사반란 참여와 5.18 유혈진압, 수천억에 이르는 비자금 조성은 노 전 대통령이 피할 수 없는 그림자다. 퇴임 후 이들 혐의로 유죄를 받은 법정에서, 전 전 대통령과 손을 꼭 잡은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은 근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으로 남아있다.
다만 그는 추징금을 여전히 완납하지 않은 전 전 대통령과는 달리 2013년 말까지 2천 억이 넘는 추징금을 분할해 완납했다. 납부할 추징금 확보를 위해 동생과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아들 재헌씨는 재작년 두 차례 광주를 찾아 5.18 민주묘지에 참배하고 희생자 가족들과도 만났다. 재헌씨는 "그만 하라고 하실 때까지 사과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