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간 경쟁의 최대 피해자 가운데 하나가 안보와 경제분야에서 두 나라와 밀접하게 엮여 있는 대한민국이다. 안보는 미국의 패권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고 경제는 미중 양국과 뗄래야 뗄 수 없을 만큼 밀접한 관계 속에 놓여 있다.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국은 중국이지만 미국 역시 한국의 주력 상품인 자동차와 반도체, 휴대전화 등의 최대 수출시장이어서 양국 가운데 한 개 국가와의 교역전선에만 이상이 생겨도 한국 경제가 휘청거릴 수 밖에 없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트럼프 대통령 이전으로 회복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구조는 트럼프 이전이나 이후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을 뿐아니라 바꿀 수도 없는 처지라는 것이 현실이다.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 구축으로 글로벌 10위 경제대국과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우리로서는 국제시장을 겨냥한 자유무역 외에는 대안이 없다.
하루 아침에 기술패권을 만들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수경제구조로 전환할 경우 현재의 경제외형을 유지해 나가기 어렵다.
한국은 그동안 국가간 자유무역협정 체결과 권역별 자유무역체제을 통해 경제통상의 영토를 확장해 왔다. 최근들어서는 국가간 FTA의 자유무역 수준을 훨씬 능가하는 권역별 자유무역체제 가입에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대표적인 것이 CPTPP와 DEPA가입과 한-중미 FTA 등 블록별 FTA 공고화다.
먼저 정부는 CPTPP,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 가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30일 대한상의에서 가진 CPTPP관련 전문가 간담회에서 "정부는 CPTPP 가입을 적극 검토하면서 대내외 준비작업을 차질없이 진행하고 있다. 국익 극대화의 관점에서 CPTPP 가입여부와 시기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TPCPP는 '공급망 고도화'를 위해 전략적 가치가 크다는 것이 정부 판단이다. 이와관련해 여 본부장은 29일 기자간담회에서 "(TPCPP는)굉장히 높은 수준의 한미 FTA보다 더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협정이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2015년 미국과 일본이 주도해 결성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보호주의자인 트펌프 대통령 이 취임하자마자 "TPP가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며 2017년 1월 탈퇴하면서 힘이 빠졌지만, 미국 탈퇴로 논의가 정지된 일부 품목을 제외한 협정문을 확정, 우선 11개국만으로 2018년 출범했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의 시작이다.
총 인구 6억 9000만 명, 전 세계 교역량의 14.9%에 해당하는 거대 규모의 경제동맹체로 한국은 이를 수출확장과 보호주의 대처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CPTPP는 다양한 분야의 제품에 대한 역내 관세를 전면 철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통상당국이 중시하는 또 하나의 무역기반은 '디지털통상'이다. 보다 자유로운 디지털 상품.서비스.기술의 이동을 규정하려는 디지털통상 룰 제정 움직임은 이미 본격화하고 있다. 싱가폴과 칠레, 뉴질랜드가 주도하는 디지털경제파트너십협정(DEFA) 가입을 위해 우리나라는 지난달 가입신청서를 제출했다.
관련해, EU는 인도태평양협력전략의 하나로 한국, 일본, 싱가폴에 디지털 파트너십 협정 맺자는 제안을 하는 등 디지털통상협의체가 구체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과 EU는 당장 다음주부터 이 문제에 대한 협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트레이드 앤 테크놀러지 카운셀'이란 디지털통상 각료회의가 최근 처음 개최됐다. 지난달 미 국 피츠버그에서 미국 USTR 대표, 상무부 장관, 국무부 장관, EU는 해당 집행위원들이 모여서 핵심 기술 수출 통제, 새 기술표준 설정, 이 분야 외국인 투자 등의 의제를 논의했다.
경제대국들이 보호주의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지만, 최근 블록별 자유무역논의가 힘을 얻고 있고 디지털 통상 분야의 새로운 무역질서를 세우려는 논의도 확산되는 등 우리 경제와 수출전선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