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아프간)의 수도 카불을 장악했다. 아프간 정부가 유혈사태를 피하겠다며 아프간을 떠나면서 미국 주도로 전쟁을 벌인지 20년 만에 원상복구됐다.
1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AP통신 등에 따르면, 압둘 사타르 미르자크왈 아프간 내무부 장관은 이날 "정권이 과도정부로 이양될 것"이라며 "도심에 대한 공격은 없을 것이며 평화적인 이양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두 명의 탈레관 관계자는 "과도정부는 없을 것"이라고 로이터에 전했다.
수하일 샤힌 탈레반 대변인은 BBC방송에 "우리는 국민들, 특히 카불에 있는 이들의 재산과 생명의 안전을 보장한다"면서 "며칠 안에 권력이 이양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탈레반은 수도 전체를 장악했고, 조만간 카불의 대통령궁에서 '아프간 이슬람 에미리트' 설립을 공식 선언할 방침이다. 이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군 주로도 탈레반이 쫓겨나기 전 사용했던 나라의 이름이다.
이에 따라 아쉬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나라를 떠났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수도에서 유혈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나라를 떠나기로 결정했다"면서 구체적인 행선지는 밝히지 않았다.
탈레반은 가니 대통령의 행방을 확인하고 있다. 현지 SNS 사용자들은 가니 대통령이 혼란 속에서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겁쟁이'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밤이 되자 조용했던 도시에서 수 차례 폭발음이 들렸다고 현지 언론인 1TV가 보도했다. 외국 외교관들과 정부 관계자들, 아프간 시민들이 나라를 탈출하기 위해 모여있는 공항에서는 총성이 들리기도 했다.
현지 구호단체는 80명의 부상자가 카불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졌고, 병원의 수용능력 때문에 중상을 입은 사람들의 입원이 제한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미국은 지난 5월 아프간에서 미군 철수를 본격화했다. 미군은 전날 카불이 반란군들의 압박을 받기까지 한 달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AP는 미국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20년 가까이 아프간 안보군 재건을 위해 수십억 달러를 사용했지만, 탈레반이 일주일 만에 아프간 전역을 장악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대사관은 "공항을 포함해 카불의 안보 상황이 급격하게 변했다"면서 안보경보를 발령했다. 이어 공항이 불타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고 덧붙였다. 공항 사정에 정통한 2명의 관계자는 이 보고서의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다.
또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국가들도 자국의 외교관들을 공항으로 이동시켰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영국과 캐나다, 덴마크, 네덜란드 등과 함께 급변하는 상황에 대해 논의했다.
우리나라 현지 대사관도 잠정 폐쇄하고 공관원 대부분은 제3국으로 철수했다. 아프간에 머물던 교민 대부분은 지난 6월 정부의 철수 요청 이후 현지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수백 명의 아프간 사람들과 장관, 정부 관계자들이 공항 터미널에 몰려들어 출국 항공편을 애타기 기다리고 있다.
한편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ABC뉴스에 출연해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헬기가 1975년 베트남에서 미국이 철수하는 장면을 연상시키냐'는 질문에 "한 발 물러나서 생각해보자. 이것은 명백하게 사이공(베트남 전쟁 당시 호찌민의 이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군 철수로 무능한 정부가 무너지고, 민간인과 외교관의 탈출 과정에서 혼란이 빚어진다는 점에서 1970년대 베트남전쟁 막바지 상황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최근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결정으로 우리는 치욕적인 '1975년 사이공 함락'의 속편으로 나아가게 됐고, 심지어 상황이 그때보다 나쁘다"고 꼬집었다.