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엽고 호기심 넘치고 착한 트롤 무민. 전 세계가 사랑하는 캐릭터 무민이라는 완성된 이야기 뒤편에는 무민을 만들어 낸 토베 얀손이라는 예술가가 있다. 무민 안에 담겨 있던 토베의 삶은 한 명의 존재이자 예술가로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 온몸으로 격랑을 헤쳐 나온 여정이었다. 영화 '토베 얀손'은 바로 이 여정 끝 진정한 자신의 시작점에 선 토베 얀손을 포착한다.
토베 얀손(알마 포위스티)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예술가지만, 그의 아버지 빅토르 얀손(로베르트 엔켈)은 물론이고 주위에서는 그의 예술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삽화 의뢰로 알게 된 연극 연출가 비비카 반들레르(크리스타 코소넨)를 만나며 토베의 세계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토베는 자신의 캐릭터 무민을 연극 무대에 올리고, 시청 벽화를 그리며 인정받기 시작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준 비비카는 파리로 떠나고, 토베의 삶도 격정적으로 요동친다.
토베가 활동했던 1940~50년대는 여성과 여성 예술가를 향한 편견과 관습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시대다. 토베 얀손 역시 가깝게는 같은 예술가인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했고, 멀게는 예술계에서 그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했다. 토베의 개성이 가득 담긴 작업물, 특히 자화상은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예술 혹은 그림을 알아봐 주는 것은 진짜 내 모습을 알아봐 주는 것이라고 했지만 그런 토베의 그림을 알아봐 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토베를 둘러쌌다. 즉, 누구도 토베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다. 토베 역시 자신이 낙서처럼 끄적인 무민을 예술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토베의 앞에 나타난 무민의 존재와 그 가치를 알아본 비비카가 나타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예술 속에 숨겨둔 '토베 얀손'의 모습을 발견한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토베만큼이나 비비카는 토베 이상으로 자유롭고 격정적인 영혼을 지녔다. 토베틑 비비카를 만나며 사랑이라는 감정, 그리고 사랑으로부터 파생된 질투와 아픔 등 여러 가지 감정이 선사하는 격정적인 흐름에 휩싸인다. 이 과정에서 토베는 인정받지 못했던 예술 세계로 인해 가졌던 좌절과 번민 사이에서 진정한 자신을 건져 올린다.
그렇기에 무민을 받아들이고, 자신과 자신의 세계를 마주한 그때야말로 토베 얀손이 한 명의 존재이자 예술가로서 출발점에 서는 순간이다. 그런 점에서 '토베 얀손'은 토베가 자신의 진정한 시작점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려낸 영화다.
자신의 길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전부 다 하고 말하는 토베는 불안하고 거칠게만 들리던 바람 소리 한가운데서도 환하게 웃는다. 자유로워지고자 했던 토베의 소용돌이치던 내면에 진정한 자유가 깃든 순간을 마주하는 순간, 관객 역시 자유로움을 느끼게 된다.
영화 내내 토베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정받지 못할 자화상을 그린다. 그림에 자신을 담아내는 것이 예술가인 만큼, 토베가 그려낸 무민 역시 토베의 또 다른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무민의 성격과 무민의 말들을 아는 관객들에게 영화는 무민의 뿌리를 알 수 있는 시간이다. 앞서 말했듯이 무민을 조금 더 깊게 알아가는 시간이라는 것은 곧 토베 얀손을 더 깊게 알아간다는 것과 동일하다.
격렬하고 격정적으로 자신의 시작점을 찾아갔던 토베의 여정, 그리고 자신을 드러내고 발화하는 자유로운 토베의 모습은 지금 각자 자리에서 내면의 바람과 파도에 맞서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위로와 용기를 전한다.
토베 얀손의 또 다른 자화상이 된 영화에서 알마 포위스티는 복잡다단한 한 여성이자 예술가의 삶을 열연으로 펼쳐내 토베 얀손을 스크린에 되살려냈다. 시대를 풍미한 명곡들의 향연 속에 펼쳐지는 알마 포위스티의 연기를 감상하는 것 또한 영화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102분 상영, 9월 16일 개봉,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