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넷플릭스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은 한국 시리즈 최초로 미국 넷플릭스 '오늘의 Top 10' 전체 1위에 등극했다. 이 밖에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와 카타르, 오만,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에서도 정상을 차지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39개 국가에서도 상위권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추억의 달고나, 참가자들의 트레이닝복과 점프 수트 코스튬까지 북미 현지에서 뜨거운 인기를 모으고 있다. 출연 배우인 정호연은 개인 SNS 팔로워가 5배 이상 급증해 230만명을 돌파했다. '오징어 게임' 신드롬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200억원 제작비가 투입된 '오징어 게임'은 상금 456억원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드라마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지만 오히려 수위를 낮추지 않아 차별성을 갖출 수 있었다는 평가다.
흔히 'K드라마'로 통하는 한류 드라마의 고전적 문법을 탈피한 것은 또 다른 관전포인트다. 극한 경쟁에 내몰린 현대 사회를 직시한 풍자와 메시지, 한국 사회와 자본주의의 그림자, 그리고 계급의식에 대한 비판이 작품 곳곳에 녹아 있다. 주요 외신들 역시 '오징어 게임' 신드롬을 다루며 이 같은 특징을 집중 조명했다.
여기에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규합과 배신, 선택이 담긴 이야기를 배우들이 풍성하게 만들면서 생존 게임에 얽힌 매혹적인 미스터리를 완성했다.
이택광 문화평론가는 "넷플릭스가 등장하면서 한국 시리즈물에 변화가 일어났다. 기존 TV드라마와 달리 한국을 정체화하지 않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문법을 가져온다. '킹덤'이 조선시대 소재이지만 완전한 판타지, 유사 역사성을 가진 콘텐츠가 되는 것처럼 '오징어 게임'도 파놉티콘 안에 들어간 사람들의 은유적 이야기를 판타지스럽게 풀어 나간다. 그러면서도 할리우드식 휴머니즘 구도로 마무리 한다"고 짚었다.
이어 "달고나 등 한국 복고 소재들이 곳곳에 있다. 그러나 실감나는 리얼리티라기 보다는 '박물관에서 유물을 보는 듯한' 거리두기로 자극과 흥미를 극대화 한다. 겉포장은 지극히 한국스러워 보이지만 미국 시청자들에게 통하는 국제적 문법을 갖춘 철저히 기획된 작품"이라고 전했다.
화려한 성적 이면에는 분명한 한계점도 엿보인다. 참가자 초대장에 일반인 휴대전화 번호를 노출한 초보적 실수를 제외하더라도 일본 콘텐츠들과의 유사성 지적, 여성 혐오적 표현 등이 그것이다.
'오징어 게임'은 공개 초반부터 '라이어게임' '배틀로얄' '도박묵시록' 등 '데스 게임'을 주제로 한 일본 콘텐츠들을 짜깁기한 모양새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언급된 작품 중 '신이 말하는 대로'(2014)의 경우, 추억의 놀이들로 '데스 게임'을 열고 첫 번째 게임이 똑같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로 시작돼 유사성 논란이 거세졌다.
이에 연출을 맡은 황동혁 감독은 제작발표회 당시 "첫 게임이 같을 뿐 크게 연관성과 유사점이 없다. 2008년에 구상해 2009년 대본을 쓸 때부터 첫 게임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로 설정했다. ('신이 말하는대로') 만화는 그 뒤에 일본에 공개된 걸로 안다. 우연적으로 유사한 것이고 굳이 우선권을 따지자면 제가 원조 아닐까 싶다"라고 해명했다.
생식기 안에 담배를 숨겨 온 여성, 권력자의 가구가 된 여성들, 탈북자 여성을 향한 대사, 생존을 위해 '몸'을 이용하는 한미녀(김주령 분) 캐릭터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연출이 사건 전개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불필요한 장면들이라 더욱 불편함을 느꼈다는 목소리가 높다. 무엇보다 최근 국내 콘텐츠 제작자들이 왜곡되고 도구화 된 여성 표현을 탈피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 착오적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이택광 문화평론가는 "영화계는 생각보다 젠더 감수성이 민감하게 자리잡은 곳이 아니다"라며 "'미투' 이후 할리우드는 여성, 인종 등 소수자와 약자를 부각하는 정치적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데, 한국 영화계는 아직도 과거의 습성에 물들어 있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결국 여성 감독들이 많아져야 하고 형식적으로 국제 표준을 달성했다면 내용적으로도 이런 감수성의 완결성을 따라갈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일종의 불균형 발전"이라며 "영화를 포함한 한국 문화 산업은 발전했는데 그 물질적 변화를 공동체 윤리가 못 따라오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