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니 빌뇌브 감독은 독이 든 성배를 기꺼이 들었고, 이를 지켜보는 모든 이가 그 결과에 주목했다. 원작 소설의 팬이기도 한 감독은 선택과 집중, 압축과 생략을 거쳐 원작 팬은 물론 영화 팬들마저 매료시킬 장중하면서도 품격 있는 SF 영화 '듄'을 완성했다.
서기 1만191년,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후계자인 폴(티모시 샬라메)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과거와 미래를 모두 볼 수 있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유일한 구원자인 예지된 자의 운명을 타고났다. 그리고 폴은 어떤 계시처럼 매일 꿈에서 모래언덕을 뜻하는, '듄'이라 불리는 아라키스 행성에 있는 한 여인을 만난다.
귀족들이 지지하는 아트레이데스 가문에 대한 황제의 질투는 폴과 그의 가문을 죽음이 기다리는 스파이스 생산지 아라키스로 내몬다. 그 후 폴과 레토 공작(오스카 아이삭), 레이디 제시카(레베카 퍼거슨), 그리고 아트레이데스의 사람들은 음모가 격돌하는 전쟁터가 된 아라키스에서 위대한 시작을 위한 여정에 나선다.
감독은 원작 소설에 충실하면서도, 방대한 이야기 속에서 무엇을 관객에게 보여줄지 선택과 집중, 압축과 생략을 통해 자신만의 영화로 재탄생시켰다. 스크린에 구현된 '듄'을 보면 감독이 얼마나 원작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는지가 느껴진다. 장중하고 우아하면서도 거대한 서사시이자 많은 스페이스 오페라와 메시아 서사에 영향을 미친 작품인 만큼, 영화의 질감에서도 이러한 면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파트1이기도 한 영화 '듄'은 주인공 폴이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하기까지 이야기를 보여준다. 워낙 방대한 세계관과 얽히고설킨 이야기, 감정 묘사가 복잡하게 어우러진 작품인지라 단 한 편의 영화로 풀어낼 수 없었다. 그래서 파트1에서는 폴의 여정이 시작하는 지점에 집중한다.
아라키스의 스파이스가 포함된 모래, 그 속에 담긴 스파이스가 모래 사이에서 반짝이며 흩날리는 모습, '샤이 훌루드'라 불리는 거대한 모래벌레의 위압적인 모습, 미래의 줄기를 체험하는 폴의 모습 등이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필름 영화적인 질감마저 느껴지는 화면을 통해 폴의 고뇌와 아라키스를 둘러싼 욕망과 정치적 음모 등이 더욱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다양한 인간군상과 그들 사이 음모와 계략이 사납게 맞부딪히는 가운데 위치한 폴, 지도자이자 메시아로서의 운명을 타고난 폴을 연기한 티모시 샬라메의 캐릭터 해석과 열연이 돋보인다. 가문과 아라키스의 미래를 짊어진 폴이 자신을 둘러싼 위협 앞에 소년에서 어른으로 변해가는 변화를 자신의 얼굴과 행동 곳곳에 새겨 넣은 티모시 샬라메는 그 자체로 관객들에게 설득력을 지닌다.
한스 짐머의 음악 역시 '듄'의 세계를 완성시키는 또 하나의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신비롭고 비밀에 둘러싸인 아라키스, 그곳에서 펼쳐지는 폴의 여정, 척박한 사막 위에서 벌어지는 피비린내 나는 음모와 전쟁의 분위기가 한스 짐머의 음악과 함께 피부로까지 전해진다.
감독의 변주 속에서 눈에 띄는 부분 중 하나는 소설과 달리 리예트 카인즈 박사(샤론 던컨-브루스터)를 남성이 아닌 여성, 그것도 흑인 여성으로 설정한 점이다. 원작을 충실히 재현하는 와중에 감독은 고전에서 현대로 오면서 변해 온 시대정신의 한 자락을 영화에도 담아냈다.
파트2를 기다리기까지가 힘든 관객이라면 프랭크 허버트의 원작소설 1부와 '조도로프스키의 듄'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추천한다. 소설은 듄의 세계로 더욱 깊이 들어갈 수 있으며, 다큐멘터리는 왜 이 소설의 영화화가 '독이 든 성배'가 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영화화 자체보다 그 과정에서 있었던 지난한 과정과 완벽주의가 영화화를 험난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들을 차치하고라도 무엇보다 원작소설과 다큐멘터리 자체가 가진 재미도 만만치 않다.
155분 상영, 10월 20일 개봉,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