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차인 5분 발언'의 주인공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부친의 부동산 의혹이 제기된 직후 의원직 사퇴라는 초강수를 둔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일각에선 본회의 과반 의결 등 현실적으로 의원직 사퇴 요건을 충족시키기 어려운 점을 감안한 노림수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윤 의원은 2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 예비후보 및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다. 윤 의원은 부친의 농지법 및 주민등록법 위반 등을 이유로 전날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부동산 불법거래 의혹 명단에 올랐다. 당 지도부는 의혹 당사자 12명 중 윤 의원을 포함한 6명에게는 소명 절차가 완료됐다며 추가 문제를 삼지 않았지만, 윤 의원만 의원직을 사퇴한다는 결정을 한 것이다.
윤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독립관계로 살아온 지 30년이 지난 부친을 엮은 무리수가 야당 의원의 평판을 흠집 내려는 의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냐"며 "이번 결과는 권익위의 끼워 맞추기 조사"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가 정권교체 명분을 희화화할 빌미를 제공해 대선 전투의 중요한 축을 허물어뜨릴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고 사퇴 선언의 배경을 설명했다.
국회의원 직에서 사퇴하기 위해선 본회의에서 표결 절차를 거치게 돼 있다. 회기 중에는 재적 의원 과반 출석과 과반 찬성의 무기명 투표를 거쳐야 하고, 회기가 아닐 때는 국회의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범여권이 180석에 달하고 범야권이 100석 안팎에 불과한 현재 의석수를 고려하면 야권 전체가 찬성하더라도 여권에서 약 50표 이상의 찬성표가 나와야 하는 셈이다.
한 초선의원은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윤 의원에 대한 사퇴 표결이 의결되는 순간 민주당을 향한 여론의 질타가 예상되는데 민주당이 상식적으로 그걸 동의해주겠냐"며 "아마 안건이 올라가더라도 의원들이 참석하지 않으면서 의결 정족수도 못 채워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윤 의원은 이날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다수당인 민주당이 아주 즐겁게 통과시켜줄 것"이라고 했지만, 이같은 사실을 모를 가능성이 낮은 윤 의원이 선제적으로 사퇴 카드를 꺼내 주도권을 확보했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권익위가 발표한 부동산 의혹이 윤 의원 부친 문제임에도 굳이 의원직 사퇴 카드를 꺼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윤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의혹 대상 의원들 중 상당수가 본인 의혹에 연루됐음에도 불구하고 물밑에선 당의 탈당 요청을 거부하며 버티고 있다.
윤 의원의 행위가 '도덕적 결벽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통상적인 경우는 아니란 게 중론이다. 원내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아무리 그래도 일반적으로 이해가 되는 '비례의 원칙'이란 게 있는데 부친 문제로 의원직까지 던지는 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 정도 논란이면 탈당 카드 정도는 이해가 되지만 의원직 사퇴는 너무 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4‧7 재보궐 선거 개표 과정에서 '당직자 폭행' 논란에 휩싸였던 송언석 의원과 비서진 성추행 의혹으로 가로세로연구소와 법적 다툼을 벌였던 김병욱 의원 등도 탈당을 택했다. 김 의원은 수사 기관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은 후 복당했고, 송 의원은 복당을 시도했다가 무산돼 현재 무소속 신분이다.
당 관계자는 통화에서 "지금 윤 의원이 혼자 결단하면 바로 시행되는 탈당 대신 의원들의 의결이 필요한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형국"이라며 "탈당을 하고 난 이후에 무소속 신분으로 재차 사퇴 의결을 요구할 수 있음에도 굳이 사퇴 쪽으로 직행하고 있어서 불발 가능성을 사전에 노리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원직 사퇴 이후 내년 대선 직후 열리는 지방선거 출마설도 거론된다. 지난 4월 재보궐 선거에서도 후보군에 올랐던 만큼 백의종군 후 내년 지선에서 서울시장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윤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제가 생각하는 정치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서울시장 출마설을 일축했다.
부친의 농지법 위반과 관련된 수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윤 의원이 해당 사안에 대해선 언급을 아끼고 있다는 점도 도마에 올랐다.
윤 의원의 부친은 지난 2016년 세종시 인근에 약 3000평의 논을 구입했지만 직접 농사를 짓지 않아 농지법 위반 의혹을 받고 있다. 아울러 지난달 세종시에서 서울 동대문구로 주소지를 옮긴 사실이 드러나며 주민등록법 위반 여부도 논란이 됐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당시 소명에선 부친의 농지법 위반에 대해 윤 의원 자신은 몰랐다고만 했을 뿐, 위반 여부나 처리 방향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