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일터 부조리 고발 묵직한 울림 '어시스턴트'

외화 '어시스턴트'(감독 키티 그린)

외화 '어시스턴트' 스틸컷. ㈜콘텐츠플레이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직장 내 철저한 위계 구조 아래 부당함과 차별의 대상이 되는 것은 말단 사회 초년생이지만, 그들에게는 '발언'한다는 것조차도 자신의 위치를 위태롭게 만든다. 꿈을 좇아 온 곳에서 만난 것이 꿈이 아닌 현실의 부당함인 이들을 위해, 그런 일을 겪었던 우리에게 과거처럼 외면하지 말자고 영화 '어시스턴트'는 이야기한다.
 
제인은 꿈에 그리던 영화사에서 보조 직원으로 일하게 된다. 어떤 일도 능숙하게 처리하는 그의 일상은 평범해 보이지만, 사소한 사무실 정리부터 상사의 개인적인 스케줄 관리까지 온종일 몰아치는 잡다한 업무에 지쳐간다.
 
그러한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 신입사원으로 채용된 한 여성이 찾아오면서 제인은 회사 내 부조리함을 마주하게 된다.
 
외화 '어시스턴트' 스틸컷. ㈜콘텐츠플레이 제공
영화 '어시스턴트'(감독 키티 그린)는 최근 대학을 졸업하고 영화 제작자의 꿈을 좇아 영화사에 취직하게 된 제인(줄리아 가너)의 일상을 그린다. 카메라는 주말에도 불 꺼진 사무실에 누구보다 먼저 출근해 모두가 떠난 사무실의 불을 끄며 퇴근하는 제인의 업무 일정을 적나라하게 뒤쫓는다.
 
제인은 꿈을 좇아 영화사에 취직한 사회 초년생이다. 이 영화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었던 사회 초년생 시기의 직장에서의 생활을 적나라하게 담아냈다. 꿈을 펼쳐내고자 발을 내디뎠지만, 막상 직장에 발 들인 초년생이 마주하는 것은 꿈이 아닌 냉혹한 현실이다.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만 보던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법칙이 펼쳐지는 곳이 직장이다. 위계질서와 권력관계에 따른 수직 구조와 정치가 일상처럼 펼쳐지는, 사회를 축약해 모든 것을 집약해 놓은 곳이 직장이라는 공간이다.
 
그 안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제인은 자신이 해야 할 업무 외에도 온갖 잡무에 시달리며 급하게 서서 끼니를 처리한다. 제인의 잡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피라미드 구조 속에서도 가장 열악한 위치에 서 있는 여성 노동자의 모습이다.
 
점심 주문, 컵 설거지, 회의실 청소 등 제인이 하는 일 중 다수는 으레 당연한 일인 것처럼 여겨져 왔고 지금도 그렇게 여겨지고 있는 잡무들이다. 그렇지만 과연 점심을 주문하고, 차를 준비하고, 탕비실에서 설거지하는 것이 과연 직장 내 모든 노동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업무인가 하면 아니다. 영화 속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은 제인 뿐이다. 그 안에서도 젠더 권력이 작동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외화 '어시스턴트' 스틸컷. ㈜콘텐츠플레이 제공
영화는 주인공의 사적 대화나 사생활을 보여주지 않고 러닝 타임 내내 그의 업무 공간을 비추고 업무만을 보여준다. 업무시간에서 발생하는 관계, 스트레스, 감정 노동, 위계질서와 젠더 권력으로 인한 잡무 등이 영화의 모든 것이다. 유일한 사적 대화는 부모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이고, 이것도 단 두 번 등장한다. 심지어 주인공의 웃는 얼굴조차 보기 힘들다. 직장 상사의 아이를 잠시 봐주는 시간, 아이를 위해 잠깐 웃는 게 전부다.
 
늘 피곤하고, 감정적으로 지쳐 있고, 업무 외 대사조차 많지 않다. 이 살벌하고 긴장되고 스트레스 가득한 공간 안에서 제인을 따라다니는 것은 불안과 초조와 스트레스다. 보는 내내 관객마저 불안함과 스트레스에 동요하게 만들고, 마음을 갑갑하고 답답하게 만든다. 이는 감독이 현실을 사는 모든 '제인'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그리고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기 위한 장치다.
 
주인공은 특정한 인물이 아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직장 초년생, 지치고 힘들고 꿈을 좇아 취업했지만 부당한 일들을 겪고 목격하며 흔들리는 모습을 겪는 모두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인물의 이름 또한 특정 인물이 아닌 신원 미상의 여성을 지칭하는 '제인 도'의 '제인'이다. 어디에서건 비슷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또 비슷한 모습이 될 수 있는 존재, 여성 사회 초년생의 초상과도 같은 존재가 바로 주인공 제인이다.
 
영화 속 주인공이 겪는 부당함, 꿈조차 흔들리게 만드는 일들은 현실의 많은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주인공이 일하는 곳이 영화업계라는 점에서 가장 가깝게는 할리우드를 시작으로, 전 세계에 미투 운동을 일으킨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나 영화를 통해 연상한 하비 와인스타인 사건 역시 사실 현실에 만연한 남성 중심의 위계 구조로 인해 벌어지는 일이다. 극 중 주인공이 겪는 많은 일의 뿌리를 찾아가면 젠더 권력으로 발생한 위계 구조가 있듯이 말이다.
 
외화 '어시스턴트' 스틸컷. ㈜콘텐츠플레이 제공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 역시 지금도 곳곳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그로 인해 피해를 받는 권력 구도의 가장 아래에 위치한 약자들 문제다. 자연스레 영화를 향한 시선은 우리의 현실로, 제인을 향한 시선은 우리 자신에게도 이어진다.
 
회사 내 성폭력과 차별, 부당함을 목격한 제인이 이를 회사 인사팀에 고발하지만 마치 관례처럼 넘기는 모습에서는 분노마저 느껴진다. 이러한 감정을 느낀 관객에게 감독은 적어도 영화 속 주인공의 주변에 위치한 우리들이 어떤 행동을 취하고 어떤 말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도록 만든다. 감독이 관객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제인과 비슷한 일을 겪었다면, 적어도 이러한 상황을 간접적으로 목도한 우리들은 제인을 둘러싼 인물들처럼 외면하지 말자는 것일 거다.
 
부당한 현실에 놓여 불안과 스트레스로 인해 흔들리는 제인을 맡은 줄리안 가너의 섬세하면서도 묵직하고 절제된 연기가 스크린 내내 관객들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 흔든다.
 
87분 상영, 9월 16일 개봉, 12세 관람가.

외화 '어시스턴트' 포스터. ㈜콘텐츠플레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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