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그래도 여전히 메르켈의 인기는 높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5%가 메르켈의 시대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총리 재임 기간 동안 메르켈에게는 여러 차례의 위기가 있었다. 2008년 국제금융위기는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렸고, 유럽과 독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취약한 경제기반을 갖고 있던 그리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이 휘청거렸고, 경제공동체 EU가 붕괴될 위기에 놓였다.
경제강국 독일과 메르켈 총리의 결단과 재정지원으로 EU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만일 EU가 해체됐다면, 그 여파는 세계 경제를 훨씬 큰 위기로 몰아넣었을 것이 분명했다.
결정을 내릴 때 지나치게 신중하고,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표출하지 않는 메르켈의 우유부단한 성향을 지칭하는 단어다. 하지만 메르켈은 국내 보수 세력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백만 명에 이르는 국제난민을 과감히 수용했다.
국내 정치뿐 아니라 국제 외교무대에서도 메르켈은 돋보이는 외교관이었다. 메르켈은 미국과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세계 강대국들이 모두 민족주의, 극우적 성향이 강화되고 있는 국제무대에서 국제적 다원주의,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 중심을 잡아준 중요한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했다.
메르켈이 4연임을 고심하고 있을 때 퇴임하는 오바마 대통령이 트럼프의 취임을 앞두고 총리직을 유지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란과의 핵협상 파기, 파리기후협약 탈퇴,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은 트럼프와 비교하면 메르켈의 가치는 더욱 빛이 난다.
또 한 가지는 메르켈의 가장 큰 장점인 안정성과 지속성을 우리 정치현실에서는 대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물론 5년 단임의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 정치제도와 독일과는 단순 비교가 어렵다. 하지만 'All or Nothing'의 극단적인 이분법만 존재하는 우리 정치현실과 비교한다면, 메르켈 같은 정치인은 부러운 존재다.
메르켈의 재임기간 동안 우리는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황교안 권한대행, 그리고 문재인 등 모두 5명의 대통령을 겪었다. 이들 5명 가운데 현직인 문재인 대통령을 제외하면 전직 대통령들의 현재의 모습은 어떤지 돌아보게 된다.
최연소, 최초의 여성, 최초의 동독 출신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16년 동안 독일을 잘 이끈 메르켈 같은 정치인이 탄생할 수 있는 정치토양이 우리에게도 만들어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