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초연부터 16년간 '빨래'와 함께 해온 작곡가 민찬홍(40)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민 작곡가는 최근 CBS노컷뉴스와 인터뷰에서 "'빨래' 공연팀 뿐만 아니라 공연예술계가 모두 어려웠다. 업계 종사자로서 속상한 마음이 컸다. 특히 늘 가까이 존재하던 '빨래' 공연이 중단됐을 땐 소중한 일상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빨래' 팀은 3주 전부터 언습에 돌입했다. 여러 시즌 참여했던 배우들이 헤쳐 모였다. "연습실에 처음 간 날이었어요. 1막 마지막 넘버 '비오는 날이면'을 연습할 때였죠. 오랜만에 현장에서 노래를 들으니까 감정이 북받쳐서 눈물이 나더군요." 그는 "배우들이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차고 의욕적이다. 공연을 다시 할 수 있어 그저 감사하다. 더 이상의 중단 없이 순항하길 바라는 마음 뿐"이라고 했다.
'빨래'는 작가를 꿈꾸는 비정규직 서점 직원 '나영'과 몽골 출신 이주노동자 '솔롱고'를 중심으로 소시민 삶의 애환을 서정적인 노래로 풀어낸 작품이다. "'빨래'가 이렇게 롱런할 거라 예상했느냐"고 묻자 민 작곡가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공감의 힘"을 롱런 비결으로 꼽았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니까 공감대가 넓은 것 같아요. 나영이 넘버 '한 걸음 두 걸음' 가사 중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드니'라는 부분이 있어요. 사는 게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딨겠어요.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주니까 오랜 세월 사랑받는 거겠죠."
'빨래'에는 총 18곡의 넘버가 삽입됐다. 민 작곡가 전곡을 작곡·편곡했다. 초연 후 크게 변하지 않은 대본 내용에 보조를 맞추되 곡의 완성도를 높이는 노력을 지속해오고 있다. 그는 "23차 프로덕션(2019년 9월~2020년 4월) 때 대대적으로 편곡작업을 진행했다. 얼마 후 코로나19가 터져서 새롭게 편곡한 곡을 많이 들려주지 못했는데 이번 프로덕션에서 바뀐 곡을 체험하길 바란다"고 했다.
모든 넘버가 애착이 가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넘버는 '내 딸 둘아!'와 '비오는 날이면'이다. "작업하면서 힘들었기 때문"이다. "'주인 할매'가 부르는 '내 딸 둘아!'를 처음 작곡했을 때 20대였어요. 할머니의 마음을 노래로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았죠. 가사가 잘 들리게끔 음악적 요소를 최대한 비웠는데 당시 그 배역을 맡았던 이정은 배우 덕분에 노래의 메시지가 잘 전달됐죠. '비오는 날이면'은 완성된 곡이 성에 안 차서 처음부터 다시 썼어요."
지금까지 '빨래'를 거쳐 간 배우만 200여 명에 이른다. 이정은을 비롯 홍광호, 이봉련, 이규형, 정문성, 임창정 등이 출연진에 이름을 올렸다. 민 작곡가는 "빨래'는 연습기간까지 8개월 정도 공연을 지속한다. 출연 배우들은 모두 작품에 헌신했던 사람들이다. 다른 작품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 없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자기 공연이 끝나고도 관객 신분으로 '빨래'를 관람하러 오는 배우들이 적잖다. '관객에게 감동을 주려고 연기하는데 관객이 나한테 주는 에너지에 더 감동받는다', '공연하는 배우가 관객보다 더 치유받는다'고 배우들이 이야기한다"고 했다.
'빨래'는 뮤지컬 마니아 뿐만 아니라 평소 뮤지컬 공연을 자주 접하지 않는 관객도 많이 본다. 민 작곡가는 "마음을 치유하고 싶을 때 먹는 '힐링푸드'처럼 '빨래'도 일상의 '힐링공연'처럼 자리잡은 느낌이다. 직장 동료, 학교 급우 등 누군가와 함께 공감하면서 보면 더 좋은 작품"이라고 했다.
"어려운 시국임에도 공연장을 찾아주는 관객에게 감사하다"는 민 작곡가는 "내년에 공연 예정인 두 편의 신작 뮤지컬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최근 '오걸작 콘서트'(국립정동극장)처럼 뮤지컬 외에도 음악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뮤지컬 '빨래'를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처럼 오래오래 공연하고 싶다"고 했다. '빨래' 20주년, 30주년 기념 공연도 볼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