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주의
미래를 위해, 삶을 위해 떠난 사람들과 달리 남겨진 생명들에게 미래는 불투명하다. 그곳에 또 다른 생명, 또 다른 삶이 있음을 사람들은 몰랐던 걸까, 아니면 나와 전혀 무관한 삶이라 여긴 걸까. 영화 '꿈꾸는 고양이'는 그저 살아남고, 살아갈 수 있는 삶을 꿈꾸는 고양이들과 이 작은 생명들을 위해 작은 용기를 내보자고 이야기한다.
서울의 달동네, 경기도 성남, 대구, 부산의 재개발 지역 등 곧 부서지고 버려질 동네에서 사람들은 자취를 감췄지만 그저 '살고 싶다'는 꿈을 꾸며 살아가는 고양이들은 남아 있다.
사람들은 더 나은 주거 공간,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재개발이 확정된 동네를 떠나갔다. 사람들이 떠난 동네는 건물이 무너지며 폐허가 됐지만, 여전히 그곳만이 삶의 터전이자 전부인 길고양이들은 삶은 물론 생존마저 위협받는다.
그리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철거촌 고양이들이 '살고 싶다'는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사람들은 재개발 지역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오는 9일 '한국 고양이의 날'에 개봉하는 영화 '꿈꾸는 고양이'(감독 지원, 강민현)는 곧 부서지고 버려질 재개발 지역에서 그저 '살고 싶다'는 꿈을 꾸는 고양이와 그 생명을 '살리고 싶다'는 꿈을 꾸는 사람들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철거촌에서 고양이를 구조하는 모습으로 시작하는 '꿈꾸는 고양이'는 모든 사람이 떠나면서 모든 것이 사라져 가는 동네를 떠도는 고양이들과 위태로운 삶과 그들을 구조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뒤쫓는다. 그곳에서 만난 고양이들은 그저 하루하루 평범한 삶을 꿈꾸며 살아가는 생명이다.
사람들이 미래를 꿈꾸며 떠난 후 남은 곳은 생기가 사라지고 폐허가 됐다. 모든 삶의 흔적이 잔해로만 남은 철거촌은 흔히 디스토피아라 부르는 모습과도 같다. 삶이 사라진 곳이지만 사람이 아닌 생명은 여전히 존재한다. 디스토피아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길고양이들의 삶이란 생존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그런 길고양이들이 무엇을 꿈꿀지 답을 찾는 건 오래 걸리지 않는다.
길 위의 모든 생명을 모두 책임져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꿈꾸는 고양이'의 여정을 뒤따르다 보면 적어도 모두가 공존하는 이 땅 위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사람으로 인해 길을 떠돌며 사는 필사적인 생명들을 위해 최소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말이다.
길 위의 삶을 외면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감독들은 철거촌에 남아 생존의 위협을 받는 길고양이들은 물론 그들을 구조하려는 사람들의 모습 역시 기록했다.
사람들은 철거촌에서 고양이들을 구조하고, 구조한 후 안전한 장소로 방사하지만 일부는 다시 위험한 철거촌으로 돌아간다. 나고 자란 곳은 이미 없지만, 그럼에도 그 흔적이 존재하고 고양이들의 삶이 그곳에 모두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고양이들도 더 이상 그곳에서의 생존은 무의미하다고 느낀 건지, 사람들이 구조를 위해 마련한 케이지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어쩐지 안쓰럽게 다가온다. 본인의 선택이 아닌,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내몰린 끝에 선택했던 까닭이다.
카메라를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그동안 인간의 시선에서, 인간의 입장에서만 바라본 철거촌 문제를 '공동체'라는 보다 넓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공동체 안에 속하는 것은 비단 인간만이 아니다.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공동체라고 한다면, 우리는 공동체의 일원인 길고양이의 삶에 대해서도 한 번쯤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그렇다고 길고양이의 삶을 불쌍하게만 여기라는 것은 아니다. 길 위의 삶을 사는 고양이는 그들만의 삶이 있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삶을 존중하면서 함께 살아나가는 것이다. 도태되는 생명, 소외되는 삶이 없도록 인간의 시야와 삶 안에 길고양이까지 담아내길 꿈꾸는 것이다.
철거촌에 빨간 글씨로 '같이 갑시다'라고 쓰인 게 눈에 밟힐 수밖에 없는 것은 '같이'에 길고양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길고양이들의 삶을 존중하고, 그들이 진정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애쓰는 사람들 모습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내가 어렵다고 포기만 안 하면 된다"며 고양이와의 공존을 위해 진정성을 갖고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누군가는 말한다. 생각에만 머물렀다면 길고양이들의 안전한 이주는 없었을 거라며, '현관문만 여는 정도의 용기'면 된다는 사람도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면하지 않을 용기, 그저 한 번쯤 눈길을 돌려 길 위의 또 다른 삶을 응시하는 작은 용기다. 거기서부터 고양이들의 꿈은 한 걸음씩 현실로 다가갈 것이다.
다큐를 찍으면서 사심을 채우는 감독의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그만큼 일과 마음의 경계를 허물 정도로 고양이가 가진 사랑스러운 '냥냥 파워'의 위대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꿈꾸는 고양이' 속 길고양이들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극장을 나간 후 작은 용기를 낼 용기를 얻게 된다.
74분 상영, 9월 9일 한국 고양이의 날 개봉, 전체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