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갈 곳도, 찾아오는 이도 없는 주민들
"잘 지내셨어요? 허리는 좀 어떠세요. 약은 계속 잘 드시고 계시고?"대전역 인근 쪽방촌.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옛 여인숙 건물 2층에 자리한 쪽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모습을 드러낸다. 문가에 쳐진 커튼을 들추자, 커튼 너머에 있던 주민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이내 표정이 밝아졌다.
쪽방 주민을 만나는 벧엘의집 남누리 사례관리사가 거동이 불편한 주민에게 반찬거리 등을 담은 도시락을 전하며 안부를 물었다. 도시락을 받아든 주민에게는 오늘 첫 대화, 어쩌면 오늘의 유일한 대화다.
쪽방에서 만난 한 주민은 "(대화가) 많이 줄어든 게 아니라 영 없다"며 "(예전엔) 그늘에 앉아서 서로 얘기도 나누곤 했는데 지금은 서로가 만나질 못하고, 나가질 못하니까…"라고 말했다.
코로나 이후에는 하염없이, 하염없이 TV만 보는 날도 적지 않다고 한다.
남누리 사례관리사는 "일주일에 저희가 오는 시간 외에는 누군가가 본인을 찾아오는 시간이 없는 경우가 많다"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금만 더 같이 있었으면 하는 눈빛을 읽곤 한다. '담배 하나만 피우고 가', '이거 하나만 더 답해주고 가'라며 이야기나 질문을 계속 던지실 때가 많은데 시간을 원 없이 쓸 수 없다 보니 죄송스럽고 마음이 좋지 않다"고 했다.
홀로 놓인 주민들이 겪는 어려움은 '외로움'만이 아니다.
자신의 위기를 제때 알릴 수 있는, 사회에 '안부'를 전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도 그만큼 줄었음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사례관리사들도 이들을 찾을 때마다 기대와 걱정이 교차한다고 했다. 남 사례관리사는 "한 주간 어떻게 지내셨나 하는 어떤 기대감, 한편으로는 무슨 일이 생기진 않으셨을까 하는 걱정과 염려 등 다양한 감정들을 갖고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립은 기본적인 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많은 쪽방에는 제대로 된 수도나, 부엌이 없다.
집에서 씻을 수 없고, 먹을 수 없을 때 공용시설을 가곤 했는데 코로나로 갈 수 없게 된 지 오래라고 한다.
쪽방촌에서 만난 한 주민은 "씻으러 자주 갔는데 요즘은 갈 수도 없어 답답함이 있다"고 말했다. 한 80대 주민은 매일 우유와 빵을 먹으며 지낸다고 전했다.
컵라면 드리며 "흩어져 드시라"…무료급식 현장
"여기 서세요. (간격) 띄우세요. 띄우세요."수요일과 일요일 저녁. 대전역 앞에 모여든 사람들 손에 컵라면이 쥐어진다.
노숙인 등을 위한 무료급식의 요즘 풍경이다. 빠르게 나눠줄 수 있고, 흩어져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인 사람들에게는 거리두기를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수요일에 진행된 배식 현장에서도 연신 "천천히 천천히", "여기 서세요", "띄우세요. 띄우세요"와 간격을 유지하라는 손짓이 이어졌다.
지난달까지는 대기업의 후원으로 도시락을 지급했고 이달 들어 컵라면을 배식하고 있다. 150개의 컵라면은 20분 만에 동이 났다.
끼니의 종류와 풍경은 달라졌지만,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이 시간만을 기다리는 간절함은 코로나 이전과 다르지 않다. 활동을 줄여도, 중단할 수는 없는 이유라고 한다. 이 시국에 노숙인 무료급식을 하느냐는 목소리와, 노숙인들을 위한 최소한의 지원 사이에서 현장의 고민이 깊다.
간격을 띄우고, 배식 시간을 최소화하고, 현장에 모여 먹지 않도록 하는 등 주의를 기울였지만 어김없이 '멈추라'는 민원이 들어왔다고 한다.
코로나로 후원과 관심이 줄어든 것보다, 현장에서 느껴지는 사회적 고립이 더욱 힘겹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전역 일대 노숙인과 쪽방 주민을 지원하고 있는 벧엘의집 원용철 목사는 "노숙인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생활인데, 코로나19를 지나면서 그조차 안 된다는 목소리들을 듣곤 한다"며 "감염의 위험이 있다는 이유에 가려져 '그 사람들은 굶어도 된다, 어려워도 된다' 이렇게 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편으로는 든다"며 씁쓸해했다.
"지금 어떻게 보면 코로나19와 싸우는 게 아니라 사회적 낙인과, 사회적 배척이라고 하는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현장에서 호소하는 깊고 깊은 고립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